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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자성어 '아시타비'···與 적나라하게 보여준 다섯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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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진보 논객인 강준만(64) 전북대 교수는『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인물과사상사)에 “착한 권력을 표방했거니와 자신들에겐 그런 DNA가 있다고까지 큰소리친 권력 집단이 내로남불의 화신이 될 때 어찌해야 할까”라며 문재인 정부의 '아시타비'를 비판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진보 논객인 강준만(64) 전북대 교수는『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인물과사상사)에 “착한 권력을 표방했거니와 자신들에겐 그런 DNA가 있다고까지 큰소리친 권력 집단이 내로남불의 화신이 될 때 어찌해야 할까”라며 문재인 정부의 '아시타비'를 비판했다. 연합뉴스

아시타비(我是他非).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의 신조어다. 시중에 자주 쓰이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내로남불과 관련해 진보 논객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문재인 정권의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굳이 지적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시간적 범위를 2020년으로, 분야를 정치로 한정해 거여(巨與) 더불어민주당의 아시타비를 정리해 봤다. 과거 자신의 발언과 상반되는 최근 언행이 무수해 ‘조로남불’이라는 유행어를 낳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개인 차원의 사례는 배제했다.

①스스로 찢은 선거법=지난 2월 11일 오전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 느닷없이 삼행시가 등장했다. 전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으로 당시 박경미 원내부대표(현 청와대 교육비서관)가 지은 삼행시는 이랬다. “‘기’생정당은 ‘생’겨선 안 된다. ‘충’분히 법에 근거하여 중앙선관위가 판단할 것을 기대한다.” 민주당이 주도해 지난해 12월 27일 개정한 선거법(준연동형 비례제)의 맹점을 파고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위성정당 창당 시도를 조롱한 것이다.

지난 2월 26일 저녁 더불어민주당 핵심 의원 5인은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회동하고, 당시 야당의 비례 위성정당(미래한국당)에 맞대응하는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이인영(현 통일부 장관·왼쪽)·홍영표 전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지난 2월 26일 저녁 더불어민주당 핵심 의원 5인은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회동하고, 당시 야당의 비례 위성정당(미래한국당)에 맞대응하는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이인영(현 통일부 장관·왼쪽)·홍영표 전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그러나 민주당은 2월 26일 ‘마포 5인 회동’을 기점으로 위성정당 경쟁 합류로 급선회했다. 안 하면 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독식할 수 있단 시뮬레이션 결과를 당내에 돌리면서다. 미래한국당을 ‘위장정당’이라고 비난했던 이해찬 당시 대표는 지난 3월 전 당원 투표(찬성 74.1%)를 명분 삼아 태도를 180도 바꿨다. 통합당이 한 일은 “의석을 도둑질하는 만행”이지만 자신들의 결정은 정당방위라는 논리였다. 당시 상임선대위원장인 이낙연 현 민주당 대표는 비공개 지도부 회의에서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 동안 이어질 것”이란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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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증발한 무공천 원칙=실리 앞에선 ‘정당의 헌법’이라는 당헌도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으로 촉발된 내년 4월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하면서다.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다”(이낙연 대표)란 이유였다. 개정 전 당헌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선을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96조 2항)는 규정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당 혁신위를 통해 만든 조항이었다. 당 대표 시절(2015년 10월 11일) 군수 재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고성을 찾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재선거의 원인 제공자이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 대통령은 이번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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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8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위한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거리 행진을 벌인 뒤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8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위한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거리 행진을 벌인 뒤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③피해자 vs 피해호소인=민주당 지도부가 박 전 시장 사망 직후 그의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논란이 됐다.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는 여성이 있을 뿐, 아직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했을 때나, 같은 해 3월 김지은씨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했을 때도 일관되게 ‘피해자’란 호칭을 써 왔다. 그런데 박 전 시장 사건에는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란 비판 여론이 높아진 뒤 당 전략기획위의 건의에 따라 피해자 호칭을 다시 쓰게 됐지만, 그 전까진 박 전 시장 조문 정국 속에서 그의 성추행 의혹에 관해 묻는 이들은 “XX자식”(이해찬 전 대표)이란 욕설을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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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삽질과 균형발전 사이=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적절성을 문제 삼으며 ‘토건 경제’ ‘삽질 정부’라고 비판했던 민주당은 집권 후엔 국가균형발전이란 잣대로 SOC 사업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 규모가 88조1000억원에 달했다. 이명박(60조3000억원)·박근혜(23조6000억원) 정부 시절 예타 면제사업 규모를 이미 뛰어넘었다. 민주당이 지난달 26일 발의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예타 면제 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특별법 발의 이튿날인 지난달 27일 “이명박 정권 당시 4대강 사업의 예타 면제를 강력히 비난하며 대규모 SOC 투자를 하지 않겠다던 그 민주당과 여전히 같은 정당이냐”고 꼬집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국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위한 본회의에 참석하며 국민의힘 의원 일부의 욕설에 대해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국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위한 본회의에 참석하며 국민의힘 의원 일부의 욕설에 대해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⑤줬다가 빼앗은 비토권=지난해 12월 30일 민주당이 군소야당과 힘을 합해 의석수로 강행 처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에는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veto·거부)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있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7명(야당 측 2인 포함) 중 6명의 동의를 받아야만 후보 2인을 대통령에 추천할 수 있게 했던 조항이다. 공수처법 제정 과정에선 여당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을 앉혀 ‘독재의 수단’으로 쓸 것이라는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주장을 “야당의 비토권으로 시스템 독립성이 보장된다는 걸 다들 인정했기 때문에 문제없다”(박주민 의원)는 논리로 막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1년 만에 공수처법 속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추천위원 3분의 2 찬성)했다. 야당이 비토권을 남용해 공수처 출범을 지연시킨다는 이유였다. 이번엔 민주당 의석만으로도 상임위·본회의 통과가 가능했다.

하준호·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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