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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영끌, 주식에는 빚투···가계부채, 첫 GDP 넘어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계 부채가 처음으로 나라 전체의 경제 규모를 앞질렀다.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 투자 열풍이 빚은 결과다. 금리가 낮아진 탓에 당장 위험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하지만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대출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면 채무상환능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내년까지 이어지면 기업의 재무건전성마저 크게 나빠질 수 있다.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모습.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모습.

한국은행이 24일 12월 금융안정보고서를 내놨다. 한은법은 연 2회 이상 거시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한 평가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가계부채는 1682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다. 이중 주택담보대출이 7.2% 늘었고, 기타대출(대부분 신용대출) 역시 6.8%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101.1%였다. 가계신용이 GDP를 앞선 건 2007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3분기 현재 171.3%로 전년 동기 대비 10.7%포인트 상승했다. 소득 증가 속도보다 부채가 더 빨리 늘어난 결과다. 기업부채를 더한 민간부채의 GDP 대비 비율도 211.2%로 16.6%포인트 큰 폭 상승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성장세가 둔화했지만 경제 주체의 대출은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은 “채무상환능력 우려는 크지 않다”

한은은 아직 가계의 신용위험이 크지 않다고 본다. 3분기 말 소득대비부채비율(LTI)은 평균 225.9%로 지난해 말보다 8.4%포인트 상승했다. LTI 300% 초과 차주 비중도 1.3%포인트 확대됐다. 하지만 전체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3분기 기준 35.7%로 2018년(39.6%) 이후 꾸준한 하락세다. 대출금리 하락과 대출만기 장기화 등 구조적 변화의 결과다. 민좌홍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LTI는 상승했지만 DSR은 소폭 하락해 아직은 가계의 채무상환능력 저하 정도가 당초 우려만큼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빠른 증가세가 지속할 경우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30대 청년층의 가계대출이 여타 연령층에 비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현상도 관측됐다. 1년 내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대출로 투자)’ 열풍이 이어진 결과다. 한은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청년층 가계대출은 전년 동기 대비 8.5% 증가했다. 타 연령층(6.5%)보다 빠르게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전·월세 및 주택 매입, 주식투자 등 수요 요인에다 청년층 접근성이 높은 비대면 신용대출 확대, 청년층 전월세자금대출 지원 등 공급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청년층 역시 현 단계에서 채무상환부담은 크지 않은 것으로 한은은 판단했다. LTI는 9월 말 기준 221.1%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지만 DSR은 35.6%로 2017년 이후 타 연령층보다 더 큰 폭으로 낮아졌다. 한은 관계자는 “청년층의 경우 비교적 금리 수준이 낮은 은행권 대출 비중이 높은 데다, 이자만 납입하는 전세자금대출이 많아 대출 규모 자체는 커졌지만, 상환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24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보고서(2020년 12월) 설명회. 사진 왼쪽부터 신현열 안정총괄팀장, 민좌홍 금융안정국장, 이민규 안정분석팀장. 한국은행

24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보고서(2020년 12월) 설명회. 사진 왼쪽부터 신현열 안정총괄팀장, 민좌홍 금융안정국장, 이민규 안정분석팀장. 한국은행

한은이 더 큰 우려를 나타낸 건 기업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4.4배였던 국내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올해 상반기 3.5배로 큰 폭 낮아졌다.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은 줄었는데 이자 부담은 증가한 영향이다.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이 이자를 갚을 능력을 보는 지표다. 이게 낮아진다는 건 수익성과 대출 상환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다행히 과거 위기와 비교할 때 올해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그리 나빠지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영업이익률 하락 폭은 -0.8%포인트로 외환위기(-3.7%포인트)와 금융위기(-2.7%포인트) 때보다 양호했다. 부채비율(81.1%)도 외환위기(339.2%)·금융위기(109.8%)보다 나았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 정부가 대규모 금융지원에 나섰고,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문제는 이 지원이 끊길 때다. 기업의 부도확률이 높아지는 등 부실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내년 중 기업 실적이 회복하는 기본 상황(매출액증가율 5.8%)과 실적 개선이 지연되는 비관적 상황(-1.7%)으로 나눠 분석했다. 만약 정부가 금융지원을 연장하면 기본 상황에서 유동성 부족 기업 비중은 2.5%로 올해(3%)보다 줄어든다. 비관적인 상황에서는 4.4%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금융지원을 전면 종료할 경우 유동성 부족기업 비중은 기본 상황에서 5.1%, 비관적 상황에서 7%로 급증한다.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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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율도 올해 0.47%에서 금융지원 유지 시 0.60~0.80%, 지원 종료 시 1.05~1.25%로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원을 중단하면 연체율이 두 배 이상 상승하는 셈이다. 연착륙을 위해 일정 기간 지원을 계속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지원이 길어지면 기업 구조조정이 늦어지는 문제를 피할 수 없어서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의 재무건전성 및 업황 개선속도에 맞춰 각종 지원조치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해 나가야 한다”며 “장기 존속 가능성이 큰 기업에 선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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