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신용카드 종말? 한국에선 카드업만 솟아날 구멍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18 00:36

업데이트 2020.12.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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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또 한번 신용카드업계 판 뒤흔드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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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그러니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위 1%를 겨냥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번질 때 한국에선 신용카드사가 타깃이 됐다. 먹고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자영업자들에게 정치는 근본 처방을 내리는 대신 손쉽게 신용카드를 제물로 바쳤다. 식당 주인들이 솥뚜껑을 내던지면 유력 정치인들이 우르르 달려가 카드사 결제 수수료율 인하를 약속하고, 정부는 강제로 수수료를 깎았다. 룸살롱 주인들까지 대규모 시위에 나설만큼 카드사는 공공의 적이자 동네북 신세였다. 간편결제 등으로 무장한 강력한 핀테크 경쟁자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한국에선 이렇게 신용카드가 죽어가고 있었다.

지속적 수수료 규제에 난관 겪다
4000억 투자 데이터 플랫폼 개발
“코닥, 데이터 가치 몰라 몰락
PLCC·데이터로 판 바꿀 것”

그런데 이상하다. 끝없는 규제에 심화하는 내부 경쟁도 모자라 이젠 네이버·카카오 같은 빅테크 기업과도 승부해야 하는 삼중고, 여기에 최악의 코로나 19 불황까지 겹쳤지만 현대카드는 오히려 급성장 중이다. 올 상반기에만 지난 한 해 전체(1676억원)에 버금가는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1662억원)을 올렸고, 포화상태라던 회원 수(상반기 기준)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71만명 늘어 879만명을 기록했다. 죽었다던 카드의 부활을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만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신용카드판 원전 사태에 맞닥뜨리고 살아남기 위한 방황이 시작됐고, 그 덕분에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 업을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3관 트래픽 모니터링 센터(TMC)에 섰다. 이곳은 현대카드가 본격적인 데이터 투자를 시작한 2015년 생겼다. 임현동 기자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3관 트래픽 모니터링 센터(TMC)에 섰다. 이곳은 현대카드가 본격적인 데이터 투자를 시작한 2015년 생겼다. 임현동 기자

원전 사태라니.
“당시 부각되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현대카드가 피해가 컸다. 앞서 2003년 신용카드 사태 때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고는 그룹(현대차)에 ‘대출로 돈 벌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출 대신 신용판매로 돈 버는 회사로 만들어놨는데, 수수료가 뚝 떨어지니 답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일시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실 부정을 하다가 2015년 즈음 깨달았다. 아, 이 사회가 카드사를 버리기로 했구나. 이때부터 방황이 시작됐다.”

※2011~2012년 대대적인 수수료 개편 이후 신용카드 수수료율이 크게 떨어졌지만 2016년 총선을 앞두고 2015년 말 중소 영세 가맹점 수수료율을 또다시 크게 낮췄다. 9년간 13번의 요율 인하로도 모자라 2018년엔 0% 수수료를 내세운 관제 제로페이까지 등장했다.

어떤 방황인가.
“2015년 즈음 미국에선 전통적인 신용카드 강자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주가는 고만고만한데 특정 기업 전용 카드인 PLCC(Private Label Credit Card)를 하는 싱크로니파이낸셜(GE에서 분사한 신용카드사)은 약진하는 게 눈에 띄었다. GE(현대카드 지분을 절반 보유했다가 2017년 매각했다) 사람들은 합작 시절 늘 ‘우린 현대카드 못 쫓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매직이 벌어진 거지. ‘옛정 봐서 도와달라’며 무작정 싱크로니에 쳐들어갔다. 2년을 달라붙어 공부하고도 충분하지 않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등 주요 은행을 찾아다니며 여기에 또 3년을 썼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기존의 코스트코에다 스타벅스·대한항공·배달의민족부터 무신사에 이르기까지 등 업계 1등 12개 업체와 손잡은 PLCC 전략이다. 경쟁사들이 자꾸 자기네들의 제휴카드랑 똑같다고 얘기하는데 한국에서 PLCC는 우리만 하고 있다. ‘비빔국수나 파스타나 결국 똑같은 국수’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뭐가 다른데.
“정말 묘한데, 똑같다. 그런데 다르다. 상품개발부터 IT 체계, 조직, 인력운용, 기업문화 등 모든 걸 바꿔야 한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는데 운용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위협적인 건 단순히 파견된 군인 때문이 아니라 항공모함 같은 배후 전력과 연계할 수 있어서인 것처럼, 단순히 파트너사를 위한 소단위 조직을 우리 안에 만드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언제든 본조직과 연계하는 라인을 까는 게 핵심이다.”
그 핵심에 데이터가 있나.

