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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만 보고 아내 불륜 확신' 망상·공작의 한국판 오셀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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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검찰이 총선을 앞두고 여권 인사 수사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라 생각했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징계위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이 증언은 검찰총장 징계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여기가 전체주의 사회인가. 국가기관에서 내리는 징계의 근거가 허구, 그것도 음모론이었다니, 심히 해괴한 일이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검찰 쿠데타설은 권력 비리 수사를 막으려고 급하게 날조한 이야기였다 #폐쇄된 집단에서 같은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집단 전체가 믿게 되는 법 #자기들끼리 그 거짓말을 주고받다가 자기들이 그 거짓을 믿게 된 것이다 #대통령마저 거짓을 근거로 한 징계를 재가함으로써 그 망상을 추인했다 #자기들이 나라를 구한다고 착각하는 망상 속에 단체로 실성한 것이다

세 개의 거짓말로 엮은 음모론

채널A 사건은 이미 그 본질이 ‘검언유착’이 아니라 ‘권언유착’ 사건으로 밝혀지고 있다. ‘검찰이 유시민에 대한 수사로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는 음모론은 애초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저격하기 위해 날조한 각본에 불과했다. 그 각본은 제보자 지모, 최강욱 의원과 유시민 작가가 뱉어낸 세 가닥의 거짓말을 엮어서 짠 것이다.

지모는 ‘이철 회장이 돈을 건넨 정치인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거짓말로 채널A 이동재 기자를 낚았다. 최강욱은 한동훈 검사장에게 ‘기자를 통해 이철에게 유시민에 관한 허위증언을 강요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유시민은 대검에서 제 계좌를 들여다봤다며 바람을 잡았다. MBC와 KBS는 이들의 거짓말을 사실로 둔갑시켰다.

이에 맞서 한 검사장과 이 기자가 녹취록을 공개해 버렸다. 거기서 한 검사장은 기자의 질문에 “유시민에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기자 역시 총선과 엮으려는 지모의 집요한 유도심문에도 정치인 명단을 넘겨받는 것은 “총선 전이든 후든 상관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로써 검언유착 프레임을 떠받치던 두 기둥이 무너졌다.

결국 검찰 수사심의위에는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그 후 이 사건이 외려 ‘권언유착’에 가깝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총장 징계의 기초 조사를 맡았던 이정화 검사는 ‘채널A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에서 당시 지모와 MBC가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은 증거를 확보하고도 덮었다’고 폭로하고 나섰다.

거짓이 사실을 단죄하다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문제는 이 허위가 검찰총장에 대한 공적 징계의 근거로 활용됐다는 데에 있다. 거짓이 진실을 단죄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징계위에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이 포함된 것은 사태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KBS에 한 검사장을 음해하는 허위정보를 흘린 것으로 지목된 인물. 가해자가 피해자를 징계하는 꼴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그냥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즉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사건, 월성 원전 사건 등 권력 비리에 대한 수사를 덮으려고 거짓임을 알면서도 검찰총장에게 억지 혐의를 뒤집어씌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건대 사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날조한 허구를 스스로 믿는 착란에 빠져 있는 듯하다. 가령 추미애 장관은 고작 강요미수 사건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허위로 밝혀질 경우 불어올 역풍을 각오하고 그 일을 강행한 것은 그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었다는 얘기다. 그는 아직도 그 망상 속에서 몸에 갑옷을 두르고 비장하게 잔 다르크 연기를 하고 있다.

정진웅 부장이 한 검사장에게 플라잉 어택을 가한 것도 그의 핸드폰 안에 음모의 증거가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리라. 독직 폭행으로 기소당한 그를 외려 영전을 시킨 것도, 그 핸드폰 안에 음모의 증거가 실존한다는 확신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추 장관은 그 때문에 비밀번호 강제해제법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검찰 쿠데타라는 집단망상

이 착란은 몇몇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것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채널A 기자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 의견서에 “한동훈 검사장 외에 송경호·신봉수 차장 등도 이번 사건에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어냈다고 한다. 이 거짓말에 속아 법원에선 덜컥 영장을 내줬다. 음모론이 졸지에 사법적 현실이 된 것이다.

