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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저씨, 아버님, 엄마…상대 불편하게 하는 호칭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84)

호칭은 생각보다 어렵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상대방의 격과 위상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호칭은 생각보다 어렵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상대방의 격과 위상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오늘 아침에 대문 밖에서 누가 “박헌정씨!” 하며 불렀다. 동네에서 내 이름이 크게 외쳐지니 순간 움찔했는데, 신용카드 배송이었다. 잠시 후 내 신분증을 확인하며 재차 “박헌정 씨 맞죠?” 묻는데, 나보다 젊은 사람이 나를 ‘아무개 씨’로 부르니 기분이 좀 묘했다.

‘씨’의 뜻을 찾아보니 틀린 것은 아니다.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는 말이지만 공식적인 또는 사무적인 자리나 공개된 글에서가 아니라면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렵고,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고 나온다. 나는 그의 윗사람이 아니니 ‘아무개 씨’가 맞겠지만, 나이가 많으면 윗사람이라 생각하기 쉬운 사회관습에 익숙해져 기분이 좀 안 좋았던 모양이다. 하여튼 ‘씨’는 사용조건이 은근히 까다로운 호칭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일상에서 ‘씨’의 쓰임이 적어지고 ‘님’을 많이 사용한다. ‘님’을 선생님, 실장님처럼 신분이나 직함 뒤에 바로 붙여 접미사로 쓰지 않고 ‘아무개 님’처럼 이름 뒤에 붙여 의존명사로 사용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오래전 대학가요제에서 사회자가 참가자에게 사용했다가 다음 날 사방에서 질타받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씨’보다 공손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내가 ‘씨’로 불린 것을 찜찜해 하는 것은 쩨쩨한 성격이나 권위의식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호칭은 사람의 자존심과 관련한 민감한 문제다. 새로운 관계에 있어 내가 상대의 격을 설정하는 일이자 상대로서는 짧은 순간에 자기 위상이 정해지는 일이다. 그러니 누구든 정확하고 적절하고 존중받는 호칭을 원한다.

긴 전도사 생활 끝에 목사 안수를 받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다. 첫날 교회에서 ‘목사님’ 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했는데, 보름 후 누가 무심코 ‘전도사님’ 하고 부르니 속으로 기분이 무척 나빴단다. ‘주님 아래 다 같은 자녀’라던 목사님마저 그럴 만큼, 우리 대부분은 호칭에 있어 손해 볼 마음이 거의 없다.

때로는 무의미한 호칭도 있다. 누가 나를 ‘박 프로’라고 불러 무슨 소린가 했는데, 나중에야 프로골퍼를 의미하고 골프장에 가면 서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가 골프를 좋아하니 별다른 생각 없이 장난스레 불렀겠지만, 골프에 취미 없는 나로서는 아무 의미 없는 일회용 호칭이었다.

뒤집어 생각하면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인 전략일 수도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별 고민 없이 ‘선생님’이라 하는데 그게 가장 무난했다. 상대방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진짜 학교 선생님의 이미지와 멀면 멀수록 반응이 좋은 것 같았다.

‘박 부장’이던 나는 은퇴 후 ‘박 작가’라는 새 호칭을 얻었다. 주변 사람들이 농담 삼아 부르던 것이 그대로 현실로 되었는데, 좋아하는 일로 호칭을 부여받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사진 박헌정]

‘박 부장’이던 나는 은퇴 후 ‘박 작가’라는 새 호칭을 얻었다. 주변 사람들이 농담 삼아 부르던 것이 그대로 현실로 되었는데, 좋아하는 일로 호칭을 부여받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사진 박헌정]

특히 호칭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어느 자동차 영업사원은 개인택시 계약을 마치고 차를 인도하러 갔다가 영문 모르고 문전에서 계약을 취소당했는데, 무의식중에 ‘사장님’ 대신 ‘아저씨’로 한두 번 불렀기 때문임을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택시를 운행할 때야 온갖 호칭을 다 듣겠지만, 엄연히 고객인데 아저씨로 불렸으니 기분 상할 법하다.

그러니 호칭은 ‘선생님’, ‘사장님’, ‘여사님’처럼 넉넉하게 사용하는 것이 안전한데, 그러다 보면 때로는 인플레이션도 나타난다. 가족관계를 끌어들이는 게 대표적이다. 상인이 ‘손님’ 대신 “어머님, 아버님!”(심지어 “엄마!”) 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질색한다. ‘삼촌, 언니, 형님’도 비슷하다. 거리를 좁혀보려는 의도이겠지만 가족관계는 상대를 불편하게 할 위험이 다분하다.

호칭은 내 입에서 나가지만 상대방의 것이니 그쪽 관점에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얼마 전 국감에서 70대 출석인이 젊은 국회의원에게 “어이!” 해놓곤 나중에는 혼잣말이었느니 감탄사였느니 변명하며 수습하던 일이 있었다. 때론 호칭이 반말과 섞여 약자를 제압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식당에서 “어이, 알바!”, “언니야!” 하면 그 순간은 주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은 꼰대와 진상이 된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현역시절에는 직업이나 직장에서의 직함이 그대로 호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은퇴 후 역할이 바뀌면 호칭도 바뀔 수밖에 없다. [사진 pixabay]

현역시절에는 직업이나 직장에서의 직함이 그대로 호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은퇴 후 역할이 바뀌면 호칭도 바뀔 수밖에 없다. [사진 pixabay]

오랜만에 ‘아무개 씨’로 불려 보니, 현업에서 물러난 은퇴자는 호칭 때문에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는 직장생활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사장, 교수, 과장, 위원, 조합장, 이사’ 같은 직함에 ‘님’만 붙여도 큰 불편 없었다.

오랜 노력 끝에 얻은 사회적 직함에는 애착과 자부심이 있기에 그런 전성기 직함으로 계속 불리고 싶을 수도 있지만, 그 시절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이제 새로운 세상과의 새 관계에서 자기에게 부여될 새 호칭에 익숙해져야 한다.

만일 ‘선생님, 사장님, 여사님, 어르신’처럼 사회에서 무료제공하는 호칭이 마음에 안 든다면 스스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저씨’, ‘아줌마’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어도, 지인들로부터는 제대로 자기 역할과 지위를 인정받고 싶다면 ‘회장님’, ‘총무님’, ‘작가님’, ‘반장님’, ‘집사님’처럼 그에 상응하는 일과 역할을 찾아야 한다.

호칭은 생각할수록 어려운 문제다. 서로 교감할 수 없는 호칭은 편의성만 있고 의미는 없다. 그렇다고 호칭에 특별한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상대방 위신과 위상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부르는 것, 단 하나 팁이 있다면 ‘존중하는 마음’을 담는 것 아닐까 싶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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