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철호 칼럼

“윤석열은 문 대통령에게 덤빌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23 00:45

업데이트 2020.12.2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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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586 탈레반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자진 사퇴하라”고 집단 린치를 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도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며 윤 총장 퇴진을 주문했는데도 행정소송으로 덤빈다는 것이다.

수난 각오한 ‘국민의 검찰’ 표현
김익진·이명재 전 총장 떠올라
“사법의 정치화” 경계하면서도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하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윤 총장은 정직 1개월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판사 사찰, 수사 방해, 감찰 방해 같은 징계 죄목을 인정하는 순간 검사로서의 명분이 사라진다. 더구나 징계 혐의 하나하나가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만큼 휘발성이 강하다. 곧바로 좌파단체들의 고발이 들어오고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할 게 뻔하다. 윤 총장은 법치주의는 물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법적 다툼이 불가피하다.

윤 총장 지인들은 그의 “국민의 검찰이 되자”는 발언 뒤에는 두 사람이 어른거린다고 했다. 한 명은 이명재 검찰총장(2002년 1~11월 재임)이다. 그는 로펌에 있다가 총장으로 발탁되자 같이 일하던 윤석열 변호사에게 다시 검찰로 돌아가자고 권유한 인물이다. 그의 총장 집무실에는 단 한 권의 책도 꽂혀있지 않았다. 오직 법전 한 권과 낡은 서류 가방뿐이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까지 구속했다. 그리고 취임 11개월 만에 검찰에서 피의자가 숨지자 사표를 던져 깨끗한 뒷모습을 남겼다. 금태섭 전 의원의 표현대로 ‘검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검사’다.

또 한 명은 2대 검찰총장 김익진(1949년 6월~1950년 6월 재임)이다. 그는 평양에서 반탁운동을 하다 소련 군정에 체포돼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승만 대통령은 월남한 그를 ‘반공 투사’라며 검찰총장에 앉혔다. 하지만 경무대에 선을 댄 정치 브로커들이 무고한 인사를 빨갱이로 몬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이 터지자 참지 못했다. “그들(정치 브로커)을 기소하지 말라”는 이승만의 친필 서신을 무시하고 108명을 체포했다.

분노한 이승만은 그를 서울고검장으로 좌천시켰다. 김익진은 그런 치욕 속에서도 “정치적 압력으로 검사를 몰아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며 고검장직을 묵묵히 수행했다. 이승만의 보복은 끝나지 않았다. 1952년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이 터지자 그를 배후 인물로 몰아 63일간 투옥했다. 그는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총장이면서도 국민의 총장”이라며 스스로 수난을 각오했다. 역대 43명의 검찰총장 중 정권의 시녀가 되길 거부한 가장 상징적 인물이다.

이제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제 법원이 윤 총장 징계 집행정지 신청의 심문을 했고 곧 결정을 내릴 모양이다. 결과는 속단할 수 없지만 징계 자체는 부당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미국에는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 아니라 반드시 보여져야 한다’는 법언(法諺)이 있다. 판결의 공정성 못지않게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징계는 실패작이다. 여론조사에서 54.8%가 “윤 총장의 동반사퇴는 불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징계가 정의롭게 보여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심리를 맡은 홍순욱 부장판사가 어떤 결심을 할지는 미지수다. 그와 판사를 같이 했던 두 명의 변호사에게 물어보았다.

A 변호사=핵심은 정직 2개월이다. 해임이었다면 당연히 인용할 것이다. 하지만 정직 이후 이미 일주일이 넘었고 남은 50여일을 복귀시키느냐 마느냐다. 이미 대통령의 재가까지 끝난 마당에 인용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치적 파장이 너무 크다. 정치의 사법화도 문제지만 사법의 정치화도 경계해야 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이 선출된 정치권력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중에 정치로부터 사법부를 보호하기도 어렵다. 홍 판사의 평소 성향이 신중한 만큼 법원이 정치적 다툼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집행정지는 기각시키고 시간을 두고 본안 소송에서 다투라고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B변호사=이번에 기각하면 남은 임기(7개월)가 끝난 뒤에야 본안 판결이 나온다. 너무 늦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이 있다. 윤 총장 징계가 부당한 만큼 시급한 구제가 필요하다. 일반 회사원이라도 이런 징계를 받아 법원에 오면 대개 집행을 중지시킨 뒤 본안을 심리한다.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 징계는 더 엄격해야 한다. 판사 시절 중대한 판결 때는 법리 연구와 함께 사회 분위기와 법조계 의견도 살피는 경우가 많다. 이미 여론조사에서 부당한 징계라는 게 대세다. 경륜이 풍부한 전직 검찰총장 9명의 집단성명도 무겁게 다가온다. 원칙론자인 홍 판사도 이런 법리적·사회적 분위기를 살펴 인용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럼에도 A와 B의 공통분모는 다음과 같은 4개 의견이었다. “윤 총장 징계는 공정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홍 부장은 이번 판결을 내리기에 적합한 무색무취한 판사다” “이번 결정은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판결의 하나가 될 것이다” “법조인이라면 윤 총장이 문 대통령에게 덤비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법적 투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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