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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유재석과 김창완, 그리고 손흥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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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스포츠본부장

정제원 스포츠본부장

유재석은 슈퍼스타다. 국민 MC로 불리는 그는 올해 라면집 사장에 이어 트로트 가수로, 기획사 대표로 잇따라 변신했다. 아무리 TV 화면 속 설정이라고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부캐(부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유재석에 열광하는걸까. 그의 다재다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항상 노력하는 성실한 자세가 주는 감동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다. 힙합 듀오 리쌍이 부른 노래 ‘회상’에선 이런 가사가 나온다. ‘될 때까지 노력하는 유재석. 그 성실함을 배워. 나를 다시 깨워.’ 노래 가사처럼 유재석은 올해 춤을 배우고, 트로트를 부르는가 하면 프로듀서로 변신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코로나와 사투 벌였던 한해 #묵묵히 일한 사람들 덕분에 견뎌 #내년엔 마스크 벗고 웃길

66세의 가수 김창완도 성실하게 여러 분야에 도전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연기자이자 DJ이기도 하다) 37년 만에 그가 정규앨범을 발표했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띄었다. 새 앨범을 들어봤더니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거장의 내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면 그때 가서야 알게 될 거야. 슬픈 일이지.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60대 음유시인의 읊조림을 듣고 있노라면 인생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엄마, 사랑해요’란 제목이 붙은 어쿠스틱 기타 연주곡도 백미다. 아무런 가사가 없는데도 눈물이 주룩 흐른다. 유재석이 환불원정대를 이끌고 제작한 노래 ‘돈터치미’를 들으면 심장이 쿵쿵 뛰는데 김창완의 ‘엄마, 사랑해요’를 들으면 가슴이 아려온다. ‘돈터치미’가 21세기 집단 창작의 산물이라면 ‘엄마, 사랑해요’는 오롯이 거장이 홀로 빚어낸 결정체다.

서소문 포럼 12/17

서소문 포럼 12/17

될 때까지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은 또 있다. 축구 스타 손흥민이 바로 그렇다. 최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터뜨린 ‘원더골’을 보았는가. 마치 축구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그림 같은 슈팅에 전 세계 팬들이 열광했다. 그 아름다운 포물선의 궤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환상적인 원더골이야말로 될 때까지 노력한 끝에 얻어낸 결정체 아니던가. 그가 어린 시절 페널티 박스 바깥쪽에서 수천, 수만 번의 슈팅 연습을 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그 덕분에 이 지역에서 슈팅을 하면 골이 터진다는 뜻에서 ‘손흥민 존(zone)’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2020년이 저문다. 올해만큼 ‘다사다난’이란 말이 실감 나는 한해도 없었을 듯 싶다. 전 세계 인류가 전염병 감염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음울한 나날이었다. 자영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학교도 문을 닫아걸었다. 여행하기도 어렵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꺼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우리 주변에서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유재석과 김창완이 그랬고, 손흥민이 그렇다. 이뿐인가.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 새벽부터 물건을 나르는 택배기사들 덕분에 우리는 이 암울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다. ‘워라밸(일과 여가 생활의 밸런스)’도 중요하고, 주 52시간 근무도 좋지만, 성실하게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기본 명제만큼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견뎌낸 주변의 가족과 친구·친지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할 기회다.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올해만큼 기쁘고, 고마울 때가 있었을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버스를 타고, 산책을 하고, 친구를 만나 함께 밥을 먹는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새해엔 코로나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오늘도 일터로 향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2020년의 영웅이다.

오늘도 신문에 실린 뉴스는 대부분 우울한 소식 뿐이다. 코로나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모르고, 정치권발 뉴스는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건 주변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영웅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다. 날이 밝으면 김창완의 새 앨범을 사러 가야겠다. 60대 가객의 혼이 담긴 결정체를 스마트폰을 통해 무료로 듣는 건 예의가 아닐 듯싶다.

정제원 스포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