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관범의 독사신론(讀史新論)

의병 고광순의 ‘불원복’ 대장기…머잖아 봄은 오리니

중앙일보

입력 2020.12.24 00:21

업데이트 2020.12.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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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20년 세밑서 바라본 2021년의 뜻

지난 21일 동지를 맞아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직원들이 코로나19 극복에 전념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전달할 팥죽을 만들고 있다. ‘작은 설날’이라 불리는 동지는 예부터 따듯한 새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상징했다. 새해 달력도 나눠주며 서로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뉴시스]

지난 21일 동지를 맞아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직원들이 코로나19 극복에 전념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전달할 팥죽을 만들고 있다. ‘작은 설날’이라 불리는 동지는 예부터 따듯한 새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상징했다. 새해 달력도 나눠주며 서로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뉴시스]

동지가 갓 지났다. 동짓날의 별명은 작은 설날이다. 설날에 떡국을 끓이듯 동짓날에는 팥죽을 쑨다. 옛날 관리들은 이날 관상감에서 달력을 받았다. 『동국세시기』는 도성의 옛 풍속에 단오 부채와 동지 달력이 있음을 전하고 있다. 요새도 새해가 되기 전 이맘때 달력을 받으니 동지 달력이라 이를 수 있을까. 동지 즈음부터는 겨울철 음식이 제철이다. 냉면과 골동면은 평안도가 유명했다. 골동이란 섞는다는 뜻인데, 채소·과일·고기 절편을 기름장으로 면과 섞은 비빔국수가 곧 골동면이다.

지리산 피아골서 광복 의지 다져
‘작은 설’ 동지는 희망의 다른 말
한겨울 밑바닥에서 싹트는 새날
최남선의 문화운동과도 연결돼

동짓날 세시풍속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본래 한국 고대의 겨울철 세시풍속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음력 10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대회였다. 가을걷이를 마친 다음 그 기쁨에 흥겨워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떠들썩한 음주가무 축제가 며칠이나 이어졌다. 동지가 있는 음력 11월에 열렸던 축제는 궁예가 세운 태봉의 팔관회, 그리고 고려의 개경 팔관회였다. 고려에선 동짓날 궁중 잔치가 열렸고 관리들도 하루 휴가를 받았다. 이제현의 시 ‘동지’에는 이날 꼭 팥죽을 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미 명절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새해 달력 받으며 흥겨운 축제 열어

동지는 한 해에서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를 지나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 해는 길어지지만, 추위는 더 심해져서 소한과 대한을 겪으며 처절하게 겨울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동짓날 생긴 한 가닥의 미약한 볕이 아직 여기에 있으니 언젠가 봄볕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날이 올 것이라 희망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동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다. 작은 설날이라 불릴 만하다. 새 달력을 받을 만하다. 옛 중국 주나라에서는 동짓달이 정월이었고 동짓날이 설날이었다.

『주역』 64괘 중에서 음양의 변화를 보여주는 괘.

『주역』 64괘 중에서 음양의 변화를 보여주는 괘.

자연적 시간의 전환으로서 동지의 의미는 『주역』 64괘 중에서 음양의 변화를 보여주는 열두 괘를 보면 알 수 있다. 열두 괘에는 양이 줄어드는 여섯 괘가 있고 양이 늘어나는 여섯 괘가 있다. 이 중에서 동지가 있는 음력 11월을 상징하는 괘는 양(陽)이 하나 밑바닥에서 새로 돋아난 지뢰(地雷) 복(復)괘다. 그 앞에 음력 10월을 상징하는 괘는 양이 모두 사라지고 천지에 음(陰)으로 가득한 중지(重地) 곤(坤)괘다. 그 앞에 음력 9월을 상징하는 괘는 양이 꼭대기에서 홀로 남은 산지(山地) 박(剝)괘다. 산지 박괘, 중지 곤괘, 지뢰 복괘의 흐름은 꼭대기에 홀로 남은 양이 끝내 모두 사라진 듯하다가 다시 밑바닥에서 새로 돋아나는 절망과 희망의 국면이다.

신영복 선생의 서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중앙포토]

신영복 선생의 서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중앙포토]

산지 박괘, 이 괘에는 절망의 국면에서 꼭대기에 홀로 남은 양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큰 열매는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큰 열매는 땅에 심어 새날을 기약한다는 것, 그것은 혹독한 고난의 시절을 견뎌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지은 신영복은 석과불식을 절망의 세월에 간직하는 희망의 언어로 무척 아꼈다.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은 근신 윤생임에게 석과불식의 뜻으로 석재(碩齋)라는 호를 내려 주었으니 시련에 처해도 마지막 열매가 되어 달라는 애틋한 마음이었다. 조선 말기 최익현은 명나라 멸망 후 중화 문명을 지켜온 조선의 역사적 사명을 석과불식으로 이해했으니 홀로 남은 조선이 미래의 희망이라는 뜻이었다.

고광순

고광순

지뢰 복괘, 이 괘에는 희망의 국면에서 밑바닥에 새로 돋아난 양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불원복’(不遠復), 멀리 가지 않아 회복한다는 뜻이다. 봄소식은 이미 땅속에 있다. 대한제국기 호남 의병을 일으킨 고광순은 장기 항전을 계획하고 지리산 피아골에 들어갔다. 그는 대장기에 ‘불원복’이 적힌 깃발을 달았다. 광복의 해방구로 삼을 요량이었다. 얼마 후 광문회(光文會)에서 신문화운동을 하던 최남선이 사는 당실 이름은 ‘육당(六堂)’이었다. 양이 모두 사라지고 천지에 음으로 가득한 중지 곤괘의 이 세상, 김윤식은 그 길고 긴 겨울밤에서 양을 회복하여 유교를 구원할 복괘의 사명을 최남선에게 일깨웠다.

