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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 인류의 꿈 넓혀줄 더 과감한 행위 절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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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26면

[미래 Big Questions] 예술의 미래 

장 레옹 제롬(1824~1904)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장 레옹 제롬(1824~1904)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역시 미켈란젤로의 말이 맞았던 걸까? 대리석을 깎아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대리석 안에 숨어 있던 존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섬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상아를 깎아 내자 어느새 상아는 발, 다리 그리고 우아한 어깨와 긴 목으로 변신했다. 그는 이제 조심스럽게 얼굴을 조각하기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지구 탄생과 함께 자연에 숨겨져 있던 얼굴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나이를 측정할 수 없는 영원한 아름다움. 당당하면서도 보호심을 자극하는 애틋한 얼굴. 갈라테이아라는 이름까지 붙여진 작품에 피그말리온은 사랑에 빠져 버린다.

동물의 탈 쓴 4만4000년 전 벽화 #예술의 기원은 상상력·공감 바탕 #뒤샹 “예술은 망막적 행위 불과” #뇌과학자 횔 “예술·꿈 비슷한 기능” #딥러닝 통해 학습·경험의 폭 넓혀 #지루하지 않고 충격주는 예술 필요

AI ‘임의적 영역 추출’로 편향 줄여

자신이 만든 작품과 사랑에 빠져 버렸다는 피그말리온의 신화를 읽으며 우리는 이제 궁금해진다.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인간은 작품을 만드는 걸까? 수십만 년 전 첫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인류.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일이 하나 벌어진다. 목표와 기능이 확실한 도구와 무기를 만든 인류는 얼마 후 장식과 치장 역시 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끼는 무늬가 그려진다고 더 단단해지지 않고, 패턴이 새겨진 칼은 더 날카롭지 않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이렇게도 ‘쓸모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걸까?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4만4000년 전 벽화에선 동물 모양의 탈을 쓴 인간이 그려져 있었고, 1939년 독일에서 발견된 빙하시대 조각은 사자와 인간의 하이브리드 모습을 하고 있다. 내일 사냥할 동물들과 미리 소통하기 위해 동물의 탈을 썼던 걸까? 아니면 탈을 쓴 자신의 모습이 동물들에게 역시 비슷하게 보일 거라는 공감 능력을 가지게 된 걸까? 예술의 기원은 언제나 이렇게 상상력과 공감을 기반으로 했을 것이다.

‘사자인간’, 3만5000~4만 년 전 제작.

‘사자인간’, 3만5000~4만 년 전 제작.

쇼베, 라스코 그리고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벽화들은 수만 년 전 고대 인류의 희망과 두려움을 보여 주고, 12000년 전 세워진 괴베클리 테페 기둥엔 환상적인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작품들은 우리를 여전히 놀라움에 빠트리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몸을 그 누구보다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완벽한 ‘이데아’ 세상의 왜곡된 그림자뿐이라고 주장했던 철학자 플라톤. 기독교와 이슬람 미학의 기반이 되어 버린 이데아 철학에 따르면 예술은 이미 한번 왜곡된 현실을 다시 한번 왜곡시키는 무지의 행위에 불과하다. 완벽한 신의 모습을 미련한 인간의 손으로 그리는 순간 신의 정체를 왜곡하고 타락시키는 것이 아닐까?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예술은 인간이 아닌 신을 위주로 삼았고, 비잔틴제국은 이코노클라즘이라 불리는, 신의 얼굴을 그려도 되는지에 대한 미학적 논쟁으로 시작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기도 한다.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

하지만 아무리 불태우고, 고문하고, 목을 베어도 소용이 없었다. 신의 모습은 여전히 몰래 그려졌고, 얼굴을 그릴 수 없으면 신을 상징하는 화려한 패턴으로 대체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주장하지 않았던가?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한 인류는 더는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쓰거나 예술 작품을 창작해서는 안 된다고. 물론 아도르노의 기대는 틀렸고, 인간의 예술적 행위는 멈춰지지 않았다. 사진과 영화 발명 덕분에 깊은 정체성 혼란에 빠졌던 예술은 19세기 말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자연을 복제하는 행위를 넘는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표현주의, 미래파 같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모더니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마르셀 뒤샹은 하지만 지적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예술은 ‘망막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현실을 각자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보여 줬을 뿐이라고. 미래 예술은 더는 망막이 아닌 인간의 인지와 생각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지극히도 플라톤적인 지적이었다. 그리고 뒤샹은 질문한다.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예술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4만 년 전 사자인간으로 시작해 뒤샹의 ‘분수’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 도대체 인간이 예술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의 ‘분수’.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마르셀 뒤샹(1887~1968)의 ‘분수’.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뇌과학자이자 소설가인 터프츠대학 에릭 횔 교수는 최근 예술과 꿈은 비슷한 생물학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예술을 시작하기 전 인간은 꿈을 꾸었다. 인간만이 아니다. 뇌를 가진 대부분 생명체는 꿈을 꾼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꿈은 왜 꾸는 걸까?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억눌린 성적 욕구가 표현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대부분 뇌과학자는 동의하지 않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꿈의 진정한 생물학적 기능은 무엇일까?

지그문트 프로이드(1856-1939)

지그문트 프로이드(1856-1939)

최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기계학습·딥러닝 기술을 통해 꿈과 예술의 생물학적 기능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횔 교수는 제안한다. 딥러닝 기술은 학습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학습데이터 확률 분포의 폭이 너무 좁으면 특정 데이터에 대한 편파적 성향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임의적 영역 추출(domain randomiza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현실에서 얻은 데이터를 임의적으로 재샘플하고 왜곡하면 직접 경험 가능한 데이터 범위를 넘어 학습과 경험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꿈 역시 비슷한 임의적 영역 추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꿈은 현실의 복사판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과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다. 꿈은 언제나 수많은 해석과 의미가 가능한 현실의 확장이자 왜곡된 버전인 것이다.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의 폭은 언제나 제한적이기에 꿈이라는 재샘플링 방식을 통해 뇌는 자신의 학습 능력을 대폭 향상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인간은 지구 생명체 중 유일하게 문명을 만들었다. 더는 모든 경험이 자연적이지 않기에 자연적 현실을 반영한 꿈을 넘어 인간은 ‘예술적’ 행위를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망막에 비치는 오리지널 현실을 넘는 수많은 현실의 왜곡과 변형을 통해 뇌 신경망들을 더 효율적으로 학습시키는 임의적 영역 추출이 바로 예술의 생물학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예술=외향적 꿈, 꿈=내향적 예술

횔 교수의 가설이 맞는다면 예술은 결국 외향적 꿈이고 꿈은 내향적 예술이라고 주장해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예술의 미래는 무엇일까? 인공지능과 멀티버즈 그리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혹성으로 이주를 준비하는 인류.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의 학습데이터만으로는 절대 준비할 수 없는 미래. 미련한 우리 21세기인들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행복. 또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래 인류의 비참한 불행과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으로서의 전멸. 아도르노는 예술의 종말을 요구했지만, 우리는 지금 반대로 더 많고 더 과감한 예술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높은 가격을 받는 그런 지루한 예술이 아닌, 끝없는 논란과 충격을 통해 인류가 꿀 수 있는 꿈의 깊이와 폭을 넓혀 주는 예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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