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ocus 인사이드]테러전문 생계형 용병, 미국 특수작전에도 투입돼

중앙일보

입력

민간군사기업(PMC)은 분쟁지역에서 정부와 민간의 요청을 받고 경호와 각종 보안 업무 활동에 참여한다. [사진 대테러국제용병협회 제공]

민간군사기업(PMC)은 분쟁지역에서 정부와 민간의 요청을 받고 경호와 각종 보안 업무 활동에 참여한다. [사진 대테러국제용병협회 제공]

미국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최근 해외에서 발생한 2개의 테러사건에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지난달 27일 발생한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사건이다.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배후로 지목하며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이란 측은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가 무자헤딘에할크(MEK)와 함께 관여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유럽 등에서 활동하는 이란 반체제 단체로 이란 정부에 대응한 대리전을 수행한다. 미국은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가 2012년 이를 풀었다.

지난달 27일 파크리자데가 사망했던 테헤란 인근 소도시인 아브사르드의 도로 현장에는 파편이 흐트러져 있다. 공격을 받았던 차량은 총격으로 앞유리가 뚫렸다. 총격에 앞서 도로 인근에 있던 트럭에서 폭발물도 터졌다. [사진 로이터]

지난달 27일 파크리자데가 사망했던 테헤란 인근 소도시인 아브사르드의 도로 현장에는 파편이 흐트러져 있다. 공격을 받았던 차량은 총격으로 앞유리가 뚫렸다. 총격에 앞서 도로 인근에 있던 트럭에서 폭발물도 터졌다. [사진 로이터]

두 번째 사건은 지난 5월 8일 미국인 2명을 포함한 37명의 민간 용병들이 베네수엘라 해변에 침투하다 체포된 사건이다. ‘실버코프 유에스에이(USA)’라는 용병 회사를 세운 ‘조던 구드로’라는 미국인이 주도했다.

그는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이다. 당시 용병 침투 작전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정권 전복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은 남미의 대표적인 강성 좌파정권으로 미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다. 이로 인해 반미 중남미 국가들의 정권 타도를 목적에 둔 미국 정부가 외국 용병을 활용한 배후라는 의심을 받는 상황이 됐다.

이 두 사건으로 미국과 해당국 사이의 긴장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식 외교에서 벗어나 다자주의로 가려는 바이든 당선인의 외교·안보 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지난 5월 6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군은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해변에 침투하다 체포된 용병에 미국인도 포함돼 있다고 발표하며 관련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 5월 6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군은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해변에 침투하다 체포된 용병에 미국인도 포함돼 있다고 발표하며 관련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앞의 두 사건의 특징은 훈련된 민간인이 용병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1949년 채택된 제네바협약 부속의정서는 “용병은 분쟁 당사국 국적자가 아니고, 특정 국가에 의해 파병된 것이 아니면서, 사적인 이유 혹은 이익을 위해 적대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가 용병을 금지하고 있지만, 유럽의 용병 역사는 깊다. 영국엔 식민지 시절부터 오랜 기간 용병이 있었다. 근·현대 들어와서도 네팔 출신의 ‘구르카 용병’을 투입했다. 프랑스는 주로 과거 자국의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모병한 ‘외인부대’를 지금도 정규군 편제에 공식적 두고 있다.

역사 속의 용병, 임진왜란 흑인 용병 해귀(海鬼)

흥미로운 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용병이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그들은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바다의 귀신이라 불렸던 해귀(海鬼)였다. 해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왜군과 싸운 포르투갈 노예 용병이다. 이 용병은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인데, 포르투갈이 이들을 모집해서 조선으로 보낸 것이었다.

당시 조선은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받아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명은 10만 명의 병력을 조선에 파병했다. 이때 해귀가 명나라 군대에 포함돼 조선에 왔다. 조선에 파병된 해귀는 모두 4명이었는데, 1599년 2월 철군을 앞둔 명나라 군대를 위해 베푼 연회를 그림으로 기록한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에서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 세바스티안 브랑스의 ‘보머험(벨기에 지역)에서의 약탈’(1625~1630). 30년 전쟁은 용병들로 치러진 전쟁이었다. [중앙포토]

네덜란드의 화가 세바스티안 브랑스의 ‘보머험(벨기에 지역)에서의 약탈’(1625~1630). 30년 전쟁은 용병들로 치러진 전쟁이었다. [중앙포토]

당시로선 최신 무기와 기술을 가진 포르투갈이 상인들을 통해 조선, 명, 일본 등에 총포와 대포 등 선진 무기를 팔고 기술도 전수했다. 이 흑인 용병들은 유럽의 선진 무기와 문물을 보유한 것은 물론, 유럽의 앞선 전술과 전략도 알고 있었다.

