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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Zoom up - 서양인들이 사랑한 대장장이의 호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유럽 텃밭 가꾸기 열풍 타고 한국 농부의 호미 큰 인기
‘영주대장간’ 수제 호미는 아마존 원예 부문에서 ‘톱10’ 랭크도

꺼지지 않는 화덕은 대장간의 상징이다. 시뻘겋게 달궈진 쇠붙이들이 메질을 기다린다.

꺼지지 않는 화덕은 대장간의 상징이다. 시뻘겋게 달궈진 쇠붙이들이 메질을 기다린다.

'땅, 땅, 땅, 땅.’ 쇠메(쇠망치)로 모루(쇠 받침대)를 때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퍼져 나간다. 회색 머리칼에 팔뚝에는 핏줄을 한껏 세운 대장장이가 시뻘겋게 달궈진 쇠뭉치를 두드리고 있다. ‘영주대장간’의 석노기(66) 대표는 주위 인기척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볼품없던 쇳덩이가 석 대표의 능숙한 손놀림에 어느새 호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It is a must-have(이건 반드시 사야해)”

“자세히 보세요. 양쪽 날 두께가 다르죠? 양쪽의 쓰임새가 다르거든요. 한쪽은 얇고, 반대쪽은 제법 두꺼워요. 메질의 강도와 횟수를 달리해야 이런 모양이 나와요. 그래서 호미는 대량으로 만들기가 어려워요.”

얇은 날로는 잡초를 베고, 두꺼운 날로는 고랑을 판다. 질긴 잡초를 베려면 날카로워야 하고, 고랑을 파려면 돌과 부딪쳐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야 한다. 두 가지 미덕을 모두 갖춰야 하니 중국산 공장제 호미로는 농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쉽지 않다. 2000년대부터 중국산 호미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수제 호미’의 인기가 시들지 않는 이유다.

영주대장간 수제 호미의 인기는 세계적이다. 텃밭 가꾸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도구라는 입소문이 퍼져 나가면서다. 서양에서 흔히 쓰는 꽃삽은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 ‘써 본 사람’들의 후기다. 입소문을 타고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도 입점했다. 국내가보다 네 배나 더 비싼 23달러에 파는데도 불티나게 팔린다. “It is a must-have(이건 반드시 사야해)” “Well made, sturdy, and easy to use(잘 만들었고, 튼튼하며, 사용하기 편하다)” 등 상품평들이 주를 이룬다. 2019년 한 해 아마존 원예 부문 상품 ‘톱10’에 오르기도 했다.

석 대표는 2018년 ‘경상북도 최고장인’으로 선정됐다. 이후 호미 손잡이에 ‘최고장인 석노기’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우리 호미가 중국산보다는 비쌉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손맛이라고, 중국산 쓰다가 다시 우리 호미 찾는 분이 꽤 됩니다.”

석노기 영주대장간 대표가 메질을 하고 있다. 54년 경력의 대장장이인 석 대표가 하루에 만드는 호미 개수는 60개 남짓이다.

석노기 영주대장간 대표가 메질을 하고 있다. 54년 경력의 대장장이인 석 대표가 하루에 만드는 호미 개수는 60개 남짓이다.

석노기 대표는 2018년 경상북도 최고장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호밋자루에 ‘석노기 최고장인’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석노기 대표는 2018년 경상북도 최고장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호밋자루에 ‘석노기 최고장인’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영주대장간 호미의 원재료는 화물차의 판스프링이다. 화살표 모양으로 재단한 뒤 수백 번 메질해야 호미가 된다.

영주대장간 호미의 원재료는 화물차의 판스프링이다. 화살표 모양으로 재단한 뒤 수백 번 메질해야 호미가 된다.

호미 날이 안쪽으로 절묘하게 휘어져 있다. 사용자가 손목을 구부리지 않고 적은 힘으로도 땅을 일굴 수 있는 비결이다.

호미 날이 안쪽으로 절묘하게 휘어져 있다. 사용자가 손목을 구부리지 않고 적은 힘으로도 땅을 일굴 수 있는 비결이다.

대장간을 찾은 한 손님이 식칼 11자루를 사고 있다. 이 손님은 “여기 칼 아니면 안 된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장간을 찾은 한 손님이 식칼 11자루를 사고 있다. 이 손님은 “여기 칼 아니면 안 된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영주대장간은 중앙선 철길 옆 공터에서 44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영주대장간은 중앙선 철길 옆 공터에서 44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사진·글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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