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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옷…'성공하는 법'을 아는 석정혜 대표의 세 번째 도전

중앙일보

입력

석정혜 대표는 이름이 알려진 몇 안 되는 가방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국내 가방 시장은 패션 시장의 10분의 1 정도로 규모 자체가 작은 데다, 특정 가방이 히트를 하더라도 디자이너가 누군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석 대표의 이름이 알려진 건 그의 놀라운 성공 신화 때문이다.

두 개의 가방 브랜드를 성공시킨 석정혜 대표가 이번엔 옷에 도전장을 냈다. 김경록 기자

두 개의 가방 브랜드를 성공시킨 석정혜 대표가 이번엔 옷에 도전장을 냈다. 김경록 기자

지금은 코오롱FnC(이하 코오롱)에서 전개하고 있는 ‘쿠론’이 그의 첫 번째 성공작이다. 2009년 청담동의 작은 가방 가게에서 시작한 쿠론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성장했고, 바로 다음 해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을 본 코오롱이 이를 인수했다. 이후 코오롱·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디텍터로 활동했던 그가 2018년 독립해 만든 가방 '분크' 역시 론칭 첫해 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석 대표의 이름을 다시 한번 알렸다. 밀레니얼 세대를 타겟팅한 20만~30만원대 가격대, 매주 한 가지씩 신제품을 선보이는 상품 출시 방식, 가방과 어울리는 참·스트랩 등 액세서리를 함께 구성한 것이 주효했다. 브랜드 론칭 3년 차인 올해 매출액은 약 150억원. 지난해 대비 130%가량 성장했다. 석 대표는 지난해 분크의 성공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패션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패션 플랫폼 'W컨셉'에서 ‘베스트 8 브랜드’ ‘로우 리턴상’(반품이 가장 적은 브랜드)을 받았다.

그가 이번엔 의류로 영역을 확장하겠다고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가방 디자인만 맡았던 미국 패션 브랜드 ‘클루’의 세컨브랜드 ‘클루투’의 라이선스를 가져와 가방뿐 아니라 여성복까지 본격적으로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로 패션업계가 불황을 맞았지만, 석 대표의 사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과연 성공 비결이 뭘까. 지난 17일 그에게 직접 답을 들었다.

이번에 옷으로 영역을 확장한 계기가 있나.

“나는 가방 디자이너지만 10년 넘게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의 패션 스타일을 보여줘 왔다. 그때마다 스타일링 방법, 착용 제품에 대한 질문과 함께 ‘옷 좀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이제 소비자는 가방 브랜드 따로, 옷 브랜드 따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스타일을 원한다는 걸 깨달았다. 의류 사업 가능성을 봤고, 그것을 올해 실행에 옮긴 거다.”

여성복 브랜드를 새로 만들지 않고, 미국 브랜드를 가져온 이유는.

“여러 가지를 고려한 선택이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좋아하는 브랜드기 때문이다. 클루·클루투는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분더샵 등 편집숍과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지에서 선전하고 있는 브랜드다. 지난해 5월 클루투의 가방 라이선스를 가져와 한국에서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아 옷까지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의류 디자인·생산은 물론 기존에 별도 매장 없이 홀세일 판매만 해왔던 브랜드 유통 방식과 달리 독립적인 사이트를 구축하는 등 브랜딩까지 진행한다.”

석 대표가 자신이 만든 옷과 가방 제품들 사이에 섰다. 마네킹에 걸어놓은 옷은 내년 봄여름 시즌에 론칭할 클루투의 옷 샘플로, 점프슈트의 입고 벗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원피스다. 김경록 기자

