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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도 뺄게” 선수들 힘 난다면 뭐든 하는 이상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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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찬물 입수에 이어 10㎏ 감량을 선언한 KB손해보험 이상열 감독. 그는 “선수들이 잘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

찬물 입수에 이어 10㎏ 감량을 선언한 KB손해보험 이상열 감독. 그는 “선수들이 잘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

얼음물 입수, 다음은 몸무게 10㎏ 줄이기다. 프로배구 KB손해보험 이상열(55) 감독이 선수 기 살리기를 위해 또 한번 온몸을 던진다.

찬물 입수에 이어 10㎏ 감량 선언 #연패 끊기 독려, 반신반의 속 도전 #앞장 선 감독 보며 선수들도 각성

KB손해보험은 12일 홈 경기에서 대한항공에 세트 스코어 2-3으로 졌다. 승승장구했던 KB의 시즌 첫 연패였다. 이상열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연습은 정말 많이 했다. 선수들 자신감이 떨어졌다.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됐다. 내가 얼음물에 입수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동기 부여가 될까”라고 말했다.

모두가 이상열 감독의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감독은 다음날 강원 인제군 내린천 진동계곡으로 향했다. 그리고 반바지만 입은 채 얼음물에 몸을 담궜다. 현역 시절 긴 머리칼을 휘날려 ‘야생마’로 불렸던 그답게 거침 없었다. 황택의, 김재휘, 김지승, 김도훈 등 선수들도 동반입수로 화답했다.

상승세로 반전하면 훈훈한 일화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KB손해보험은 바로 다음 경기인 17일 삼성화재 원정경기에서 힘 한 번 못 써보고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이상열 감독은 22일 경기를 앞두고 동기 부여를 위한 방안을 고심했다. 그래서 내놓은 게 100일 안에 체중 10㎏ 감량이다.

이상열 감독은 “두 딸이 배구선수로 뛸 때, 선전을 독려하려고 체중 빼겠다고 했다. 그때 몸 상태가 지금 메신저 사진이다. 감독도 선수들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음이 통했을까. KB손해보험은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22일 홈 경기에서 한국전력을 세트 스코어 3-0으로 꺾었다. 연패는 끝났고, 순위는 2위(12승 6패)로 올라갔다.

이상열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결과보다 투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잘 수행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오늘 이겼지만, 약속은 유효하다. 며칠 동안 저녁도 먹지 않고 있다. 저녁을 또 못 먹게 됐다”며 웃었다. 황택의는 “입수를 생각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는 그냥 넘겼는데 진짜 해서 많이 놀랐다. 감량도 진짜 하실 것 같다. 한 번 말하면 지키는 분”이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이상열 감독은 곧장 움직였다. 한국전력전 다음 날 오전 숙소 인근 경기 수원 광교산 형제봉에 올랐다. 수화기 너머로 숨을 몰아쉰 이 감독은 “선수보다 감독이 먼저 쓰러지겠다. 하지만 약속은 꼭 지킨다. 선수들이 잘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KB손해보험은 2010~11시즌 이후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노우모리 케이타의 가세로 전력이 상승했지만, 강팀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상열 감독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강팀은 노루나 사슴을 사냥하지만, 아직 전력이 완전하지 않은 우리는 매일 호랑이를 사냥해야 한다. 진짜 강팀이 되기 위해 다음 시즌까지 길게 보며 선수단을 꾸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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