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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 칼럼니스트의 눈

코로나 팬데믹에 선방한 청년 지도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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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청년정치

서구의 30대 총리들은 젊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패기와 결단력으로 코로나 위기에서도 단호한 선제적 대처로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왼쪽부터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제바스타인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AP·EPA·신화=연합뉴스]

서구의 30대 총리들은 젊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패기와 결단력으로 코로나 위기에서도 단호한 선제적 대처로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왼쪽부터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제바스타인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AP·EPA·신화=연합뉴스]

코로나 팬데믹은 필연적으로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각자의 성적표를 안겼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대처에서부터 백신 확보 노력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필요한 덕목인 판단력과 결단, 용기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던 까닭이다.

40세 아던 총리의 선제적 방역 #사망자 수 25명 불과 뉴질랜드 #핀란드·오스트리아도 대처 잘해 #젊은 패기와 결단력, 국민 지지

물론 각국 사정이 다 다르고 정책 수행에도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데 나름의 우선순위가 있기에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건 다소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살펴보면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정치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젊은 지도자들이 대체로 선방을 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주 치러진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40) 총리다. 그녀가 이끄는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당은 49%의 득표율로 120개 의석 중 64석을 확보, 단독 과반 의석을 달성했다. 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점유한 것은 뉴질랜드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분배하는 혼합비례대표제를 도입한 1996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노동당 역사상으로도 득표율 49%는 50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뉴질랜드 노동당의 대승은 무엇보다 아던 총리의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의 결과라 할 수 있다. 2월 28일 첫 번째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한 뉴질랜드는 지금까지 감염자 수가 2000명이 안 된다. 사망자 수도 25명에 불과하다. 지난 3주간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 말고는 지역 내 신규 감염자가 한 명도 없다. 총인구수가 500만명에 불과하긴 하지만 훌륭한 방역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결과는 서방국가 중에서 가장 강력한 봉쇄정책을 펼친 아던 총리의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는 코로나 감염 발생 20일만인 3월 19일 외국인 여행객의 뉴질랜드 입국을 막고 100명 이상 모이는 집회도 금지했다. 나흘 후에는 학교를 닫았고, 약국 등 필수 영업장을 제외한 상점과 공공기관을 전면 폐쇄했다.

강력한 봉쇄정책으로 인한 국민 불만이 나올 법한데, 아던 총리는 부드러운 리더십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소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공식 브리핑 외에도 자택에서 실시간 SNS 방송을 수시로 함으로써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코로나 방역수칙을 일깨웠다. 티셔츠 차림으로 국민 앞에 서기도 했고, 어린 딸을 재운 뒤 방송을 하기도 해 국민을 감동시켰다.

17세에 노동당에 입당한 아던 총리는 헬렌 클라크 전 총리 사무실에 정치를 배웠고, 한때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8년 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으며, 2017년 37세의 나이로 최연소 노동당 대표로 취임했다. 그해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해 9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고 최연소 여성 총리가 됐다.

지난해 12월 34세의 나이로 총리에 취임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또한 코로나 팬데믹에 훌륭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핀란드 외교부는 올 1월 27일 중국 후베이성으로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다가 다음날 첫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하자 곧바로 핀란드 항공사 핀에어의 난징과 베이징 행 노선 5개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신천지발 감염자가 폭증하자 즉각 항공편을 중단시키는 등 선제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핀란드는 이달 14일 현재 총확진자 수가 3만2582명에 사망자가 489명으로 인구(550만명) 대비 아주 낮은 편은 아니지만, 하루 발생 확진자 수가 10일 84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다시 300여명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마린 총리는 6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마린 총리와 세계 최연소 총리 기록을 다투고 있는 제바스타인 쿠르츠(34) 오스트리아 총리 역시 선제적 조치로 코로나 확산에 발 빠르게 대처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만 35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벌써 두 번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가 올해 1월 총리실에 재입성하자마자 당면한 제1과제가 코로나 방역이었다.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환자가 급증하자 쿠르츠 총리는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 철로를 폐쇄했다. 이어 3월부터는 이탈리아에서 오는 여행객의 입국을 제한했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자유 왕래를 보장하는 솅겐 조약을 적용받지만, 오스트리아에 입국하려는 이탈리아 국민은 건강증명서를 의무적으로 지참하게 했다.

마스크 착용 역시 3월부터 식품점, 약국 등 다중시설 방문 때 의무화해 마스크 착용을 금기시하는 유럽 문화를 일찍부터 바꿨다. 자신도 현장 방문 외에도 의회 출석 때마다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선제적 대처로 초기에 코로나 확진율이 이웃 스위스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오스트리아 역시 코로나 2차 웨이브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하루 확진자 수가 지난달 13일 9586명까지 치솟기까지 했다. 하지만 쿠르츠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18일 현재 2000명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나라마다 코로나에 대처하는 환경과 사정이 모두 다르다. 젊은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코로나를 더 잘 극복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연륜이 깊지 않은 젊은 지도자라고 코로나 같은 재앙에 대처하는 지혜가 부족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패기와 결단력으로 더욱 선제적이며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을 수립하고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음을 뉴질랜드와 핀란드, 오스트리아의 젊은 총리들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30대에 이미 20년 정치경력

서구의 청년 정치인들이 30대에 이미 총리가 돼 맹활약을 펼치는 것은 우리에겐 참 낯선 풍경이다. 물론 그들이 우리나라 젊은이들보다 우수해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정치인 충원 시스템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조직적인 덕분이다. 30대라고 같은 30대가 아닌 것이다.

선거철에만 늙은 정당의 주름살을 가리기 위해 경험 없이 위에서 내려꽂히는 우리네 청년 정치인들과는 달리, 서구의 청년 정치인들은 30대에 이미 20년 가까운 정치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10대 때 정당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한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역시 17세에 노동당에 가입해 정계 입문했다. 당 청년조직에서 선거운동 등을 도우며 경험을 쌓다가 2008년 비례대표로 중앙정계에 진출한다. 2011년, 2014년 두 번 더 비례대표 연임을 한 뒤 2017년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지역구 의원에 당선됐다. 그해 당 대표에 도전해 성공한 뒤 총선 후 연정을 구성해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이다.

37세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이미 20년의 정치 경력을 쌓아온 터였다. 이미 2015년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4위에 오를 정도로 입지를 다진 중견 정치인이었다.

제바스타인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역시 22세 때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2008년 국민당 청년조직인 청년당 대표로 당선되자 대학까지 자퇴하고 정치에 전념했다. 시의회 의원, 사회통합부 정무차관 등을 거쳐 외교장관이 된 게 27세 때였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도 대학교 때 정치에 입문한 케이스. 23세 대인 2008년 처음으로 시의원에 도전했다가 2012년 당선됐고 2013년에 시의회 의장이 된다. 2년 뒤 의회 의원으로 중앙정치에 진출한 그녀는 2017년 사민당 부대표, 2019년 교통통신부 장관 등의 경력을 쌓은 뒤 총리 후보로 선출돼 총리에 이르렀다.

이들처럼 작은 나라들만 그런 게 아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역시 39세에 보수당 당수로 선출됐지만, 그때는 이미 22세 때부터 당에서 경력을 쌓은 중견 정치인이었다. 39세에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공식 정계 입문은 2012년이지만 2008년부터 국회의원 진출을 고려했었다(공천 탈락).

이처럼 민주정치가 앞선 서구에서는 청년부터 활동하지 않으면 당 대표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조기훈련을 받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거대 정당에서 낙하산 공천 관행을 없애고 청년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구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