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D] 얕아지는 불쾌한 골짜기, 인공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0.12.22 18:29

업데이트 2021.03.26 09:02

트랜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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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 교수가 만든 개념인데, 기술의 발전이 너무 가팔라서, 가짜가 어느 순간 지극히 진짜 같은 것으로 구현되고야 말았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뜻한다. 가령 지난해 여름 디즈니에서 낸 영화 〈라이온킹〉에서는 귀여운 사자 캐릭터 심바 대신, 진짜 아기 사자에 아주 자연스러운 컴퓨터 그래픽을 입혀 더욱 실감 나는 동물의 왕국을 그려냈는데, 이를 본 일부 사람들이 ‘불쾌감’을 토로했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경쾌함이 실사 느낌으로 인해 크게 깎였고, 더구나 진짜 동물이 〈하쿠나 마타타〉를 부르는 모습들 또한 어쩐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는 것. 비슷한 사례로,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처음 사람처럼 뛰어다니는 로봇들을 선보였을 때에도, 많은 사람이 공포감을 느낀다고 답하기도 했다. 사람보다 다소 모자라는 존재를 만드는 건 좋지만, 사람과 너무 닮았거나, 현실 존재들과 너무 흡사한 로봇 기술은 어쩐지 싫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의 한 연구진에 의해 신경학적으로도 규명되기도 했다.

미디어가 이끄는 ‘인간 같은 AI’에 대한 친밀감

그런데, 요즘은 이 불쾌한 골짜기가 급속도로 얕아지는 분위기다. 어느 정도 사람과 비슷해 져도, “그런가 보다”하고 받아들이는 풍경이 곳곳에서 목도된다. 이런 현상이 가장 먼저 목격되는 곳은 SNS. 사이버 가수 아담이 나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사람처럼 만든’ 인스타그램 가상 인플루엔서 모델이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미국 PR 업체에서 2016년 탄생한 릴 미쿠엘라와 일본에서 만든 모델 이마(사진 참고)다. 특히 이마의 경우 너무 비슷한 외형에 처음에는 ‘소름 끼친다’는 평이 많았지만,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가상 인물임을 알고도 “사랑한다” “닮고 싶다”는 류의 친밀한 댓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림 1. 1998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왼쪽)과, 그로부터 20년 뒤에 활동을 시작해 현재도 인스타그램에서 유명 셀럽으로 활약하고 있는 가상 모델 릴 미쿠엘라(중간)와 사람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높은 유사도를 자랑하는 가상 모델 이마(오른쪽).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릴 미쿠엘라(lilmiquela)/이마(imma.gram) 인스타그램 캡쳐.

그림 1. 1998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왼쪽)과, 그로부터 20년 뒤에 활동을 시작해 현재도 인스타그램에서 유명 셀럽으로 활약하고 있는 가상 모델 릴 미쿠엘라(중간)와 사람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높은 유사도를 자랑하는 가상 모델 이마(오른쪽).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릴 미쿠엘라(lilmiquela)/이마(imma.gram) 인스타그램 캡쳐.

시각적 실체가 아닌 청각적 실체로서 없는 자를 살려내는 프로젝트도 이제는 대중적인 소재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세상을 떠난 가수의 목소리로 신곡을 발표하거나 요즘 노래를 부르도록 합성/생성하는 것이다. 2008년 고인이 된 혼성그룹 〈거북이〉의 멤버 터틀맨의 목소리가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복원되는가 하면, 곧 지상파 채널에서도 김광석이 부르는 ‘보고 싶다’(원곡: 김범수)를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올 초에는 세상을 떠난 아이를 VR 기술로 재현해낸 다큐멘터리도 화제를 모았다. 실재하지 않는 인간적인 모습들을 AI로 만들어내는 일이 미디어를 매개로 우리 주변에 확산하는 것이다.

인간 같은 AI 기술과의 상호작용

기술의 발전도 놀랍지만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새롭다. 소름 끼치는 경험이라는 관점에서의 불쾌한 골짜기는 그다지 목격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별이 된 가객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인물을 둘러싼 서사적 감동이 외려 절절하게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다. 불편할 수도 있을법한 골짜기를, 눈물을 흘리는 관중의 클로즈업과 가슴 시린 자막, 끊었다 반복했다 느리게 재생하는 형태의 편집 컷들로 미디어가 꾹꾹 채우는 것이다.

이처럼 AI 기술이 만들어내는 ‘인간 같음’에 대한 이슈는 어떤 프레임 안에서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풀어내느냐에 달린 것 같다. 다른 한 편에서는 그저 마음이 불편한 수준의 불쾌한 골짜기가 아니라, 인간에게 불안감을 주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줄곧 흘러나오고 있다. 인간의 목소리 합성 기술은 보이스피싱용으로 악용될 수 있고, 얼굴 합성 및 생성 기술은 이미 수많은 포르노 영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사람이 가짜 여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섰으니, 이제는 기계끼리 알아볼 수 있는 패턴을 활용해 페이크(fake)를 골라내려는 기술 또한 학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사이버 펑크 장르에서는 인간과 인간 같은 인공물 간의 친밀감과 적대감을 지속해서 그려왔다. 정말로 인간 같은 인공물이 현실 세계에 들어온 지금, 이제는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토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악용 사례에 끌려다니며 공포감만 키우고, 미디어가 만든 스토리에 휘둘려 신기해하며 환호만 하기보다는, 인간 같은 인공물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알아야 하는 시점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아무렇게나 급히 흙을 쏟아부은 지반은 약할 수밖에 없다. 얕아진 골짜기에 통째로 산사태가 나지 않도록, 더 나은 상호작용을 위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옳을지 열어놓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유재연 객원기자는 중앙일보와 JTBC 기자로 일했고, 이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미지 빅데이터분석, 로봇저널리즘, 감성 컴퓨팅을 활용한 미디어 분석에 관심이 많다. 현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you.j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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