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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비극···독재자 3명 날렸지만 독재는 귀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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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샤압 유리드 이스쾃 안니담(민중은 정권 타도를 원한다).”

12월 17일 노점상 분신으로 시위 발화 #민중 시위로 정권교체와 변혁 시도 #이집트, 선출 대통령 독단정치에 또 시위 #국민 뜻 무시 지지파만 믿다가 반발 불러 #그 틈 이용해 쿠데타로 군사정권 복귀 #리비아·예멘, 새 정부 무능·분열로 내전 #시리아선 내전으로 21세기 최악 희생 #난민 발생과 기아·전염병 인도주의 비극 #유가 하락으로 산유국 사정도 어려워져 #바이든 행정부 적극적 중동정책 가능성 #한국도 적극적인 중동·아랍 외교 펼칠 때

2010년부터 이듬해까지 중동·북아프리카의 아랍권 거의 전역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외쳤던 아랍어 구호다. 시위대가 자신을 무엇으로 인식했으며, 적으로 간주한 세력이 누구였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구호다. 바로 ‘아랍의 봄’의 정체성이다. ‘아랍의 봄’은 전 세계에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랍의 봄' 당시인 2011년 3월 29일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정권에 맞서 싸우던 반군 병사가 정부군의 포격이 시작된다며 주민들에게 피란을 권유하고 있다. 사치스러운 독재자만 제거하면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번영이 올 줄 알았지만 리비아는 지금도 내전 상태다. AP=연합뉴스

'아랍의 봄' 당시인 2011년 3월 29일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정권에 맞서 싸우던 반군 병사가 정부군의 포격이 시작된다며 주민들에게 피란을 권유하고 있다. 사치스러운 독재자만 제거하면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번영이 올 줄 알았지만 리비아는 지금도 내전 상태다. AP=연합뉴스

민주주의 시도와 좌절 10년, 세계에 교훈  

10년이 지난 지금 ‘아랍의 봄’을 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얻기 위한 시민들의 시도와 좌절의 생생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비롯한 아직도 남아있는 전 세계 권위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와 장애가 생길지를 잘 보여준다. 시민들이 권위주의 정권을 교체한 다음에 어떤 반혁명이 벌어지는지, 민주주의가 어떻게 변질하는지, 사태가 어떻게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으로 흐르는지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를 반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동·아랍권 주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길이다. 한국과 교역과 교류가 상당한 중동·아랍권이라는 한 지역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제대로 파악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울러 한국 외교가 어떻게 특정 지역과 체제 변혁이라는 특수상황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역동성을 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랍의 봄’과 그 뒤 10년은 한국과 세계에 수많은 교훈을 준다.

북아프리카 국가 튀니지의 중부 시드 부지드의 중앙우체국의 벽에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초상이 그러져 있다. 부아지지는 2010년 12월 17일 노점상의 과도한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그의 분신으로 튀니지에서 가난과 실업에 항의하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는 중동과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해 '아랍의 봄'을 이끌었다. AFP=연합뉴스

북아프리카 국가 튀니지의 중부 시드 부지드의 중앙우체국의 벽에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초상이 그러져 있다. 부아지지는 2010년 12월 17일 노점상의 과도한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그의 분신으로 튀니지에서 가난과 실업에 항의하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는 중동과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해 '아랍의 봄'을 이끌었다. AFP=연합뉴스

가난·실업의 뒤에는 체제모순 있다 인식

튀니지에서 시작해 알제리와 이집트를 거쳐 중동 아랍권 전역으로 번졌던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이 12월 17일로 10주년을 맞았다. 역사적 사건인 ‘아랍의 봄’은 필연적이었다. 2010년 12월 17일 인구 12만의 튀니지 중부도시 시디 부지드에서 채소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여성 공무원의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하면서 시작됐다. 부아지지는 2011년 1월 4일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분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튀니지 전역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빈곤층과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이 주를 이뤘지만, 곧 모든 계층으로 파급됐다. 시위는 빈곤과 실업, 과도한 공권력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시작됐지만, 그 배경에 독재와 권위주의라는 체제모순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권침해·부패·도둑정치로 이어져 가난한 나라를 더욱 가난하게 한다는 시민 인식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정권 타도’를 시위의 목표로 자리 잡았다.

리비아의 뱅가지에서 2011년 10월 23일 벌어진 대규모 시위. AP=연합뉴스

리비아의 뱅가지에서 2011년 10월 23일 벌어진 대규모 시위. AP=연합뉴스

이듬해인 2011년 중동 전역으로 시위, 파업, 인터넷 반정부 활동이 번졌으며 경찰은 물론 군대도 이를 억누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위주의가 판치던 중동 아랍권에서 현대에 들어 처음으로 대규모 정권 타도 시위가 벌어진 세계사적 사건으로 번졌다. 그 결과 일부 지도자·정권·체제의 교체가 이뤄졌다. 이전까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군인 출신 독재자인 튀니지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지도자,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실각했다.

