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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총리 겨냥한 하루키 "비판을 비판으로 받아쳐…부끄러운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심해진 사회 혼란, 이를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정치권 등을 향해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총리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에 게재된 인터뷰에서다.

무라카미 하루키 프랑스 리베라시옹 인터뷰 #“일본 총리,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설명해야” #국난 틈타 문제 회피하려는 정치권 세태 비판 #"코로나 재앙, 포퓰리즘·인터넷 등과 결부… #언론과 SNS 오가는 말의 수준도 떨어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2018년 11월 4일 모교인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2018년 11월 4일 모교인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무라카미는 이 인터뷰에서 “‘코로나 재앙(禍)’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건 아니며 경제의 글로벌화, 포퓰리즘, 인터넷의 발달 등과 따로 떼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로 빚어진 혼란을 단순한 감염 사태로만 볼 게 아니라, 사회와 정치권의 오랜 문제와 결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언론 노출을 자제해오던 무라카미는 최근 들어선 각종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우려를 나타내곤 했다. 앞서 7월 그는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 놓일 경우 간토(關東)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처럼 사람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며 “그런 것을 진정시켜 가는 것이 미디어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선 특히 정치권을 향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무라카미는 정부나 정치인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 유지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태를 끌어갈 위험을 언급한 뒤 “이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게 학자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 있다.[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 있다.[연합뉴스]

해당 발언은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혼란을 틈타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정치 세력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라카미는 “언론과 SNS에서 오가는 말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며 “비판을 받으면 제대로 답하지 않고 다른 비판으로 맞받아치는 현상이 그렇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총리마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며 “자기 안에 무엇을 가졌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해 4월 신주쿠교엔 (新宿御苑)에서 개최된 '벚꽃 보는 모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아키에 여사가 연예인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지통신]

지난해 4월 신주쿠교엔 (新宿御苑)에서 개최된 '벚꽃 보는 모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아키에 여사가 연예인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지통신]

이를 놓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내각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현 내각이 국난(國難)을 핑계로 불리한 문제를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을 지적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아베 전 일본 총리의 경우 재임 중 ‘벚꽃을 보는 모임’(벚꽃 모임) 행사에 참석한 지지자들의 참가 비용을 대납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자신은 모르는 일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스가 총리는 지난 10월 정부 정책에 비판적 견해를 밝혀온 학자를 일본학술회의 회원으로 임명하는 데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면서도 자세한 설명 없이 “학문의 자유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만 한 채 “일본학술회의를 행정 개혁 대상으로 삼고 조직을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구설에 올랐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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