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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조작국이 중국 아닌 스위스?…한국은 관찰대상국 유지

중앙일보

입력

미국 달러 지폐. [뉴스1]

미국 달러 지폐. [뉴스1]

미국이 스위스와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한국은 4년 연속 관찰대상국 지위를 유지했다. 지난 1월 환율조작국에서 해제된 중국도 관찰대상국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재무부가 16일(현지시간) 발표한 '주요 교역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환율보고서)'에서 스위스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사상 처음이다. 미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자국 통화가치가 오르자 스위스 정부가 예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200억 달러(약 21조 8000억원) 초과하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GDP 대비 2% 초과하는 외환시장의 달러화 순매수의 요건에 따라 환율조작국과 관찰대상국을 나눈다.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

스위스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스위스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485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는 GDP 대비 8.8%를 기록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외환 시장 개입이다. 스위스의 외환시장의 달러화 순매수 비중은 GDP의 14.2%에 달했다. 재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올 2분기에만 스위스가 930억 달러를 사들였다.

스위스 프랑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 스위스 프랑의 몸값은 고공행진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사태로 급등한 스위스 프랑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당국이 달러를 순매수하는 개입을 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중앙은행(SNB)도 시장 개입은 사실상 인정했다. SNB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가 외환 시장에 개입한 것은 적절한 통화 수준 및 물가 안정을 위한 것일 뿐, 국제 외환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앞으로의 통화정책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위스와 함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베트남도 반발하고 있다. 베트남 중앙은행도 이날 성명에서 "최근 수년간의 환율 관리는 거시경제 안정과 인플레 억제를 위한 것일 뿐 국제 무역에서 불공정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고 밝혔다. 베트남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584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는 GDP 대비 4.6%를 기록했다. 달러화 순매수 비중은 GDP 대비 5.1%다.

환율조작국 지정 1년 안에도 미국 재무부 판단으로 변화가 없을 경우 제재 대상이 된다. 미국 기업이 해당 국가의 기업에 투자하거나, 해당 국가의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제한될 수 있다.

미국 워싱턴DC의 재무부. AF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의 재무부. AFP=연합뉴스

환율조작국 지정은 미국 달러화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1988년부터 환율조작국을 지정해왔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말기인 2015년 관련 조항을 구체화했다. 미국외교협회(CFR)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며 “중국 등 일부 국가의 환율 조작에 대해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지만 이를 남용하면 오히려 미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위스와 베트남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가 글로벌 무역 전쟁에서 쏜 최후의 한 발”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선거에서 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난 8월 기준 무역적자는 671억 달러로 지난해 대비 5.9% 늘었다. 때문에 로이터통신은 “임기 만료를 앞둔 트럼프가 바이든 당선인의 부담을 가중했다”고 지적했다.

전직 재무부 관료인 마크 소벨은 16일 뉴욕타임스(NYT)에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한) 정량 및 정성적 분석의 기준이 재무부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다른 국가들이 실제로 미국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버젓이 하는 상황에서 스위스와 베트남이 실제로 미국에 위협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화. [블룸버그]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화. [블룸버그]

한편 한국은 4년 연속 ‘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 대미 무역 흑자가 200억 달러를 넘고 경상수지 흑자가 GDP 대비 3.5%를 기록하며 중국·이탈리아ㆍ싱가포르ㆍ말레이시아ㆍ대만ㆍ태국ㆍ인도 등과 함께 관찰국 명단에 포함됐다.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미 재무부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게 된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며 수출 기업에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재무부는 한국에 대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경제 성장 전망이 악화했으며 수출이 압박을 받으며 대미 무역수지 흑자 폭이 줄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올해 4월까지 최근 4분기 동안 원화는 (달러화 대비) 3.8% 평가절하됐다”며 “(한국 외환) 당국은 개입을 제한해야 하며, 예외적인 상황에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외환 당국의 손발이 묶이게 된 모양새다.

스위스중앙은행(SNB) 건물. 로이터=연합뉴스

스위스중앙은행(SNB) 건물.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이번에는 관찰대상국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의 경우 대미 무역 흑자(3101억 달러)는 압도적이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GDP 대비 1.1%에 그쳤기 때문이다.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해 “정부가 공개적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투명성을 높일 것과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과 기타 국영 은행 간의 외환 파생상품 및 관련 활동에서의 이해도를 제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못 박았다. 중국에 대해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고 올해 1월 해제했다. 1988년부터 매해 약 2~3회씩 발간해온 보고서가 아닌 종합무역법상에 따른 것이었다. 를 통해서는 아니었다. 종합무역법은 특정 숫자를 적시하지 않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또는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일 경우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당시에도 보고서상의 환율조작국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8월은 미ㆍ중이 서로에게 보복 관세를 매기며 무역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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