※현대카드는 지난 5년 동안 데이터 사이언스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4000억원 넘게 투자했고, 올해 들어 자체 기술로 개발한 데이터 플랫폼 ‘도메인 갤럭시’를 가동했다. 12개 파트너사는 고객 개개인별 소비 행태를 분석한 데이터를 공유하며 각자의 마케팅에 활용한다. 이 플랫폼은 PLCC 카드로 엮인 1000만명의 ‘시민권자’(회원)뿐 아니라 나머지 1억2000만명의 ‘영주권자’(개별 파트너사 고객) 정보까지 서로 활용한다. 단순히 성별·나이를 넘어 적중률 높은 데이터(60대 남자가 아니라 60세 정태영이 뭘 좋아하는지)로, 이를 이미 적용한 이마트 등은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현대카드의 PLCC 파트너들은 단순히 현대카드에서 제휴카드를 내는 게 아니라 이 플랫폼을 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데이터 시너지를 위해 앞으로도 업계 챔피언 기업만 엄선해서 확장할 방침이다.

“지금은 PLCC와 데이터가 한 지점에서 만났지만 원래 데이터 사이언스는 다른 영역이었다. 가령 싱크로니는 데이터에 그닥 투자를 하지 않는다. 원래 GE가 오펙스(운용비용) 최소화를 중요시하고 불확실한 투자는 안 한다. 이런 방식은 경쟁사가 덤핑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럼 데이터 투자는 어떻게 시작했나.
“배경 설명부터 해보자. PLCC에 관심을 갖던 2015년은 현대카드로선 좌절의 시기였다. 수수료 압박뿐 아니라 주춤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디자인 경영과 브랜딩, 문화·스포츠 마케팅 등으로 찬사를 받아왔지만 이즈음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들려왔다. 코닥이 떠올랐다. 2012년 코닥의 파산신청, 두어 달 뒤 뒤 인스타그램이 무려 10억 달러(1조2000억원)에 페이스북에 인수됐다는 뉴스를 들었을 땐 ‘인스타보다 코닥이 사진 데이터가 훨씬 많았을 텐데 코닥은 왜 활용을 못 했을까’ 궁금하면서도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바로 코닥이네.”
코닥이라니.
“코닥이 사진이라는 데이터 대신 인화라는 과거 방식만 고집했듯이 우리도 데이터를 활용할 생각을 전혀 안 했다. 네이버·카카오, 아니 구글·페이스북이 제일 부러워하는 게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다. 비유하자면 요리를 잘하는 셰프(IT기업)는 재료가 없고, 정작 재료가 풍부한 우리는 요리가 뭐지, 하고 손 놓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인스타가 된다면? 이걸 깨닫고 나니 전혀 다른 기회가 보였다. 은행·보험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신용카드 소비 데이터는 수익화로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점에서 신용카드가 금융에서 유일하게 솟아날 구멍이 있는 비즈니스라는 걸 알게 됐다.”
현대카드가 내놓은 스타벅스 카드와 배민 카드. 각사 특징을 살려 현대카드 디자인 역량을 발휘해 만들었다.

현대카드가 내놓은 스타벅스 카드와 배민 카드. 각사 특징을 살려 현대카드 디자인 역량을 발휘해 만들었다.

신용카드 미래가 어둡다고들 하는데.
“아니다. 금융그룹 중심엔 은행 대신 신용카드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원래 자동차와 반도체 이외에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가 신용카드다. 전반적인 금융 수준은 낙후됐는데 신용카드만은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호주와 맞먹는다. 벤치마킹 대상조차 없다. 비자·마스터가 한국에선 힘을 못 쓰지 않나. 은행은 데이터 한계뿐 아니라 조직의 한계도 있다. 인재가 모여있지만 뱅커만 모여있는 동질적 조직문화다 보니 개혁을 못 한다. 금융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완전히 바꾸긴 싫고 디지털본부 하나 만들어 구글 오피스처럼 꾸미고 젊은 애들 뽑아 청바지 입힌다. 말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달구지 뒤에 엔진 하나 다는 격이다. 완전히 바꿔야지 보완만 해서는 실패한다.”
그러다 방향이 잘못되면.
“우리도 여러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가 수정했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핵심 인재가 나가고서야 가치를 알아본 적도 있다. 남겨놓은 서류를 다시 공부하면서 정신적 블루프린트 그리는 사람을 생산라인 앞에 두고 게으르다고 타박했다는 걸 깨달았다. 싹싹 빌어 다시 모셔왔다. 쓸데없는 알고리즘 투자도 해봤고, 뭘 모를 때 데이터가 많기만 하면 전부인 줄 알고 엉뚱한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공부 안 하는 CEO가 유일하게 하는 게 데이터 모으기다. 구글 같은 위대한 회사가 아니라 보통 회사라면 양이 아니라 분류해서 쓸 수 있도록 로직과 문법을 더한 데이터 큐레이션이 훨씬 중요하다. 카메라가 없는데 렌즈만 수백 개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실리콘밸리에서 텔아비브까지 빅테크와 스타트업 150여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CEO가 이끄는 조직의 단점은 CEO가 아는 만큼만 발전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할 거냐 말 거냐를 결정해야 하기에 내가 주도했지만 앞으론 집단적 사고 체계로 굴러가는 조직으로 바꾸려고 한다.”
현대카드의 디지털 수준은.
“하다보니 갤럭시 도메인(PLCC) 외에 다른 수익모델이 막 튀어나온다. 자동차 파이낸싱에서도 인공지능(AI)으로 뒤집어엎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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