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회사 관두던 날 카카오톡으로 받은 동료의 이별 선물

중앙일보

입력 2020.12.23 14:00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28)

올해는 심심한 연말이 될 것이라는 한탄에 재기발랄한 직장동료가 ‘쓸데없는 선물 교환식’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이벤트인데, 비싸지 않고 쓸모가 없는 물건을 가져와 서로 교환하고 품평하는 놀이라고 한다. 쓸데없는 선물 중 가장 재미있던 것은 작년 달력이었다. 코로나19로 연말 모임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작년 달력 몇 개정도 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선물을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받는 사람 마음을 독심술로 보지 않고서야 받는 이의 취향과 필요를 가늠할 수 없을뿐더러, 직접 물어보기도 민망한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좋은 선물이란 ‘내 돈 주고 사기는 아까운데, 가지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그간 받았던 선물 중 떠오른 것이 있다. 바로 ‘전동 와인오프너’다.

내 돈 주고 사기는 아깝지만 선물 받으니 좋은 전동 와인오프너. [사진 마켓컬리]

내 돈 주고 사기는 아깝지만 선물 받으니 좋은 전동 와인오프너. [사진 마켓컬리]

대학 후배가 결혼 선물로 준 것인데, 30cm 정도 되는 크기에 원통 모양이다. 한쪽 끝에 있는 스크류를 포일을 제거한 와인병에 고정하고 스위치만 누르면 아주 간단하게 코르크가 제거된다. 와인을 마시려다 잘 못 따서 코르크 부스러기가 와인에 섞여 낭패를 본 적이 있거나, 수동 와인오프너 사용이 불편한 분에게 추천한다. 사실 나는 소주와 맥주를 좋아해 자주 쓸까 했는데, 전동 와인오프너는 그냥 두는 것만으로도 인테리어 효과가 있다. 이걸 써보기 위해서 마트에서 저렴한 와인 몇 병 사서 먹다가 와인 맛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덤이다. 돈 주고 이걸 샀겠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선물로 받으니 더 좋았다.

위의 예시대로라면 선물의 덕목 중 실용성이라는 항목은 뒷순위로 밀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간 받은 선물 중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꽤 있다. 우선 육아 선배가 준 선물들은 하나하나 그 쓰임이 빛을 발했다. 자장가가 나오는 수유등, 역류방지쿠션, 반응형 장난감과 아기 체육관 등 경험에서 축적된 필살기를 전수 받았다. 육아용품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방대해 나중에 따로 상세히 이야기하겠다.

카카오톡을 통해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전 회사를 그만두던 날,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카카오톡으로 작은 가습기를 선물로 받았다. 이리저리 인사하고 짐이 많던 터라 경황이 없었는데 ‘그래도 직장생활을 못 하지는 않았구나’라는 훈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새로 온 회사에서도 건조한 겨울이 되면 책상 한켠에서 열심히 습도를 올려주고 있는데, 덩치 큰 남성과는 거리가 있는 귀여운 디자인이라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고는 한다. 작지만 성능은 좋아서 자리 주변 동료도 만족해한다.

아내에게 처음 받았던 선물은 휴대용 선풍기인데, 나처럼 땀이 많은 체질에는 생활필수품이다. 여름에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겨울철에는 껴입어서 땀이 나기에 사시사철 유용하다. 사무실에 두고 출근길에 흘린 땀을 말리는 데 유용하고, 업무하다 열 받았을 때도 쓴다. 스마트폰 충전잭으로 간편히 충전할 수 있으며, 내구성도 좋아서 3년이 되어가는 데도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사무실 책상을 지키고 있는 미니선풍기와 가습기. [사진 한재동]

사무실 책상을 지키고 있는 미니선풍기와 가습기. [사진 한재동]

집들이 선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휴지다. 휴지 회사도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지, 얼마 전 친구들이 사 온 두루마리 휴지의 이름이 ‘잘 풀리는 집’이었다. 휴지이니 실용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잘 풀리는 집’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포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나라면 집들이 초대받았을 때 이 휴지를 살 것 같은데, 작명한 직원에게 회사 차원에서 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다.

자기보다 오래된 비누를 본 적 있는가? [사진 한재동]

자기보다 오래된 비누를 본 적 있는가? [사진 한재동]

비누를 결혼 선물로 주는 시대가 있었다. 얼마 전 어머니가 오래된 비누를 찍어서 보내주셨는데, 무려 내 나이보다 많은 비누라고 한다.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 결혼할 때 선물로 사주셨다는데, 미국의 ‘다이얼’과 ‘카메이’비누였다. 결혼 선물로 비누를 사주셨다는 것도 놀랐지만, 그걸 안 쓰고 가지고 계셨던 것도 놀랍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지금 저 비누들은 언제든지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실용적인 물건이라도 이렇게 쓰지 못하고 간직하는 선물이 있는 법이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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