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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이스라엘·EU… 백신 얼리버드 뒤엔 죽기살기 경쟁과 살벌한 국가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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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은 코로나 백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백신을 우선 확보한 여러 나라가 접종을 시작하고 있어서다. 제때 확보하지 못한 나라의 상실감도 커지고 있다. 12월 8일 영국을 시작으로 14일엔 미국과 캐나다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국민 접종에 들어갔다. 2일 영국, 11일 미국에서 각각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이 백신은 글로벌 코로나 대응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다.

절박한 나라들, 백신에 희망 안간힘 #지도자들 직접 나서 백신 확보 강조 #미, 지난 7~8월 백신 3억 개 확보 #수십억 달러 통큰 사전투자 주효 #지난 8월 부자나라들 백신 51% 차지 #방글라·인니·멕시코 등도 26억 개 확보 #모사드, 2월 방역물자 지금은 백신 #미, 유망업체에 개발·생산 비용 지원 #군에 운송·보안 등 시스템 구축 맡겨 #화이자, 독감백신 인연 독일과 협력시너지 #내년 75~80% 면역 확보로 정상복귀 기대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12월 18일 워싱턴DC의 백악관 부속건물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12월 18일 워싱턴DC의 백악관 부속건물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유럽·이스라엘 줄줄이 연내 접종

백신을 조기에 확보한 나라들의 접종 시작이 줄을 잇고 있다. 중동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도 이 백신을 16일 자국에 들여와 17일 접종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같은 백신의 접종을 이달 20일 시작한다.
유럽연합(EU) 집행기구인 유럽위원회는 27~29일을 백신의 날로 정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회원국별로 각각 접종을 시작한다고 17일 발표했다. 싱가포르도 연내에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유럽의약품감독국(EMA)은 모더나 백신에 대한 승인 여부를 내달 7일까지 결정한다고 밝혀 내년 초에는 두 종류의 백신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전망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마거릿 키넌(90) 할머니가 9일(현지시간) 딸 수와 손자 코너의 손을 잡고 영국 코번트리 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다. 그는 “상태가 좋다”며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했다. 키넌 할머니는 전날 화이자 백신 접종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마거릿 키넌(90) 할머니가 9일(현지시간) 딸 수와 손자 코너의 손을 잡고 영국 코번트리 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다. 그는 “상태가 좋다”며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했다. 키넌 할머니는 전날 화이자 백신 접종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절박함이 백신 확보 서두르게 한 동력

한결같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적지 않은 나라들이다. 절박함이 묻어난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2020년 12월 18일 현재 전 세계에서 7540만 이상의 확진자와 167만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백신 접종을 시작한 미국·영국·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은 한결같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라다. EU 회원국인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독일 등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확진자가 속절없이 늘어나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확진자만 보면 미국이 1762만(인구 100만당 5만3000명) , 프랑스가 242만(3만7000명), 영국이 194만(2만8000명), 이탈리아가 190만(3만1000명), 스페인이 180만(3만8000명), 독일이 144만(1만7000명)에 이른다. 이스라엘이 37만(4만 명), 사우디는 36만(1만 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100만 당 확진자는 전 세계적으로는 9674명인 것과 비교하면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절박함이 미리미리 백신을 확보하는 정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적인 접근으로 백신으로 집단 면역을 확보하는 것을 코로나를 극복하는 국가 전략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당선인. EPA·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당선인. EPA·AFP=연합뉴스

대통령도, 총리도, 국왕도 백신 강조 

여기에 더해 지도자들의 열정도 백신 조기 확보에 한몫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백신 조기 개발을 압박했다. 그의 바람과 달리 대선 전에 긴급사용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미국 국민이 조기에 백신을 점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도 취임 100일 안에 1억 회분의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대선전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두 사람이 백신문제에서는 같은 생각이었다.
자신이 과학자(양자물리학자) 출신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의사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덴 EU 집행위원장도 백신 개발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물론 연정 파트너이자 정적인 베니 간츠 국방장관도 백신 확보에선 한 마음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도 지난달 21~22일 비대면으로 열렸던 리야드 G20 정상회의에서 공정한 백신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얀센의 코로나19 백신의 일러스트.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얀센의 코로나19 백신의 일러스트. 로이터=연합뉴스

미, 통 큰 조기 R&D 투자로 다량 확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국민 접종이 시작되면서 조기 접종국가들이 코로나 백신을 확보 한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백신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19 팬데믹을 하루라도 일찍 종식해 정상생활과 경제활동 재개를 이룰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이기 때문이다. 확보 전략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
재정이 넉넉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했으며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활동과 국제적인 협력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통 큰 조기 연구·개발 투자’가 주효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 확진자 1758만 명, 사망자 31만 7000명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미국은 확진자가 150만 명을 넘어선 지난 5월 15일 대응 프로젝트인 ‘와프 스피드 작전’에 들어갔다. 인구 3억 3100만의 미국은 일찌감치 코로나 대응의 핵심을 백신으로 잡고 3억 명분을 2021년 1월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실 미 연방정부는 이 작전을 시작하기 전부터 백신 개발에 거액을 지원해왔다. CNN에 따르면 지난 3월 30일 미 연방 보건복지부는 민간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에 4억 56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이 회사는 초기 단계인 후보물질 개발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올해 여름 1상 임상시험 시작이 목표였다.