실록에 따르면 해귀는 무예에 뛰어나고 조총과 칼을 자유자재로 다뤘다고 한다. 해귀는 노란 눈동자에 검은 낯빛을 하고 있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모두 곱슬곱슬해서 그때 조선 사람으로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왜군도 이상하게 생긴 해귀를 귀신이라고 여기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포르투갈이 마카오 반도를 조차한 것이 1557년이고 임진왜란이 1592년에 발발했으니 시기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현대판 용병 ‘PMC’, 군인보다 많아

통상 현대판 용병은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투입된 블랙워터(Black water)와 같은 거대 민간군사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를 말한다. 주로 개인 경호, 시설 경비, 해상 경호 등 군사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특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된 민간 기업이다.

이라크전은 무려 16만 명의 PMC 용병이 투입된 전쟁이었다. 2011년 당시 이라크에서 활동한 민간계약자 수와 정규 군인의 비율은 1.25대 1로 PMC 인원이 현역 군인보다 많았다. 미 국방 예산의 4분의 1이 PMC에 지출될 정도로 미국의 민간용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미국 외에도 최근에는 개별적으로 전쟁의 한 진영에 가담해 전투에 뛰어드는 고전적인 형태의 용병이 크게 늘고 있다. 예를 들어 ISIS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조직에 외국인 전투원으로서 ‘지하디스트’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4일 지하디스트의 총격 테러가 발생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배치된 경찰특공대가 경계를 서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달 4일 지하디스트의 총격 테러가 발생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배치된 경찰특공대가 경계를 서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미국 국가테러대책센터(NCTC)의 하원 청문보고서에 의하면, ISIS가 주도하는 범세계적인 지하드에 참여한 외국인 테러 전투원은 최대 120개국 출신에 그 규모는 4만여 명에 달했다. 반면 쿠르드 민병대(YPG)에는 500명가량의 서방 출신 용병이 군사조직에 소속돼 ‘반 IS’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전투가 지속하면서 병력 부족이 심각해졌다. 이에 이라크와 시리아는 서로 용병을 투입해 ‘용병들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ISIS가 앞으로 차세대 지하디스트 충원하면 외국인 용병의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예측이다.

테러의 시대, 생계형 용병 늘어

오늘날 테러리즘은 전통적인 안보개념을 바꾸고 있다. 전쟁의 형태가 외부의 적이 국경을 넘어 침입하는 국가 간 전쟁에서 비국가적 행위자인 무장조직의 싸움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 ISIS 등 테러단체 등이 용병을 활용하는 게 큰 원인이다. 또 지상 전투에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제 병력을 투입하는 대신, 전투기 또는 드론으로 공격하는 양상도 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일어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분쟁에도 터키가 고용한 시리아 출신의 용병 수백 명이 가담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용병은 대략 월 1500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터키 민간보안업체와 4개월짜리 계약서를 쓰고 전투에 참여했다고 한다.

해적이 출몰하는 지역을 통과하는 상선은 자체적으로 PMC를 고용하기도 한다. [사진 대테러국제용병협회 제공]

해적이 출몰하는 지역을 통과하는 상선은 자체적으로 PMC를 고용하기도 한다. [사진 대테러국제용병협회 제공]

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진 시리아에서 1500달러는 큰돈이다. 그래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국가의 젊은이들이 가족을 위한 빵 때문에 다른 나라의 싸움에 팔려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어느 진영이 됐든 폭력의 악순환을 부르는 전투 가담자들에 대한 처리는 고민이다. 다른 나라 전투에 가담했던 용병 출신이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가면 그 나라의 국내 안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영국과 프랑스 등은 ISIS를 격퇴한 뒤, ISIS 측에 용병으로 가담했다가 시리아와 이라크에 구금된 용병 출신 국민의 송환에 반대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도 민간군사업체인 PMC가 10여 개나 있다. 대표적으로 2010년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한국 기업의 아프간 진출은 활기를 띠었다. 그때 한국의 PMC는 PRT 차량의 호위와 인솔 업무를 맡았다.

이처럼 한국도 PMC를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상반기 서아프리카 기니만 해역에서는 우리 국민 6명이 납치되지만, 한국군 정규 병력을 보내긴 쉽지 않았다. 앞으로도 세계 어느 곳에서든 한국 민간인이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해외 교민에 대한 안전업무를 위한 방안으로 PMC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