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안을 재가했다.
BH리포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직접 들고온 징계안을 받아든 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의 추진력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공수처와 수사권 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시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준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다”고 했다.
추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런 극찬은 일시적인 발언이 아니라는 게 대통령 측근들의 전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책 『운명』에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조각(組閣)과 관련해 “강금실 변호사를 (입각 대상으로) 추천한 건 나였다. 여성 법조인 중 발탁할만한 인물을 찾던 (노무현) 당선인 뜻에 따른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어 “내 추천은 그녀를 법무부장관으로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핵심 인사는 “책에는 적지 않았지만 사실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은 당시 내부적으로는 강금실 변호사가 아니라 추미애 의원을 초대 법무장관으로 추천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숙고 끝에 강 전 장관을 초대 장관으로 발탁했던 것”이라고 했다.
추 장관은 당시 42세의 재선의원이었다. 당시에 이미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을 눈여겨 보고 있었단 것이다.
문 대통령은 결국 17년 만인 지난 1월 추 장관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다. 그동안 추 장관은 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5선의 중진이 돼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는 한 번 믿은 사람은 기어이 데려오는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과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2002년 8월 당내에서도 대선 후보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택 개방 행사에 참석한 유일한 현역 의원이 당시 이낙연 대변인이었음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낙연 전남지사가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로 발탁된 것은 그런 과거의 기억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다시 추 장관 얘기로 돌아가면 추 장관은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과정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천신정(천정배ㆍ신기남ㆍ정동영)’, 김민석 의원 등이 그의 정치 동기들이다.
상당수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민주당을 탈당했다. 추 장관은 남았다. “모두 다 탈당한다 하더라도 나 혼자 남아 민주당을 지키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 민주당의 당론에 따라 노 전 대통령 탄핵 대열에 동참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추 장관은 삼보일배(三步一拜)로 탄핵을 사죄했지만 결국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김한길 의원을 미국에 유학 중이던 추 장관에게 보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시민사회수석이었다. 추 장관의 측근은 “당시 김 의원이 찾아와 통일부 장관 입각을 제안했다”며 “추 장관이 고사하자 환경부 장관직을 계속 권유했었다”고 했다. 추 장관은 “당이 이렇게 된 상황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입각할 수 없다”는 취지로 김 의원을 돌려보냈다. 노 전 대통령의 추 장관 영입시도는 문재인 수석의 천거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은 당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스스로 “선거를 치르는 데 가장 컸던 어려움 중 하나가 당 지도부의 부재”(『1219 끝이 시작이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이는 ‘친문 핵심’만으로 선거를 이끌려던 핵심 참모들의 오판도 원인이 됐다. 추 장관은 당시 캠프의 공동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았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말이 공동 위원장이었지만 당시 후보 주변의 ‘측근 그룹’의 벽이 너무 높아 결국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TK(대구ㆍ경북) 구석구석을 혼자 찾아다녔다”고 회고했다.
2015년 야당 대표가 된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했다. 측근 그룹에서도 “왜 ‘우리편’이 아닌 사람을 임명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추 장관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 등으로 당이 또다시 쪼개지는 상황에서도 당에 잔류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정치적 뿌리로 뒀지만 호남권 의원들의 탈당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친문 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대표에 당선됐다. 2017년 대선에선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스스로 “계파 정치를 해본 적 없다”는 추 장관의 말처럼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장관 인사 등으로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과의 갈등도 노출됐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임 전 실장에게 장미꽃을 들려 당대표실로 보냈다.
지난해 법무부장관 입각을 전후로 불거진 ‘아들 논란’ 때도, 윤 총장과의 갈등 국면에서 거친 언행으로 논란을 자초했을 때도 문 대통령은 ‘침묵’으로 추 장관을 지원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찍어내기’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했지만 “법무장관이 징계안을 제청하면 그대로 재가한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추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는 요지부동인듯 하다.
여권에선 추 장관이 내년 1~2월로 예상되는 2차 개각 때 교체 대상에 포함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이 때는 검찰 개혁과 관련해 민감한 시기다. 검찰 개혁의 도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공식 가동되고, 검찰 정기인사 시즌도 맞물려 있다. 이 기간 동안 윤 총장은 2개월 정직 처분에 따라 무장해제 상태가 된다.
추 장관의 마지막 임무는 이런 ‘윤석열 공백기’를 맞아 검찰 조직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인사·조직개편 등을 통해 확실히 대못을 박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을 거친 직후인 4월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만약 추 장관이 주도한 검찰 개혁이 여권 지지층의 큰 호응을 받는다면, 추 장관이 문심(文心)을 등에 업고 유력한 당내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