12월 14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간호사 샌드라 린지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12월 14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간호사 샌드라 린지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 제약사당 4억~12억 달러 개발비

민간 제약사 지원 규모는 갈수록 늘어갔다. 4월 16일에는 모더나에 4억 83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 백신인 m-RNA-1273을 개발해 3월 16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1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이 백신은 FDA로부터 신속 허가 대상으로 선정돼 미연방기관의 자금과 행정 지원을 동시에 받았다.

미 보건복지부는 5월 21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에 12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 백신은 지난 8월 미국에서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으며 현재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에 이어 두 번째 긴급사용 승인을 앞두고 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미국은 이미 지난 7월에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1억 회분, 8월엔 모더나와 2억 회분의 백신 구매 계약을 맺었다. 사전 투자와 연방정부가 총력을 다한 와프 스피드 작전으로 일찌감치 물량을 확보했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업체 바이오엔테크가 고동 개발한 나온 코로나 백신 [AFP=연합뉴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업체 바이오엔테크가 고동 개발한 나온 코로나 백신 [AFP=연합뉴스]

화이자·바이오엔테크, 국제협력 산물

이번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급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경우 이미 지난 3월 미국의 화이자와 독일의 바이오엔테크가 계약을 맺고 백신 플랫폼을 공동으로 개발해왔다고 독일 국제방송 DW가 보도했다. DW는 이 계약이 체결되던 당시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7만9000명이었고 사망자는 7000명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양사는 오래전부터 인플루엔자 백신을 공동 개발하면서 축적된 기술력과 글로벌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발 빠르게 공동 개발에 나섰다. 미국과 함께 독일도 이 백신을 확보해 오는 27일 국민 접종에 들어간다.

크리스토퍼 밀러 미국 국방장관 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접종 첫날인 12월 14일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군병원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토퍼 밀러 미국 국방장관 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접종 첫날인 12월 14일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군병원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부국들, 지난 여름 세계 백신 51% 차지

백신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이미 지난 여름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발 빠르게 선구매를 통해 물량을 다량 확보했다. 빈곤 해결과 불공정 무역에 대항하는 국제기구인 옥스팜은 지난 8월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5개의 주도적인 백신의 생산 능력은 59억 회분으로 이는 30억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밝혔다. 옥스팜은 이 물량의 51% 정도가 미국·영국·유럽연합(EU)·호주·홍콩·마카오·일본·스위스·이스라엘 등 부유한 국가와 지역에서 선구매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8월 초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1억2000만 회분을 계약했으며, EU는 8월 스웨덴·영국의 다국적 제약업체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을 4억 회분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2회씩 맞는다고 했을 때 4억4000만 EU 인구의 절반에게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이다.

중견 국가들도 이미 26억 회분 구매  

DW는 전 세계에서 남은 백신 물량인 26억 회분은 방글라데시·중국·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 등 중견 국가들이 서둘러 사들이거나 구매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자금력과 관계없이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지난 여름부터 사력을 다해 백신 확보 전쟁을 벌여왔다는 이야기다. 백신 확보에 미래를 건 셈이다.

지난 17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접종을 시작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선제적 투자로 백신을 확보한 경우다. G20 리야드 정상회담을 개막한 지난달 21일 사우디의 압둘라 알라비아 인도주의 구호·원조 수석 고문은 “사우디는 5억 달러를 백신 개발에 투입했다”면서 “이 중 2억 달러는 국제·지역 기구의 백신과 의약품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업체나 국제기구에 거액을 투자해 백신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이야기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와 살만 국왕. [AFP=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와 살만 국왕. [AFP=연합뉴스]

사우디, 초기 개발 업체 투자해 백신 확보

사우디 최대 제약·의료기 업체인 SPIMACO가 지난달 27일 유럽 바이오 업체인 큐어백과 코로나 백신 공급계약을 맺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큐어백은 내년 1분기에 유럽의약품감독국(EMA) 승인을 목표로 백신을 개발 중인데 지난 11월 초에야 1상 임상시험을 통과했다. 사우디는 이런 식으로 개발 초기 단계인 업체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백신을 확보해왔다. 사우디는 이 계약에서 백신을 이웃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오만에도 공급할 수 있도록 해 지역 백신 맹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오른쪽)과 연정 파트커어지 정적인 베니 간츠 국방장관.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오른쪽)과 연정 파트커어지 정적인 베니 간츠 국방장관.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에선 안보 차원에서 백신 접근  

이스라엘은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가 주도적으로 방역물자에 이어 백신 확보에 나섰다. 백신 확보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한 셈이다.

현지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는 이미 지난 10월 27일 모사드가 해외에서 백신을 구해 국내에 들여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스라엘 외교부와 보건부의 반대가 있었지만 모사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방법론을 두고 이견을 보인 셈이다.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 AFP=연합뉴스

모사드는 정보망을 동원해 임상시험 상황을 입수해 어떤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가 큰지를 미리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쓸 만한 백신을 확보해 우선 반입했다. 신문은 모사드가 올해 2~5월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개인보호장구·검사키트·인공호흡기 등을 해외에서 확보해 자국에 반입했으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5월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에게 이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국가 기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구할 방역물자와 백신 확보에 나선 데 대한 감사다.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얀센의 코로나19 백신의 일러스트.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얀센의 코로나19 백신의 일러스트. 로이터=연합뉴스

정부 의지와 집념, 과학적 통찰력 결과    

이스라엘은 전통명절인 하누카(올해는 12월 10~18일)가 끝난 직후인 20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백신을 기다리는 행복한 명절로 기억될 것이다. 각국의 피나는 노력은 백신 확보가 국민을 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집념, 그리고 과학적인 통찰력의 결실임을 보여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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