석 대표가 자신이 만든 옷과 가방 제품들 사이에 섰다. 마네킹에 걸어놓은 옷은 내년 봄여름 시즌에 론칭할 클루투의 옷 샘플로, 점프슈트의 입고 벗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원피스다. 김경록 기자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입은 옷과 가방을 보여주고 있는 석 대표. 윗줄 왼쪽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에선 올해 분크에서 특별 기획으로 만든 셔츠와 스웨트셔츠를 입었다. 사진 석정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입은 옷과 가방을 보여주고 있는 석 대표. 윗줄 왼쪽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에선 올해 분크에서 특별 기획으로 만든 셔츠와 스웨트셔츠를 입었다. 사진 석정혜 인스타그램

사실 석 대표가 옷에 손을 댄 건 처음이 아니다. 올해 3월 분크 특별기획상품으로 선보인 셔츠를 시작으로 스웨트셔츠·스커트·점퍼 등을 줄줄이 내놨고, 매번 출시 당일 품절될 만큼 인기를 얻었다. 지난 9월엔 '분크 파스'라는 주얼리 라인을 만들어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옷과 가방은 다른 분야라고 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미 분크를 통해 소개했던 옷들로 자신감을 얻었다. 셔츠의 경우 600장을 제작했는데 출시 당일 반나절 만에 다 팔렸다. 이런 반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게 놀랍다.

“잡화업계 관계자들끼리 '코로나에 시장이 박살 났다’고 말할 정도로 시장 상황은 안 좋다. 하지만 분크는 다행히 건재하고, 또 내가 브랜드를 론칭했던 2008년(쿠론), 2018년(분크) 상황은 모두 비슷했다. 시장이 안 좋다고 해도 좋은 물건과 전략만 확실하면 될 브랜드는 된다.”

'패션업계의 얼굴 없는 큰손'으로 불리는 대명화학 투자도 받았다고 들었다.

“올 상반기에 사업을 준비하면서 대명화학 관계사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다.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투자 유치를 했고 이를 통해 동력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분크와 분리된 별도 법인(씨디엠)을 설립했고, 브랜드는 내년 초 론칭한다.”

위 3장의 사진은 가방만 보여준 분크 자사몰의 이미지고, 아래 3장은 W컨셉에서 모델과 함께 가방을 소개한 룩북 사진이다. 사진 분크

위 3장의 사진은 가방만 보여준 분크 자사몰의 이미지고, 아래 3장은 W컨셉에서 모델과 함께 가방을 소개한 룩북 사진이다. 사진 분크

쿠론은 오프라인에서, 분크는 온라인에서 성공했다. 유통망 특성이 다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가방을 예쁘게 좋은 품질로 만들어야 한다는 출발점은 동일한데 전개 방식은 확실히 달랐다. 오프라인은 매장에 내놓으면 직접 보고 드는 과정을 통해 팔리는데, 온라인은 보여주는 방식이 중요하더라. 또 같은 온라인이라도 채널별로 특성이 다르다. 분크 온라인 몰에선 모델 없이 가방 사진과 상세 설명만으로도 팔렸는데, W컨셉에선 이게 안 먹혔다. 7~8개월을 '여기는 우리랑 안 맞나' 고민하다가 모델이 가방을 들고 있는 룩북 사진을 다시 촬영해 올렸더니 그때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가방과 함께 옷·액세서리까지 종합적인 스타일링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던 거다.”

온라인 유통망이 대세가 되면서 창업이 쉬워졌다고 한다.

“분명히 시작은 쉬워졌다. 하지만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오프라인에선 20여 개 가방 브랜드가 자리 싸움을 했다면, 온라인 유통망에선 1000여 개가 넘는 브랜드가 경쟁한다. 그만큼 레드오션이 될 위험이 높고, 한 번 히트했다 하더라도 이를 지속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패션 브랜드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큰 덩어리는 클래식해야 하지만, 디테일은 새로워야 한다. 클래식한 것이 '올드'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말이다. 오프라인에선 신뢰감이 중요하고, 온라인에선 호기심을 주는 게 중요하다. 제품만 만드는 게 아니라 이 가방과 잘 어울리는 옷 스타일이나 가방의 용도를 함께 소개해서 재미를 줘야 한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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