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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韓 대북전단법 반발 왜…바이든 시대 한·미 충돌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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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초당적 인권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 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 그는 지난 11월 한국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이 "시민의 자유를 묵살한다"며 청문회 개최를 예고한 바 있다. [AP=연합뉴스]

미 의회 초당적 인권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 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 그는 지난 11월 한국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이 "시민의 자유를 묵살한다"며 청문회 개최를 예고한 바 있다. [AP=연합뉴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18일 "(남북) 접경지역 120만 주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유엔·미국 등 국제사회 비판에 맞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을 옹호했다. MBC 라디오에서 "이 점을 미국에 잘 이해시켜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있다"라고 하면서다.

美, 北인권법 따라 매년 400만달러 北정보 유입 지원 #韓 전단법 "북·중 접경 3국 거친 전단 살포도 3년형" #외교부는 "미국 이해시키는 게 숙제" 방어 총력전 #강경화 이어 최종건 "120만 접경주민 생명 보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전날 CNN방송에서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라고 한 데 이어서 외교부가 대북전단금지법 방어 총력전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의회가 내년 1월 새 회기 시작과 함께 청문회를 열겠다고 예고하면서 대북전단금지법이 바이든 행정부 초기 한·미간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시 로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17일(현지시간) "한국의 새 전단금지법이 워싱턴의 반발을 촉발하고 있다"며 "미 의원들과 시민단체는 한국 정부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달래기 위해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희생시키려 한다고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의 조치는 차기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 정책을 신속히 입안하는 데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9~11일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 정부 측에 전단금지법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고도 소개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지난 10일 저녁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비건 부장관은 방한 기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처리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지난 10일 저녁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비건 부장관은 방한 기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처리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그레그 스칼라튜 워싱턴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중앙일보에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인권문제를 포함해 각종 유엔 회의에서 리더십 역할을 복원할 것"이라며 "인권을 포함한 공통의 가치는 동맹을 관리하는 데 하나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열심히 경청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 인권단체와 인권 운동가를 탄압하는 게 한국 정부의 선택지는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탈북자와 북한 인권단체를 보호하고 권리를 존중하도록 문재인 정부와 협력할 방도를 찾는 것만이 한·미 충돌을 피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탈북자 박상학 대표가 이끄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국제인권단체인 ‘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이 지난 2014년 1월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 인근 주차장에서 북한의 장성택 처형을 규탄하는 내용의 대북전단 풍선을 띄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같은 해 10월 북한은 경기도 연천에서 전단풍선을 띄우자 고사포를 쏘기도 했다. [중앙포토]

탈북자 박상학 대표가 이끄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국제인권단체인 ‘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이 지난 2014년 1월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 인근 주차장에서 북한의 장성택 처형을 규탄하는 내용의 대북전단 풍선을 띄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같은 해 10월 북한은 경기도 연천에서 전단풍선을 띄우자 고사포를 쏘기도 했다. [중앙포토]

미국의 소리(VOA)는 이날 "미 의회의 초당적 인권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내년 1월 새 회기에 한국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를 열 예정"이라며 "다음 주 실무 브리핑을 여는 등 청문회 사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 의회 반발이 큰 것은 대북전단금지법이 미국 북한인권법(2004)에 따른 대북 정보의 자유 증진을 제약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 의회는 2004년 북한인권법에 따라 매년 북한의 인권·민주주의 증진에 200만 달러, 북한의 정보의 자유, 정보 유입 활동에 200만 달러 등 400만 달러를 초당적으로 지원해왔다. 대부분의 지원 대상은 한국에 있는 북한 인권단체들이다.

미 의회 위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민주주의재단(NED)에 따르면 2019년에만 대북라디오와 인터넷뉴스 등 정보 유입 활동 및 방안 연구, 탈북자 인권 보호 등에 344만 달러(약 38억원)를 지원했다. 국민통일방송(통일미디어그룹) 60만 달러, 인터넷 뉴스 데일리NK 40만 달러, 북한개혁방송(북한발전연구원) 28만 달러, NK라디오(세이브 NK) 19만 9200달러 등이다.

미 의회가 직접 대북전단 살포에 예산을 지원하진 않았지만 큰 틀에선 자유로운 대북 정보 유입에 포함된다. 더욱이 지난 14일 여당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통과한 대북전단금지법은 군사분계선 일대만 아니라 제3국을 거친 이동까지 포함해 전단이나 보조기억장치(USB)를 포함한 물품, 금전 및 기타 재산상 이익의 살포를 금지하고, 위반할 땐 3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미 의회 및 인권단체가 북·중 접경지역 활동을 포함한 미국 북한인권법의 활동을 제약한다고 우려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NED 산하 민주주의연구소 맨프리트 아난드 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이 법은 DMZ 접경주민 보호라는 의도된 목적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을 도왔다고 처벌하면 인권운동가에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북한 정권의 반(反)민주적 요구는 더 대담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북 인터넷 TV 및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국민통일방송 이광백 대표(가운데).[통일방송 페이스북]

대북 인터넷 TV 및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국민통일방송 이광백 대표(가운데).[통일방송 페이스북]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도 "북한은 언제든 그들의 필요에 따라 남한을 위협한다"며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기 시작하면 대북라디오 방송 중단 등 다른 요구에도 계속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신 센터장은 "이 때문에 북한 인권을 중심에 두는 바이든 행정부와 외교 마찰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라며 "외교부가 북한 주장에 근거해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려고 들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마스 킨타나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도 언론 성명을 통해 "남·북한 주민은 국경과 상관없이 정보와 생각을 주고받을 권리가 있다"며 "표현의 자유 제한은 직접적, 즉각적 위협과 연결돼야 하는 데 몇 년 전 위협(2014년 고사포 발사) 외에 시민단체 활동과 북한 위협 사이에 직접적, 즉각적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라고도 비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얻는 것은 북한 정권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뿐”이라고 꼬집었다.

정효식·김다영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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