최남선

최남선

산지 박괘, 꼭대기에 홀로 남은 양은 지켜야 한다. 석과불식, 마지막 희망의 종자는 보존해야 한다. 그렇기에 조선 말기 도학자 전우는 독서 종자의 양성에 힘을 쏟았다. 미래에 건네줄 인문 전통의 종자, 세계 희망의 종자, 이 소중한 석과를 지키는 과업이 곧 수구(守舊)였다. 지뢰 복괘, 밑바닥에 새로 돋아난 양은 자라야 한다. 불원복, 새로운 희망을 향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불원복 태극기’를 휘날린 고광순의 의병운동, 광문회를 설립한 최남선의 문화 운동은 각각 국가 광복과 문화 광복을 향한 한겨울의 변화였다.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변화의 과업이 곧 유신(維新)이었다.

김윤식

김윤식

수구인가, 유신인가. 마지막 희망을 붙들어 보존할 때인가, 새로운 희망을 안고 변화할 때인가. 모두가 길고 긴 겨울밤을 살았던 사람들의 슬기로운 생각이었다. 산지 박괘의 캄캄한 시절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석과불식의 지혜를 발휘한 사람도 있었고, 지뢰 복괘의 어두운 시절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불원복의 지혜를 발휘한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희망을 보존했기에 새로운 희망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새로운 희망으로 회복되었기에 마지막 희망을 돌아볼 수 있었다. 20세기 길고 긴 겨울밤의 한국 사회에서 수구의 석과불식과 유신의 불원복은 함께 있었다. 20세기 역사의 격랑에서 수구도 유신도 모두 말뜻이 오염돼 버렸지만, 본래는 석과불식과 불원복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불원복’(不遠復) 세 글자가 적힌 의병장 고광순의 태극기. [중앙포토]

‘불원복’(不遠復) 세 글자가 적힌 의병장 고광순의 태극기. [중앙포토]

역병 코로나19도 결국은 물러날 것

유신이라 하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나 한국의 10월 유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다. 본래 유신은 『시경』과 『서경』에서 보듯 선왕을 계승하는 후왕이 펼치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과 관련된 말이었다. 『시경』의 유명한 구절 ‘주수구방(周雖舊邦), 기명유신(其命維新)’은 주나라가 건국한 지 오래된 나라인데 후대의 문왕에 이르러 스스로 새 덕을 밝히고 백성에게 새 정치를 베풀어 천명이 새로워졌다는 뜻이다. 조선의 신료는 국왕에게 동짓날과 설날이 오면 유신을 환기했다. 동짓날에는 ‘일양(一陽)이 회복되어 온갖 복이 새롭다’고 했다. 설날에는 ‘삼양(三陽)이 회복되어 온갖 복이 새롭다’고 했다. 동짓날의 경우 지뢰 복괘의 밑바닥 일양(一陽), 곧 불원복의 교훈을 생각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라는 말이었다. 작은 설날에 올리는 큰 교훈이었다.

동지가 지났다. 올해 2020년을 돌아보면 코로나가 창궐하여 힘들게 사투했던 한 해였다. 코로나의 감옥에서 사색을 많이 했다. 그간 석과불식의 비장한 의지로 꼭대기의 마지막 희망을 지켜왔다. 지금은 아직 길고 긴 겨울밤이다. 하지만 이제 전환점은 지났다. 불원복의 굳건한 믿음으로 밑바닥의 새로운 희망을 보듬을 때이다.

새날이 열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했다. 자연의 역병도 사회의 역병도 문명의 역병도 결국은 물러날 것이다. 올해 천지에 가득했던 온갖 음(陰)이 걷히고 양(陽)이 새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지금은 아직 일양이다.

일양이 회복돼 온갖 복이 새로운 시기다. 서서히 회복의 나날이 지나 새봄이 찾아올 것이다. 독자 여러분과 동지의 일양을 함께 나눈다. 새해 새봄이 멀지 않았다.

동짓날 시작된 크리스마스 풍습
내일은 기독교 성탄절, 세칭 크리스마스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풍경은 언제 처음 나타났을까.

대한제국이 수립된 1897년 ‘대한크리스트인회보’ 기사에 따르면 이해 정동 예배당에서 성탄 축하 예배를 마친 학생들이 배재학당 회당 앞에서 등불 수백 개를 켰는데, 가장 큰 십자등 한 개에 금색으로 ‘광조동방’(光照東邦·빛이 동국을 비춘다)이 새겨져 있었다. 석가탄신일 연등하던 관습이 크리스마스로 옮겨온 문화 접변으로 해석된다. 서양의 촛불 크리스마스 대신 한국의 등불 크리스마스이다.

평양에서는 교회 신도가 크리스마스 예배 후에 성문 밖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고자 행인에게 달력을 나누어 주었다. 동짓날과 크리스마스가 불과 며칠 차이다. 동짓날 달력을 받아 이를 나눠주던 관습이 그대로 크리스마스로 옮겨온 것이다.

로마에서도 본래 동지에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가 기독교 전파 후 크리스마스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서양이나 한국이나 크리스마스는 동지였다.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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