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데스노트' 주저하는 정의당…조국 때와 판박이

중앙일보

입력 2020.12.23 17:18

업데이트 2020.12.23 17:45

정의당의 ‘데스노트’는 부활할 것인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23일 정치권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정의당이 이날 청문회를 지켜본 뒤 24일 당 상무위원회에서 변 후보자에 대한 적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당시 정의당의 부적격 판단은 곧 낙마로 이어져 ‘데스노트(death note)’라는 별칭을 얻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오른쪽)와 강은미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대표단 회의에서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23일로 단식 13일째다. 뉴스1

김종철 정의당 대표(오른쪽)와 강은미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대표단 회의에서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23일로 단식 13일째다. 뉴스1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안경환(법무부)·조대엽(고용노동부)·박성진(중소벤처기업부)·조동호(과학기술정보통신부)·최정호(국토교통부) 장관을 줄줄이 낙마시키는 데 기여한 데스노트는 2019년 3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데스노트의 공백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더불어민주당과의 교섭이 치열했던 시기와 겹쳤다. 특히 ‘조국 사태’ 당시의 침묵은 정의당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정의당이 데스노트 부활을 고민하기 시작한 건 변 후보자 때문이다. 본격적인 논의는 지난 18일 시작됐다. 변 후보자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시절인 2016년 ‘구의역 김군’ 사건을 두고 “걔만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 “업체 직원의 실수로 죽은 것”이라고 말했던 사실이 확인된 날이다. ‘구의역 김군’ 사건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모(당시 19세)씨가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다. 김씨의 동료인 서울교통공사노조 PSD1지회는 지난 21일 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전날(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왼쪽 네 번째부터)의 농성장을 찾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김 이사장과 이씨는 "우리에게 할 사과가 아니다"라며 거부했고, 정의당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카메라와 함께 불쑥 농성장을 찾아 왔다.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맨 왼쪽은 변 후보자에 항의하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 뉴스1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전날(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왼쪽 네 번째부터)의 농성장을 찾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김 이사장과 이씨는 "우리에게 할 사과가 아니다"라며 거부했고, 정의당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카메라와 함께 불쑥 농성장을 찾아 왔다.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맨 왼쪽은 변 후보자에 항의하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 뉴스1

그러나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란 말로 스스로를 수식해 온 정의당은 아직 망설이고 있다. 같은 당 안에서도 변 후보자의 ‘막말 파문’에 대한 시각차가 있어서다. 전날 심상정 의원은 당 의원총회에서 “‘사람이 먼저다’를 내건 정부라면 이런 시대착오적 인식부터 점검하고 퇴출해야 마땅하다”면서도 “국민의 이해와 유가족의 용서가 전제될 때만 장관 후보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부지만 수용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반면, 강민진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같은 날 논평에서 “변 후보자는 산재 유족들과 청년들로부터 결국 용서받지 못했다”며 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정의당 관계자는 “주로 변 후보자와 활동을 같이 했던 시민단체 출신 당원들은 옹호론을, 구의역 사건에 분노한 청년 당원들은 사퇴론을 강하게 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당내 의원들이나 지도부는 굉장히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면서도 “당에서는 청문회까지는 보고 최종 판단을 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망설이는 모습이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국면과 판박이란 지적도 나온다. 당시 정의당은 조 전 장관 일가의 의혹에 대해선 진상규명을 요구하긴 했지만, “조 후보자가 훌륭한 사법개혁관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심상정 당시 대표)는 기조를 끝내 유지했다. 선거법 개정(연동형 비례대표제)을 위해선 민주당과의 공조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17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회를 찾아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정의당은 조 전 장관에게 제기된 입시비리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임명엔 반대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2019년 9월 17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회를 찾아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정의당은 조 전 장관에게 제기된 입시비리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임명엔 반대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이번엔 당론 1호 법안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걸려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12월 임시국회(내년 1월 8일까지) 내 처리를 공언했지만, 여러 쟁점들이 도드라지면서 거대 양당이 약속지키기는 쉽지 않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변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둘러싼 당내 갑론을박도 조 전 장관 때와 흡사한 양상이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중대재해법과 연계해서 생각하지 않는다”(정의당 관계자)는 입장이다.

데스노트의 ‘화력’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180석에 육박하는 거여(巨與)의 등장으로 정의당의 ‘캐스팅보트(casting vote)’ 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의당 핵심 관계자는 “의석 분포가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애초 데스노트라는 게 정의당의 기준선이 아닌 국민 대다수 여론에 따른 당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국민의 시각에서 당론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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