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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의 문화난장

성냥팔이 소녀의 성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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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다. 기뻐해야 할 성탄이 전혀 즐겁지 않다. 아기 예수의 평화를 축하하는 성탄절이 코로나19 사태로 끝이 안 보이는 동면에 들어간 것 같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고요한 밤, 쓸쓸한 밤’으로 남을 것 같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마저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전쟁 때 집 잃은 소녀 #‘거리의 여인’ 대모로 40년 #유독 쓸쓸한 2020년 성탄 #예수가 온 뜻 더 분명해져

해마다 성탄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평생을 소외 여성과 함께해온 이인복(83) 나사렛성가원 이사장이다. 5년 전 성탄절을 앞두고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꼭 70년 전, 즉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12월 23일은 그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했다.

당시 13세 소녀였던 그는 인천시 부평 장마당에서 성냥과 양초를 팔았다. 소위 ‘성냥팔이 소녀’였다. 마침 그때 침례교 목사인 미군 흑인 병사와 가톨릭 신학생인 한국인 청년을 만났다. 그들은 춥고 배고픈 소녀에게 식량과 담요가 담긴 배낭을 주고 갔다. “살아 돌아오면 꼭 찾아올게”라고 약속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서울 명동성당을 물들인 시민들. 코로나19 사태가 위중해지면서 올해 전국 성탄 미사·예배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뉴시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서울 명동성당을 물들인 시민들. 코로나19 사태가 위중해지면서 올해 전국 성탄 미사·예배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뉴시스]

인연은 그것으로 끝났다. 재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소녀는 새로 태어났다. 고아원에서 동생들을 돌보고,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고,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가 됐다. 전쟁통에 만난 두 은인을 대신해 ‘세 사람의 몫을 살자’고 다짐했다. 1978년 교수 첫 월급을 떼서 어려운 여성들을 돕기 시작했다. 몸을 파는 여인, 매를 맞는 여인, 가출한 여성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다. 서울 평창동에 있는 나사렛성가원이다. 지금껏 오갈 데 없는 수천 명 여성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이씨는 4년 전께 고관절 수술을 받고 지금은 경기도 포천 자택에서 꼼짝 못 하고 있다. 온종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그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극한의 고통에서도 “지금처럼 행복하고 평화로운 때가 없었다”고 했다.

이인복 나사렛성가원 이사장.

이인복 나사렛성가원 이사장.

“퇴직금·연금 전액을 성가원에 냈어요. 70년 전 처음 만난 예수님 덕분에 저도 여태껏 보호받고 살아왔잖아요. 몸이 너무 아프니까 되레 예수님과 더 하나가 된 같아요. 매일매일 제자, 가족, 대자·대녀 등 지인 80여 명에게 성경 말씀을 카톡으로 보내고 있어요. 제가 살아 있다는 증거죠. 코로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누려고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고통이거든요.”

최근 ‘성냥팔이 소녀’와 다시 만날 일이 있었다. 이번엔 책에서다. 노숙자·이주노동자·장애인·미혼모 등과 30여 년을 함께해온 외과의 최충언의 신간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서다. 힘겨운 이들의 사연과 진료실 풍경을 돌아본 이 산문집에서 최씨는 말한다. “안데르센 동화에 ‘성냥팔이 소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날이 밝고 소녀가 얼어 죽은 모습을 보고서야 한 갑이라도 사주지 않을 것을 후회합니다. 소외란 늘 이런 식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처참한 속살이 드러났을 즈음 그저 양심의 가책으로 끝나는….”

우연히도 12월 23일은 최씨에게도 각별한 날이다. 부산 달동네에서 태어나 81년 의대에 들어간 그는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수감 생활 중 가톨릭 세례를 받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83년 12월 23일은 그의 생일이자 세례를 받은 날, 그는 석방 소식도 듣게 된다. “사회 변혁을 위해 당시 제가 내린 결론은 어떠한 이념도 아니고 바로 사랑이었다”고 기억했다.

최씨에게 ‘성냥팔이 소녀’는 모든 가난한 이들의 대명사다. 예수가 성탄에 온 뜻도 세상의 가장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다. 요즘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말을 옮긴다. “코로나19로 세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환자들의 ‘코로나 블루’가 걱정입니다. 날마다 면회 오던 가족이 왜 이리 오지 않느냐, 자식들이 나를 버렸나보다고 생각하며 우는 와상(臥像) 상태의 어르신들을 날마다 만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극복할 일은 아니다. 가난 또한 그럴 것이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진단과 대책 마련이 필수 조건이다.

최씨도 “배고픈 강도가 생기지 않도록 애쓰고, 더불어 나누는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분명 이웃에 대한 연민과 공감일 것이다. 2020년의 크리스마스가 더욱 소중한 이유다. 2020년 코로나의 고통이 남긴 값진 유산이다. 육체의 백신은 저 멀리 있어도 마음의 백신만은 챙겼으면 한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