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처한 위기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예외 없이 ‘편가르기’를 만난다. 윤석열 검찰총장 파문도, 코로나19 대응의 무기력증도 거기서 비롯됐다.
통합 청사진 가득하다던 대통령 #3년반 새 편가르기로 국민 쪼개 #공수처부터 취임 때 약속 지켜야
윤 총장을 찍어내려고 대통령까지 참전한 상황을 보면서 한 전직 차장검사는 “애초에 문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며 검찰총장 인사를 강행한 데서 시작된 사태”라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실세와 고위 법관들을 초토화시킨 윤 총장을 문 대통령이 ‘우리 편’으로 착각한 게 비극의 시작”(지청장 출신 변호사)이라는 얘기다. 그는 “윤 총장 명단이 발표됐을 때 많은 검사들은 그가 언젠가 정권과 엇나가리라 생각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명으로 시기가 빨라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님”을 끌어올린 과정은 놀라웠다. 취임 직후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겼다. 고검장급이 가곤 하던 자리였다. 지난해 7월 윤 총장은 고검장을 건너뛰고 검찰총장으로 직행했다. 직후 인사에서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되는 ‘특수통’으로 검찰 요직이 채워졌다. 현 정권은 ‘조국 사태’가 터지고서야 편가르기에 착오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정체를 알게 된 검사들을 몰아내려 팔도로 내쫓았더니 거기서 칼을 겨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인사는 “뒤늦게 ‘윤석열 라인’을 지방으로 좌천시켰다지만 같은 편으로 믿었을 때 고속승진시킨 바람에 현재도 동기들에게 안 밀리는 지위”라고 설명한다. 허겁지겁 검찰 권한을 쪼그라뜨린 개혁안을 만들고, 시행 한번 안 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고쳐 강행처리했다. 윤 총장 무장해제에 갖은 꼼수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등 돌린 검사들이 늘었다.
편가르기가 혼란을 초래한 건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전대미문의 재난 앞에서 여야는 비난전에 골몰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코로나19 방역을 놓고 야당의 정부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고 했다. “야당의 백신 정쟁화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김태년 원내대표) “K방역 대응에 대한 야당의 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김종민 최고위원) 같은 유사어가 반복된다. 앞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백신과 재난지원금 스케줄을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맞췄단 소문이 있다”고 하자 쏟아낸 반박이다.
사태 초기만 해도 위기 극복에 합심하자는 분위기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의사 가운을 꺼내 입고 대구로 달려갔다. 공조 흐름에 찬물을 끼얹은 건 편가르기다. 정부가 공공의대 이슈를 들고나와 의사들을 자극했다. 의대생을 국가고시 벼랑으로 밀어붙였다. 동료인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 굳이 벽을 쳤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서울 광화문집회 참가자들을 공개적으로 폄훼할 땐 귀를 의심했다. 코로나19가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전염병이 겁나지만 더 절실한 주장이 있어 길에 나간 건 광화문집회 참가자나 민주노총 조합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저쪽 편’ 사람을 향해선 “살인자”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윤석열 찍어내기’에 긴급 투입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윤 총장 사태와 코로나19, 양쪽에 걸쳐있다. 지난달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의 음주 폭행은 법적 처벌 없이 조용히 처리됐다. 이 와중에 술을 마신 것도 그렇지만, 택시기사의 몸에 손을 대기 전에 손소독제를 썼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면전에서 소리칠 때 마스크는 제대로 썼을지…. 와인파티를 벌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남편이 요트 사러 해외로 떠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우리 편’ 사람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한다. 아마도 지난 총선이 현 정권 사람들에게 ‘국민을 둘로 쪼개놓은 뒤 한쪽에 돈을 쏟아부으면 선거는 불패’라는 확신을 심어준 듯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통합을 강조했다. 그게 좋아 그를 지지한 사람이 적지 않다. 취임사에서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 많던 청사진들은 다 어디로 갔나. 3년 반이 지나도록 한 장도 구경한 기억이 없다. 문 대통령 취임사에 대해 “좋은 내용은 다 있는데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라고 한 진보인사 홍세화씨의 언론 인터뷰도 같은 맥락일 터다. 초유의 사태가 거듭되는 난국을 헤쳐나갈 지혜는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 들어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한 분 한 분도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약속을 이제라도 실천하면 된다. 곧 출범할 공수처가 시금석이다. 이번엔 “우리 공수처장님”이 아니라 “모두의 공수처장”을 선택하라. 그게 자신을 찍었던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는 출발점이다.
강주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