가장 증세가 심한 것은 조국 전 장관으로 보인다. “작년 하반기 초입 검찰 수뇌부는 4·15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면서 검찰 조직이 나아갈 총 노선을 재설정했던 것으로 안다. 문재인 대통령 이름을 15회 적어 놓은 울산 사건 공소장도 그 산물이다.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 후 대통령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이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작년 어느 술자리에서 윤 총장에게 “표창장은 강남에서 돈 몇십만 원 주고 다들 사는 건데 그걸 왜 수사했냐”며 “형이 정치하려고 국이 형(조국 전 장관) 수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단다. 윤 총장이 대통령 되려고 조국을 수사했다는 것이다. ‘검찰 쿠데타’라는 표현이 그저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치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 징계 사유가 된다는 게 정상인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음모론 사유를 하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사회에 봉사할 길을 찾겠다”는 평범한 말도 위험한 정치 행동, 위협적인 출마 선언으로 들릴 수 있다. 실제로 최강욱 의원은 윤 총장의 출마를 금하는 법까지 발의했다.

망상이 현실이 된다

어쩌다 저 지경이 됐을까? 최강욱 의원이 자신에 대한 기소를 ‘검찰 쿠데타’라 비난했을 때만 해도 그 말은 아직  ‘비유’에 불과했다. 하지만 검찰의 칼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신라젠과 라임·옵티머스 사태, 월성 원전 수사로까지 이어지면서 ‘검찰 쿠데타’라는 말은 한갓 정치적 수사를 넘어 객관적 사실로 굳어지기 시작한다.

결정적 계기는 채널A 사건이었다. 한 기자의 일탈이 그들의 눈에는 검찰 쿠데타론의 현실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로 보인 것이다. 손수건만 보고 아내의 불륜을 확신한 오셀로처럼 그들은 그 사건 이후 검찰이 정말 정권을 전복하려 한다고 굳게 믿게 된다. 그들은 지금도 이미 허구로 드러난 그 사건에 집착한다.

그 사건이 터지기 직전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은 “2019 기해년 검찰 쿠데타 세력 명단”이라며 총장을 포함해 검찰 인사 14인의 이름을 공개했다. 같은 날 SNS에는 최강욱과 찍은 사진과 함께 “이제 둘이서 작전 들어갑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제보자 지모는 이를 공유하며 “부숴봅시다. 윤석열 개검을!”이라고 코멘트했다.

착란에 빠져 최강욱은 녹취록에 없는 말을 꾸며냈다. 추미애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정진웅은 상관에게 몸을 날렸다. 한동수는 징계위에서 허무맹랑한 증언을 했고, 박은정은 한 검사장의 통화기록을 불법으로 윤 총장 사찰에 사용했다. 이 모든 미친 짓은 검찰 쿠데타설을 사실로 착각한 망상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집단적 착란상태

검찰 음모론은 원래 권력 비리 수사를 막으려고 급하게 날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폐쇄된 집단 안에서 늘 같은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집단 전체가 그 말을 믿게 되는 법. 자기들끼리 그 거짓말을 주고받다가 결국 자기들까지 그 거짓을 믿게 된 것이다. 대통령마저 그 거짓에 근거한 징계를 재가함으로써 그 망상을 공적으로 추인해 주었다.

망상이란 원망(願望)을 현실로 둔갑시킨 것이다. 조국은 검찰 쿠데타의 개시 시점을 표창장 수사가 시작된 “작년 하반기 초입”으로 특정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가 “대통령 탄핵”을 노린 검찰 쿠데타의 일환이었다고 자기세뇌를 하는 것이다. 하긴, 그동안 내세워 온 정의로운 지식인의 상을 유지하려면 망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정·청도 그를 따라 망상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기들의 비리를 무시해도 좋을 ‘실수’, 벗겨줘야 할 ‘누명’으로 처리하려면 ‘검찰=악마’라는 망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이 망상에 대응하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현재의 검찰을 악마화하기 위해 그들은 무려 19년 전의 검찰상을 다시 소환하게 된다.

추미애 장관이 국회에 나와 ‘19년 전 1년간 검사’의 책을 읽은 것은, 양심의 저항을 꺾고 망상을 강화하기 위한 영적 훈련이다. 그 책을 보란 듯이 읽은 것은 망상을 지키는 전선으로 결집하라고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다. 어떤 거짓말에도 속아줄 준비가 된 광신적 지지자들은 그 망상을 지켜주는 혁명무력이다.

“조국이 흘린 피를 머금고 여기까지 왔다. 노예해방도, 여성 투표권도, 식민지 조국의 독립운동도 방해하던 무리가 있었다. 먼 훗날 검찰 개혁에 저항하던 세력이 있었노라고 웃으며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정청래) 지지자들은 망상을 수호하며 자기들이 나라를 구한다고 착각한다. 숭고한 망상에 사로잡혀 단체로 실성한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