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야·생·화] '양의지 회장'의 선수협, 출발부터 다르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17 15:46

업데이트 2020.12.17 15:51

15일 선수협 총회에서 회의를 이끌고 있는 양의지(NC 다이노스) 신임 회장. [뉴스1]

15일 선수협 총회에서 회의를 이끌고 있는 양의지(NC 다이노스) 신임 회장. [뉴스1]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NC 다이노스 주장 양의지(33)는 7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선수협 회장직을 덜컥 떠안기엔 부담이 큰 시기였다. 이대호 전 회장과 김태현 전 사무총장이 판공비 관련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인 직후여서다. 이대호는 해명 기자회견에서 "선수협은 힘이 없는 조직이다. 선수협 회장을 맡고 싶어하는 선수도 없다. 나 역시 원했던 자리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선수가 불신하는 선수협'의 민낯이 드러났다.

양의지는 '모두가 꺼리는' 그 역할을 최악의 순간에 맡았다. 그가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판공비 논란과 관련한 공개 사과였다. 그는 거듭 고개를 숙이면서 "앞으로 이 문제를 깨끗하고 공정하게 처리하겠다. 선수협 정관을 상세히 검토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우려 속에 다시 출발한 선수협은 놀랍게도 빠르게 제자리를 찾고 있다. 사무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벌써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10개 구단 사장이 모인 KBO 이사회가 16일 2차 드래프트 폐지안 의결을 보류했다. 선수협의 목소리가 힘을 낸 결과다.

2차 드래프트는 전력 평준화와 퓨처스(2군) 리그 선수의 출전 기회 확대를 위해 2011년 도입됐다. 그동안 다섯 차례의 2차 드래프트를 통해 135명이 팀을 옮겼다. 다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꾸준히 나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역대 최소인 18명만 지명받았다. 결국 10개 구단 단장이 모인 KBO 실행위원회는 8일 제도 폐지에 합의했다.

 15일 선수협 총회에서 안건을 살펴보고 있는 양의지(NC 다이노스) 신임 회장. [뉴스1]

15일 선수협 총회에서 안건을 살펴보고 있는 양의지(NC 다이노스) 신임 회장. [뉴스1]

그러자 선수협이 빠르게 움직였다. 9일 곧바로 2차 드래프트 폐지 재고를 요청했다. "팀에서 출전 기회가 없는 선수들을 위해 어렵게 시작된 제도다. 저연봉·저연차 선수의 권익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하다. 더 나은 방식으로 개선해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2차 드래프트를 '가용 전력 확보 기회'로만 여긴 구단들을 향해 원래 취지를 강조한 것이다.

무작정 반대만 한 게 아니다. 건설적인 대안도 내놨다. 선수협은 "2차 드래프트를 폐지한다면, 미국의 '마이너리그 자유계약선수(FA)' 제도와 같은 보완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한국도 2군에서 일정한 시기를 뛴 선수들에게 '퓨처스리그 FA' 자격을 주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선수협의 합리적인 반론은 결국 통했다. 이사회는 이례적으로 실행위원회 합의안 승인을 보류하고 "기존 취지에 맞게 개선하거나 대안을 마련해 다음 실행위원회에서 재논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외부 영향력뿐 아니라 내부 결속도 단단해졌다. 양의지의 동기생인 김현수(LG 트윈스), 이재원(SK 와이번스), 황재균(KT 위즈)이 선수협 공동 부회장을 자청했다. 양의지는 "강한 선수협이 되려면, 여러 선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다행히 친구들 셋이 '한번 잘해보자'며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내가 미처 못 본 점을 봐주고 쓴소리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NC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끈 '양의지 리더십'이 위기의 선수협마저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놓는 모양새다. 이런 게 전화위복이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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