2011년 1월 16일 튀니지의 한 도시에 설치됏던 제인 엘아비디네 밴 알리 대통령의 사진이 찣어져 있다. AP=연합뉴스

2011년 1월 16일 튀니지의 한 도시에 설치됏던 제인 엘아비디네 밴 알리 대통령의 사진이 찣어져 있다. AP=연합뉴스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 망명 뒤 민주정부

아랍의 봄으로 물러난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장기 독재자였다. 아랍의 봄으로 가장 먼저 권좌에서 밀려난 인물이 군인 출신 독재자인 튀니지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1936~2019년, 재임 1987~2011년)이다. 23년간 권력을 놓지 않았던 독재자 벤 알리는 시위가 계속되자 자가용 비행기에 올라 프랑스 도피를 시도하다 거절당했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해 지내다 그곳에서 암으로 숨졌다. 튀니지 법원은 궐석재판에서 그에게 축재 등으로 35년형을, 시위 유혈진압으로 종신형을 각각 선고했지만 망명으로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튀니지에선 338명이 시위 도중 숨졌으며, 벤 알리의 망명 이후 과도정부가 들어서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새 헌법을 제정해 정권은 물론 권위주의 체제까지 교체했다. 튀니지는 지금까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지도자,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2010년 아랍-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습이다. 장기집권 독재자인 세 명은 2011년 아랍이 봄 와중에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제거됐다. AP=연합뉴스

앞줄 왼쪽부터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지도자,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2010년 아랍-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습이다. 장기집권 독재자인 세 명은 2011년 아랍이 봄 와중에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제거됐다. AP=연합뉴스

가다피, 비참한 최후…리비아 내전 수렁

42년을 집권하며 갖은 기행을 다 벌였던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1942~2011년, 재임 1969~2011년)는 시위가 격화하자 피신했다. 배수관에 숨어있다가 주민들에게 발각돼 끌려 나오다 한 청년이 쏜 권총에 맞아 숨졌다. 피투성이 시신은 푸줏간 냉장고에 보관되다 공개됐다.
리비아에선 시위대와 집권 가다피 세력과의 충돌이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11년 9400~2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 뒤 2014년에는 동부 벵가지와 서부 트리폴리의 지역 갈등, 200개가 넘는 부족 간의 대결, 급진 세력의 침투, 군벌의 대두가 겹치면서 다시 내전이 벌어져 8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내전과 분열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11년 1월 28일 이잡트 카이로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 AP=연합뉴스

2011년 1월 28일 이잡트 카이로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 AP=연합뉴스

이집트 새 정권, 국민 뜻 무시하다 또 시위사태

30년간 권좌를 지켰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1928~2020년, 재임 1981~2011년)은 사위가 격화하자 사임하고 휴양지에 머물렀지만, 부패·권력남용·유혈진압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이슬람주의자인 무함마드 모르시 대통령(1951~2019년, 재임 2012~2013년)이 쿠데타로 실각한 직후 유혈진압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그 뒤 공금횡령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군 병원에서 계속 생활하다 숨졌다.
이집트는 무바라크 실각으로 자유 선거를 거쳐 모르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자유 선거로 집권한 세력도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고 급진적인 이슬람 개혁을 추진하다 대규모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선거로 권력을 차지하는 것만 생각했지, 민주주의 확대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묻고 동의와 합의를 구하면서 체제 개혁을 전환하는 법을 몰랐다. 오로지 자기만 옳다고 믿고 자기 뜻대로 나라를 이끌려다 국민의 저항을 부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가 이끄는 군부 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됐다. 엘시시는 선거를 거쳐 대통령에 올랐다. 이집트에는 권위주의가 다시 복귀했다.

