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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라캐머러, 아프간·이라크전 역전의 용사 발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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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공수부대 출신 미 국방장관·주한미군사령관 지명 배경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2009년 4월 8일 부통령 시절 국방장관에 지명된 로이드 오스틴 중장(왼쪽)과 함께 노스캘리포니아 포트 브랙에서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2009년 4월 8일 부통령 시절 국방장관에 지명된 로이드 오스틴 중장(왼쪽)과 함께 노스캘리포니아 포트 브랙에서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의 최근 군 인사 라인업은 한국전쟁 당시와 닮았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지명자와 폴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내정자 얘기다. 미국은 70년 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방장관에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마셜 원수를, 한국전쟁을 수행할 유엔군사령관에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를 임명했다.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치른 마셜과 맥아더는 그때 ‘전쟁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오스틴 장관 지명자와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내정자를 마셜이나 맥아더에 감히 비유하긴 어렵지만, 이들 또한 야전에서 많은 전쟁을 경험했다. 마셜과 맥아더는 육군 원수 출신이고, 오스틴과 라캐머러는 육군 대장이다.

오스틴·라캐머러, 공수·작전통 #전쟁에서 뼈가 굵은 군사전문가 #중국 갈등·북 도발에 적극 대처 #인도·태평양사령관까지 참전경험

미국은 안보 상황에 맞게 적절한 인물을 국방장관으로 발탁해왔다. 전쟁 때는 군사전문가를, 안정기엔 개혁과 혁신 전문가를, 냉전과 핵문제엔 정보 전문가를 기용했다. 이번에 예비역 대장을 국방장관에 지명한 것은 그만큼 향후 안보정세가 불안하다는 점이 반영된 듯하다. 실전 경험이 많은 군사전문가를 쓰겠다는 것이다. 마셜의 경우가 그랬다. 한국전쟁 직전 트루먼 미 대통령은 미 군사력을 대폭 축소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서였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이 갑자기 38°선을 넘어와 한국을 침공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트루먼, 한국전쟁 때 마셜을 국방장관 임명

당시 38°선은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이 확정한 자유진영과 공산권의 경계선이었다. 미국은 이 경계선을 사실상 국경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H. 폴 제퍼스 『마셜』) 개전 3일 만에 참전을 결심한 트루먼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유엔군사령관을 맡겨 한국 방어 임무를 부여했다. 트루먼은 또 미군 장성 가운데 가장 존경받았던 백전노장 조지 마셜을 불러 국방장관을 시켰다. 마셜은 2차대전을 최종 정리했고, 국무장관 땐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플랜’을 세웠다. 군 출신 가운데 유일하게 195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역대 미 국방장관엔 우리처럼 대장 출신이 거의 없다. 대장 출신 장관으론 조지 마셜(3대)과 트럼프 대통령 초반 짐 매티스(26대)뿐이다. 대부분 1·2차 대전이나 베트남전 등엔 참전했지만, 초급 장교 출신이 다수다. 그들의 백그라운드도 역사·수학·법률·경영 등 다양하다. 의회 또는 백악관 보좌관이나 기업인, 하원의원을 거쳐 국방부 장관이 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나마 국방부 장관을 2번(13·21대)이나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는 해군 대령 출신이다. 그는 프린스턴대와 조지타운대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그의 두 번째 국방장관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1년 발탁했다. 아프간·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고, 국방개혁을 추진케 했다. 21세기 초반 변환의 시대에서 럼즈펠드의 경험과 군 장악력을 활용한 것이다.

미군에 현대적인 국방시스템을 도입한 로버트 맥나마라(8대)는 버클리대를 나온 포드자동차 경영자 출신이다. 그는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방만해진 미 국방부 예산을 합리적으로 계획해 효과적으로 집행·평가하는 국방기획관리제도인 PPBEES(Planning Programming Budgeting Execution Evaluation System)를 처음 적용했다. 이란과 북한 핵문제 등으로 골머리가 아팠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엔 미 중앙정보국(CIA) 맨인 로버트 게이츠(22대)를 국방장관에 기용했다. 게이츠는 윌리엄앤메리대를 나온 공군 정보장교 출신이다. 이처럼 미국은 당시 상황에 적합한 인물을 국방장관에 썼다. 그런데 이번엔 대장 출신의 전쟁 전문가를 기용했다.

트럼프, 북과 전쟁 우려해 매티스 기용

주한미군사령관에 내정된 폴 라캐머러(왼쪽) 미 태평양육군사령관이 2019년 12월 주일 미군기지에서 조나단 하이트 주일 미군 부사령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미 육군]

주한미군사령관에 내정된 폴 라캐머러(왼쪽) 미 태평양육군사령관이 2019년 12월 주일 미군기지에서 조나단 하이트 주일 미군 부사령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미 육군]

미국이 국방부 창설(1947년) 이래 국방장관에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대장을 지명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매티스 전 장관은 중부사령관을 지냈지만, 센트럴 워싱턴대에서 역사를 전공한 뒤, 해병대에 입대해 대장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 초기 중부사령관 출신인 매티스를 기용한 것은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둬서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화염과 분노’가 오갔다. 웨스트포인트 출신 국방장관으론 오스틴이 두 번째다. 최근 국방부 장관에서 해임된 마크 에스퍼가 첫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다. 그는 미 육사를 나와 보병 소위로 임관해 걸프전에 참전한 예비역 중령이다. 척 헤이글 상원의원의 고문을 거쳐 관리직인 육군성 장관을 지냈다. 에스퍼는 관리·참모형이었다.

