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 대법원, 혐한시위 첫 명예훼손 확정판결에도 ‘솜방망이’ 논란

중앙일보

입력

조총련계 학교인 조선학교에 대한 혐한시위가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일본에서 처음 확정됐다.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혐오 발언인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에 일본 사법부가 최초로 명예훼손을 적용한 사례다. 하지만 일각에선 벌금형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헤이트 스피치'에 모욕죄 아닌, #명예훼손죄 첫 적용, 대법원 확정판결 #하지만 벌금형…"너무 무른 판결"

일본 우익세력이 2017년 12월 도쿄 신주쿠 주일한국대사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우익세력이 2017년 12월 도쿄 신주쿠 주일한국대사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 제3소법정 하야시 게이이치(林景一) 재판장은 니시무라 히토시(西村齊·52) 전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교토 지부장에게 조선학교를 비방한 혐의(명예훼손)로 내린 벌금 50만엔(약 528만원)의 판결을 지난 14일 확정했다.

니시무라는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해당 판결을 받고 최고재판소로 향했지만, 헌법 위반 등 합당한 상고 이유가 없다는 게 최고재판소의 판단이었다.

니시무라는 2017년 4월 교토시 미나미(南)구에 있던 교토 조선제1초급학교 부지 근처 공원에서 확성기를 사용해 "이 조선학교는 일본인을 납치했다"고 발언하는 장면을 인터넷에 생중계했다. 이 과정에서 니시무라는 “(조선학교 사람들이) 여러분의 아이를 납치할지도 모른다”고 공포심을 조장하기도 했다.

일본 검찰은 이런 행위를 한 니시무라를 모욕죄가 아닌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시대적 변화를 고려해 더 무거운 처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사회는 사법 역사상 처음 헤이트 스피치에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주목했다.

니시무라는 기소 이유가 된 발언이 조선학교 일반에 관한 것이며 공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서 무죄라고 주장했지만 1심 법원은 발언 내용이 허위이고 학교법인 교토조선학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해 벌금 50만엔을 선고했다. 이어 2심 법원도 니시무라의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교포사회에선 형이 가벼워 혐한 시위에 얼마나 경종을 울릴지 의문이라는 비판론이 나온다.

헤이트 스피치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벌여온 재일 교포 문공휘 씨는 트위터에서 “일본의 사법은 민족 차별주의자에게 너무 무르다.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을 용인한 것과 같다”며 “이런 벌금형은 니시무라 같은 확신범(정치 사상범)에 대한 제재, 억제, 갱생 등 온갖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 겨우 벌금형 대상이 됐다는 것에 의해 사회적 제재를 기대할 수 있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 측도 지난 9월 2심 선고가 이뤄진 뒤 기자회견에서 “이 판결을 받고 일본 사회, 일본에서 산다는 것이 무섭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일본에선 혐한 활동을 벌이는 극우세력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최고재판소는 지난 10월 30일 조선학교 보조금 중단을 반대한 변호사들에게 징계청구서를 대량으로 배달한 극우세력들에 대해 396만엔(약 431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