2011년 2월 22일 예멘의 사나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 AP=연합뉴스

2011년 2월 22일 예멘의 사나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 AP=연합뉴스

예멘, 독재자 물러나고 국가운영 미숙 속 내란

32년간 권력을 누렸던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1947~2017년, 통일 예멘 대통령 재임 1990~2012년, 북예멘 대통령 재임 1978~1990년)은 자신과 가족의 면책특권을 인정받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2014년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자 처음엔 후티 반군과 연합했다가 나중에는 정부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 편으로 말을 갈아탔다. 이 때문에 후티 반군으로부터 반역자로 비난받다가 2017년 12월 자택에서 살해됐다. 후티 반군 저격수의 총에 맞았다는 설, 자동차로 자택을 탈출하려다 총격을 받고 숨졌다는 설, 자택에서 후티 반군에 처형당했다는 설 등 사망 경위에 대한 주장이 엇갈린다. 어느 경우에도 비정상적인 죽음이었다.
예멘은 살레가 물러난 뒤 집권한 하디 대통령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지 못하면서 후티 반군의 봉기로 이어졌다. 하디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수니파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시아파인 후티 반군을 진압하려고 시도했지만, 오히려 반군에 밀리고 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아 탄도미사일을 확보해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발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후티 반군 장악 지역을 봉쇄했으며 이곳 주민들이 기아와 콜레라 등으로 고통받으면서 국제 인도주의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 일부 예멘 난민은 한국에까지 왔다.

2012년 11월 17일, 시리아 이드리브에서 반군이 정부군을 향해 트럭에 장착된 기관포를 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2년 11월 17일, 시리아 이드리브에서 반군이 정부군을 향해 트럭에 장착된 기관포를 쏘고 있다. AP=연합뉴스

군주국가 무풍지대…시리아 내전 21세기 비극

기억할 것은 장기 독재 정권은 이렇게 세 군데나 무너졌지만 군주정은 무너진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이슬람 시아파가 다수인데 군주는 수니파로 종파 갈등이 있었던 바레인에선 격렬한 사위가 벌어졌지만, 체제를 바꾸진 못했다. 이 과정에서 다리 하나로 연결된 사우디아라비아가 군대를 보내 시위를 진압했다. 체제와 수니파 왕실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군주연합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소규모 시위가 벌어졌지만 신속하게 유혈 진압됐다. 모로코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이뤄졌으며, 오만은 군주가 개혁을 약속했다.
중동 군주국에선 아랍의 봄 이후 의료복지 등에 대한 투자가 확대돼 한국에서 관련 수출이 늘었다.
아랍의 봄은 생각지도 않았던 비극을 불렀다. 바로 내전이다. 리비아와 예멘의 내전은 아랍의 봄으로 바뀐 정권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시차를 두고 벌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시리아 내전은 아랍의 봄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이 유혈 진압하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하고 대항하면서 확대됐다는 점에서 다른 내전과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비극과 인명 희생이라는 측면에선 동일하다.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으로 정부군과 친정부 민병대가 13만~18만 명이 숨졌으며, 반군도 8만5000~14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민간인은 11만6000~11만8000명이 희생됐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760만 명에 집을 잃고 살던 곳을 떠났으며 이 가운에 511만 명은 외국으로 떠나 난민이 됐다. 시리아 내전은 21세기 최악의 인권 유린의 비극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와 이란은 이런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예멘의 사나에 그려진 벽화. '자유는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구호를 영어와 아랍어로 적고 장식을 덧붙였다. AP=연합뉴스

예멘의 사나에 그려진 벽화. '자유는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구호를 영어와 아랍어로 적고 장식을 덧붙였다. AP=연합뉴스

아랍의 봄 원인인 독재와 경제난은 여전

아랍의 봄은 예기치 않은 인도주의 비극과 난민 대거 발생으로 지중해 지역과 유럽 전역까지 타격을 줬다. 이는 전 세계적인 고민으로 확산했다. 그런데도 아랍의 봄을 부른 빈곤·실업·독재·권위주의·인권침해·부패·도둑정치 등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위의 목표였던 경제발전·일자리·인권개선·민주주의·자유선거·권력교체는 요원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랍의 봄과 같은 사태는 언제나 재발할 우려가 있다. 가난과 실업, 그리고 지배층의 부패와 도둑정치에 따른 권력과 부의 독점 등이 아랍의 봄을 부른 원인은 지금도 여전하다. 특히 경제가 문제다. 202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금액 기준 1인당 주요 아랍 국가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세계 순위 통계를 보면 아랍의 봄을 겪은 나라들의 현재 상황이 잘 드러난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튀니지는 3295달러(123위)이며 이웃 알제리는 3331달러(121위)에 그쳤다. 권위주의 정부가 전복된 뒤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집트도 3561달러(114위) 수준이다. 내전이 벌어진 리비아는 산유국임에도 3282달러(124위), 시리아는 2114달러(137위), 예멘은 645달러(174위)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어 2019년 군사 쿠데타로 권위주의 정권을 교체한 수단은 735달러(170위), 2020년 백향목 혁명이 벌어진 레바논은 2745달러(28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랍의 봄으로 개헌 국민투표를 치르고 개혁에 나선 모로코는 3121달러(125위)에 머물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2011년 2월 2일 반정부 시위대(윗쪽)과 친정부 시위대(아랫쪽)이 충돌하려는 순간이다. AP=연합뉴스열린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2011년 2월 2일 반정부 시위대(윗쪽)과 친정부 시위대(아랫쪽)이 충돌하려는 순간이다. AP=연합뉴스열린

