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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女직원에 사장의 헤드락…옥신각신 1·2심, 대법 "성추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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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이미지. 기사와 직접 연관 없음[pixabay]

회식 이미지. 기사와 직접 연관 없음[pixabay]

 대법원이 추행의 범위를 또 한 번 넓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4일 50대 대표이사 A씨가 20대 여성 직원에게 이른바 ‘헤드락’을 걸고 신체 접촉 및 부적절한 언행을 이어간 사건에서 강제추행죄를 인정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회식자리 모두가 보는 데서 ‘헤드락’

이직을 앞둔 B씨는 직장 회식자리에 참석한다. 대표이사 A씨도 있던 자리에서 B씨의 결혼 등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갑자기 A씨가 팔로 B씨의 머리를 감싸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른바 ‘헤드락’을 건 것이다. B씨의 머리는 A씨의 가슴에 닿았고 A씨는 주먹으로 B씨의 머리를 두 차례 쳤다.

그 날 회식에서 한 번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A씨는B씨에게 “이 X을 어떻게 해야 계속 붙잡을 수 있지. 머리끄덩이를 잡고 붙잡아야 하나”라고 말하며 양손으로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었다. 피해자 두피에 A씨 손가락이 닿았다. “나랑 결혼하려고 결혼 안 하고 있다” 같은 말도 했다. 이후에는 “이X”“저X”같은 욕을 하며 B씨의 어깨를 계속 쳤다. 당시 회식자리에 있던 동료들은 “이러면 미투다” “사장님 왜 이러세요”라며 A씨를 말렸다. 결국 B씨는 회식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단순 ‘헤드락’이 문제 아냐… “추행”

지난해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김용찬 판사는 A씨의 행위를 강제추행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는 “헤드락을 건 건 맞지만 B씨 머리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지 않았고, 머리가 닿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머리카락을 잡은 것도 아니고 머리통을 잡고 흔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런 행동들이 회사 대표로서 직원인 피해자가 이직하려 하자 애정과 섭섭함을 다소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다.

김 판사는 “A씨가 B씨를 접촉한 부위가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가 아니더라도 추행에 있어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접촉의 경위나 방법, 두 사람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일반인의 시각에서 A씨의 행위가 단순히 회사 대표가 직원에 대한 애정과 섭섭함을 격하게 표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A씨의 행동은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추행에 해당하고, 설사 A씨에게 성적 욕구를 자극하려는 주관적 목적이 없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취지다. 특히 1심은 ‘헤드락’ 하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계속 A씨를 만류한 점, 2차로 자리를 옮겨서 A씨가 B씨에게 다가오자 주변인들이 떼어놓으려 한 점 등을 두루 살폈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성적 의도 없고, 성적 수치심 느끼지도 않아 “무죄”  

반면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이관용)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B씨가 A씨의 행동으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추행이라곤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2심은 ▶사건 장소가 개방된 공개적인 장소였던 점 ▶어깨나 머리는 부위 자체로 성과 관련된 특정 신체 부위라고 보긴 어려운 점 ▶A씨의 헤드락 등은 폭행이 될 수 있을지언정, 성적 의도를 가진 행위로는 보기 어려운 점 ▶“이X을 어떻게 해야 붙잡을 수 있지” 등의 말은 B씨에게  연봉협상 등 회사 근무 이야기를 하며 나온 것인 점 ▶B씨는 사건 직후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 수치심 불쾌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는데 성적 수치심을 명확하게 감지해 진술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A씨의 언동이 B씨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를 추행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성적 의도’ 성행위 관련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대법원은 이를 다시 한번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A씨의 언동이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추행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했다. 먼저 회사 대표인 50대 남성 A씨와 직원인 20대 여성 B씨의 관계에서 볼 때 A씨 행동은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다고 판결했다. 기습적으로 이뤄진 추행이어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들이 있을 때 발생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니라고도 했다.

접촉 신체 부위에 관해서도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 목과 피고인 팔이 닿았고, 피해자 머리가 피고인 가슴에 닿았다. 대법원은 “접촉부위나 방법을 보면 객관적으로 일반인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위”라고 했다. 덧붙여 이 행동 전후의 A씨의 말도 문제가 됐다. “나랑 결혼하려고 결혼 안 하고 있다”“이X 머리끄덩이를 잡아 붙잡아야겠다” 등의 말에 주변 여성 직원들은 항의했다. 대법원은 “A씨의 말과 행동은 피해자의 여성성을 드러내고 A씨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줬다”며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 행위”라고 평가했다.

A씨의 행위를 ‘폭행’으로 볼 지 ‘추행’으로 볼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한 건 ‘성적 의도’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이었다. 대법원은 “성행위(성관계ㆍ스킨십)와 관련된 행위만 성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피해자의 여성성을 드러내고 피고인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도 ‘성적 의도를 갖고 한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이 과정에서 ‘소름 끼쳤다’‘모멸감’‘불쾌감’을 느꼈다고 한 것도 성적 수치심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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