게다가 오스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인데도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과감하게 발탁했다. 다양한 인종으로 행정부를 구성하려는 상징성도 있지만, 전쟁에서 뼈가 굵은 군사전문가를 통해 다가올 안보위기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군사적 충돌로도 갈 수 있는 중국과의 갈등, 전략적 도발이 우려되는 북한에 대비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여기에 폴 라캐머러 태평양육군사령관을 주한미군사령관에 내정한 것은 오스틴의 국방부 장관 지명에 이은 화룡점정이다. 바이든은 오스틴을, 트럼프는 라캐머러를 지명했지만, 바이든과 트럼프의 안보 상황에 대한 인식은 동일한 것 같다.

오스틴과 라캐머러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역전의 용사다. 둘은 공수작전과 산악전 전문가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안보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군사조치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다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에 지명된 존 아퀼리노 해군 대장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인태사령부는 유사시 한반도 전구(戰區)를 총괄 지휘·지원한다. 미 국방장관-인도·태평양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모두 노련한 전쟁 경험자라는 점에서 3박자가 맞아떨어졌다.

특히 오스틴 장관 지명자는 미 육군 82공정사단에서 잔뼈가 굵었다. 공정사단은 헬기나 낙하산을 활용해 공중에서 전투지역에 투입되는 부대다. 이 사단은 2차대전 때 벌지전투·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물론,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도 참전한 불굴의 부대다. 오스틴은 82공정사단에서 초급장교·낙하산 대대장을 보냈다. 또 10산악사단장과 18공정군단장 등을 거쳤다. 이라크 주둔 마지막 사령관으로 이라크 보안군(ISF)에 대한 훈련과 장비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후 안정화작전도 수행했다. 따라서 그의 군 이력을 보면 북한이 도발했을 경우 신속하게 북한군 지휘부를 장악하고, 북한을 안정화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 바이든이 인정한 오스틴의 또 다른 장점은 매우 신중하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으로 내정된 라캐머러 미 태평양육군사령관도 경력이 오스틴과 유사하다. 라캐머러는 오스틴처럼 82공정사단에서 소대장과 중대장을, 10산악사단에서 대대장도 거쳤다. 주한 미2사단에서 보병대대 작전장교를 지내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안다. 그는 1994년 미국이 아이티에서 벌인 ‘민주주의 유지작전(Operation Uphold Democracy)’에 참전했다. 이 작전은 아이티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라울 세드라스 대통령을 축출하고, 쿠데타로 쫓겨난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직 대통령을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라캐머러는 아프가니스탄전의 ‘아나콘다작전’에도 투입됐다. 아프간 전쟁 막바지인 2002년 3월 아프간 동부의 가르데즈 산악지대에 재집결한 알카에다와 탈레반 500∼1000명을 토벌한 작전이다. 당시 10산악사단 등으로 구성된 미군은 아나콘다라는 큰 뱀이 먹이를 큰 몸통으로 조여 잡듯이 토벌작전을 벌였다. 미 국방대에서 성공사례로 강의하는 작전이다.

오스틴·라캐머러 특수작전, 북 비핵화 압박

북한군 전쟁지도부 지휘벙커에 대해서도 아나콘다작전이나 민주주의 유지작전처럼 특수작전을 벌일 수 있다. 북한군의 지휘벙커가 개마고원 등 산악에 고립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공정사단과 산악사단을 공중에서 투입해 북한군 지휘벙커를 순식간에 장악하는 시나리오도 상정할 수 있다. 스텔스 전투기와 동굴파괴 폭탄, 전자기폭탄, 신형 핵벙커버스터를 활용하면, 지휘벙커를 경호부대와 분리한 뒤, 벙커를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게 불가능하지도 않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전쟁 지휘부만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오스틴과 라캐머러의 경력은 과거 미 국방부 장관이나 로버트 에이브럼스 현 주한미군사령관과는 전혀 다르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기갑장교로 전통적인 정규작전에 능하다. 그러나 오스틴 장관 지명자와 라캐머러 사령관은 적 지휘부 제거나 특정지역 점령을 하는 특수작전통이다. 앞으로 북한 비핵화 협상이 틀어져 북한이 도발할 경우, 미국은 정규작전보다는 특수작전을 선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오스틴 국방장관과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겐 부담이다. 미국으로선 한반도 유사시 오스틴-라캐머러의 특수작전으로 대규모 작전을 하지 않고, 최소의 작전과 피해로 상황을 종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미 국방장관과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수용하도록 하는 압력카드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