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아침에 떼쓰다 매 맞은 은지, 유치원 마치고 하는 말

중앙일보

입력 2020.12.21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8) 

은지를 때렸다. 아침에 깨우려고 은지 옆에 다가갔는데 피곤했는지 인상을 팍 쓰더니 나에게 발길질을 했다. 전에도 발을 구르거나, 짜증을 내거나, “왜요?” 하고 대드는 일이 있긴 했지만, 발길질을 한 건 처음이었다. 찰싹, 나도 은지 발바닥을 세게 때렸다.

“지금 엄마한테 발길질했어? 응? 일어나!”
은지가 울면서 일어났다. 다른 건 몰라도 예의 없이 구는 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두 아이를 키울 때도 그랬다. 놀다가 실수하는 건 이해하지만, 예의 없는 말, 예의 없는 행동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야단을 쳤다.

두 아이를 키울 때도 그랬다. 놀다가 실수하는 건 이해하지만 예의 없는 말, 예의 없는 행동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야단을 쳤다. [사진 배은희]

두 아이를 키울 때도 그랬다. 놀다가 실수하는 건 이해하지만 예의 없는 말, 예의 없는 행동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야단을 쳤다. [사진 배은희]

“발길질, 그거 엄청 나쁜 거야! 엄마도 발길질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야!”

내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들끓었다.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 건지, 육아 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침부터 이게 무슨 전쟁인지…. 은지의 작은 어깨는 한참을 들썩이다가 진정이 됐다.

은지를 유치원에 보내고 방에 앉아 멍하니 벽을 쳐다봤다. 겨울바람 같은 허망함이 갈비뼈 사이로 불어왔다. 은지를 키우는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정말 수없이 포기하며 키웠는데…. 내가 낳진 않았지만 나도 엄마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키웠는데…. 허망함은 하얀 눈보라가 되어 심장 가득 흩날렸다.

은지를 처음 만난 날도 눈발이 날리는 겨울이었다. 제주도 외곽에 있는 미혼모시설에서 은지를 처음 만났다. 생후 10개월이었던 은지는 두 뺨이 터질 듯 빵빵했고, 그 모습이 볼수록 신기하고 귀여웠다. 우린 그렇게 가족이 됐다.

나는 은지 엄마가 되고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40 중반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입술이 성한 날이 없었다. 물집이 잡히고 좀 나을만하면 입안에 뭔가 오돌토돌한 것이 올라오고, 좀 지나면 다시 입가에 물집이 잡히기를 반복했다. 잠 한번 실컷 자보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친정어머니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혀를 찼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쭉쭉 우유병을 빨고, 입맛을 다시고, 트림하는 은지가 우리 집에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은지 엄마가 되고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40 중반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입술이 성한 날이 없었다. [사진 배은희]

나는 은지 엄마가 되고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40 중반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입술이 성한 날이 없었다. [사진 배은희]

또 신앙인으로서, 내 삶으로 살아내고 싶었다. 거룩하게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정작 삶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볼 때마다 말없이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진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경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은지 엄마가 되면서 그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 은지가 첫걸음을 뗄 때, 은지가 말을 할 때, 은지가 성장할 때마다 즐거운 손뼉을 쳤다. 은지가 울 때, 은지가 친엄마를 만날 때, 내 품에 안고 다독이며 나 또한 조금씩 성장했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 아이를 통해 본질을 깨닫고 배워가는 사람…. 사실 은지의 발길질 이후 ‘나처럼 좁아터진 사람이 위탁엄마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더 성숙한 사람이 해야 하는데, 내 수준을 모르고 함부로 덤빈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오후였다. 무겁고 착잡한 마음으로 은지를 데리러 갔다. 혹시 은지도 온종일 쳐져 있었던 건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 갔다. 그런데 은지는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그리고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나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요.”
“응? 뭔데?”
“난 엄마를 사랑해요.”
“히히, 그래, 엄마도 은지를 사랑해!”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걸어왔다. 이렇게 가족이 되어가는가 보다.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질병, 사망,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양육해 주는 제도다. 입양은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해야 하지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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