유가 2011년의 40%선…중동 다시 불안

산유국들도 마찬가지다. 2019년 미국 에너지 정보청(EIA) 통계 기준 세계 4위의 석유 수출국인 이라크의 1인당 GDP는 4438달러(49위)로 자원이 국민의 경제 수준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도 1만9587달러(39위), 19위인 오만도 1만4423달러(49위), 51위인 바레인도 2만2878달러(34위) 수준이다.
특히 국제유가는 아랍의 봄 당시와 비교해 현재 40% 수준으로 상황이 당시보다 더욱 악화했다. 글로벌 통계사이트 스테이티스타(statista.com)이 정리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연도별 평균 유가 추이를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배럴당 2010년 77.38달러, 2011년 107.46달러였으나 2012년 109.45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16년 40.76달러로 바닥을 친 뒤 2017년 52.51달러, 2018년 69.48달러, 2019년 64.04달러로 어느 정도 회복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와 석유 수요 하락으로 OPEC의 평균 유가는 40.47달러로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산유국들이 국민을 달랠 복지 자금이 부족해지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석유를 판 돈을 모아둔 엄청난 국부펀드를 운용하지만 이를 털어서 쓰기는 곤란한 상황이다. 의료 등 복지 혜택이 줄면 민심이 흉흉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나마 산유국들은 코로나 환자를 무료 진료하거나 거액을 선투자해 백신을 다량 확보하는 등 노력을 할 수는 있다.

2010~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시위가 벌어진 지역. 사진=위키피디아

2010~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시위가 벌어진 지역. 사진=위키피디아

바이든 행정부, 예멘 내전 종식 앞장설 듯

자원이 없는 중동 국가들은 자칫 코로나 사태 등으로 국민 불만이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시리아·예멘 내란은 친서방-반서방,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반이란-친이란으로 나뉘어 국제전 양상까지 띠고 있다. 막대한 전비가 들 수밖에 없다. 중동·아랍권 내부에 증오가 확산하면 지역이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와 후티 반군의 평화 협상이 시급한 이유다. 새로 들어서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토니 블링컨 차기 국무장관 지명자도 이를 주요 과제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와중에 이 지역에는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여전히 존재한다. IS는 미군과 이라크군, 쿠르드족의 공세로 지역적 근거지를 일었지만, 워낙 네트워크 조직이다 보니 언제라도 다시 발호할 수 있다. 이들은 중동·아랍권은 물론 서구까지 위협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일부에서 세속주의 정부체제를 이슬람주의 체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터키가 대표적이다. 세속주의 국가로 시작한 터키 공화국은 히잡 쓰기가 일반화하는 등 이슬람주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중동에서 발을 빼려 하자 힘의 공백을 틈타 터키는 민족주의와 권력집중을 강화하고 오스만 패권주의 복귀 움직임을 보인다.

이라크 민병대가 2016년 10월 20일 북부 모술에서 개인 화기를 들고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친 것을 자축하고 있다. 아랍의 봄은 중동에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을 줄이어 가져왔다. AP=연합뉴스

이라크 민병대가 2016년 10월 20일 북부 모술에서 개인 화기를 들고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친 것을 자축하고 있다. 아랍의 봄은 중동에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을 줄이어 가져왔다. AP=연합뉴스

중동 다양한 변화, 전 세계 타산지석으로

또 다른 측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남녀차별 등 와하비즘(사우디 왕실이 지원한 이슬람 원리주의)을 완화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여성의 운전과 스포츠 관람을 허용하는 등 사우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도 주목 대상이다. 이스라엘은 아랍권의 아랍에미리트·바레인·수단·모로코 등과 수교하면서 아랍과 관계 정상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만과 사우디가 그다음 수교 대상으로 주목받는다. 중동·아랍권이 확실히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아랍의 봄 ’이후 지난 10년간의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와 독재·부패·권위주의의 회복 탄력성을 고스란히 보여준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아울러 민주 선거로 선출된 새로운 권력자가 자신이나 지지세력의 고집을 앞세우며 국민의 뜻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할 경우 민주주의가 어떻게 훼손되는지도 보여줬다. 이렇게 중동은 세계사의 타산지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도 더욱 적극적인 중동 외교가 필요하다. 지난 10년간의 중동사태를 새롭게 분석해 국제관계는 물론 대북정책에서도 참조해야 할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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