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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덕 봤나…중국영화 ‘800’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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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올 세계 흥행 1위 영화가 된 ‘800’은 1937년 중일전쟁을 다루면서 상하이 내 폭 50m 쑤저우 강을 경계로 대비되는 삶의 현장을 담아냈다. 강 남쪽 상류층과 외국인들이 북쪽 사행창고 전투를 지켜보는 모습. [사진 TCO㈜더콘텐츠온]

올 세계 흥행 1위 영화가 된 ‘800’은 1937년 중일전쟁을 다루면서 상하이 내 폭 50m 쑤저우 강을 경계로 대비되는 삶의 현장을 담아냈다. 강 남쪽 상류층과 외국인들이 북쪽 사행창고 전투를 지켜보는 모습. [사진 TCO㈜더콘텐츠온]

1937년 중일전쟁을 다룬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800(팔백)’. 코로나19 악화 속 지난 10일 국내 개봉한 이후 1만 관객에 그쳤지만, 극장통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전 세계 매출은 4억6122만 달러(약 5039억 원)에 달했다. 2위 소니픽쳐스의 ‘나쁜 녀석들: 포에버’(4억2650만 달러)를 제치고 2020년 박스오피스 1위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지배해온 글로벌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중국 영화가 1위를 한 건 사상 처음이다.

9000만명 본 블록버스터 전쟁물 #중일전쟁 항전 그려 ‘국뽕’ 자극 #북미 잇단 셧다운에 할리우드 제쳐 #“막강 자본, 시진핑식 영화굴기 가속”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이다. 지난 3월 이후 북미 극장이 셧다운을 되풀이하면서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일제히 개봉을 미뤘다. 예정대로 월드와이드 극장 개봉한 건 ‘테넷’ 정도이고 ‘뮬란’ ‘원더우먼’ 등은 OTT와 병행해 극장가로 나왔다. 실제 ‘800’ 매출의 99%(4억6000만 달러)도 중국 내에서 나왔다. 주목할 건 ‘테넷’도 북미(5780만 달러)보다 중국(6660만 달러)에서 더 벌었다. 올 하반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정상에 가깝게 가동되는 시장은 중국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외신들은 올 중국 영화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북미를 제쳤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극장 스크린 수는 수년 전부터 세계 1위다. 지난해 말 기준 6만9787개로 4만여개로 집계되는 북미 시장 스크린 수를 훌쩍 넘었다. 지난해 중국에선 총 1억 2500만 회 영화 상영이 이뤄져 전년 대비 12.9%가 늘었다. 올 상반기 코로나19로 초토화된 시장의 부활을 ‘800’이 이끌었다. 지난 7월 개봉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좌석 판매를 30% 이하로 제한한 가운데서도 ‘800’은 열흘 만에 6000만명을 끌어들였다. 좌석 판매율은 10월 이후 75%로 완화됐고 이때까지 이미 9000만명이 관람했다.

2020 글로벌 영화 흥행 순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0 글로벌 영화 흥행 순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영화는 중일전쟁 당시 거의 유일한 항전의 기억 ‘상하이 사행창고 보위전’을 다룬다. 당시 중국은 난징(南京) 불평등조약에 따라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상하이·광저우 등 항구를 개방한 상태였다. 특히 상하이는 폭 50m에 불과한 쑤저우 강(황푸 강 지류)을 경계로 영국이 치외법권을 행사 중인 조계 지역(남쪽)과 그 북쪽이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동방의 파리’로 불린 강 남쪽에서 서양식 차림의 상류층이 외국인과 향연과 도박을 벌이는 동안 북쪽에선 살육에 가까운 일본군의 진격이 이어졌다. 이 북쪽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 마지막 보루가 된 6층짜리 건물 사행창고가 영화의 주 무대다. 사행창고란 전쟁 전 외국은행 네 개가 같이 쓴 창고라 붙은 이름이다.

이 창고를 최후 방어선으로 사수한 이들은 국민혁명군 제88사단 제524연대 제1대대. 훗날 중국 특유의 부풀림이 붙어 800명으로 회자했지만 실제론 400여명이었다고 한다. 일본군에 맞선 나흘간의 격전은 총 149분 러닝타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묘사된다. ‘덩케르크’ ‘어벤져스’처럼 디지털 아이맥스(IMAX)로 촬영했다. 아시아 최초다.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관후(管虎) 감독이 10년간 구상하고 제작비 5억 위안(약 860억 원)을 쏟아부었다.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장 등은 할리우드 스태프의 노하우를 빌었지만 중국의 자본과 인력 없이는 어림없을 규모다. ‘중국 영화가 할리우드만 못할 게 뭔가’ 하는 자신감이 물씬하다.

그렇다고 ‘특수부대 전랑2’(2017), ‘유랑지구’(2019) 등을 잇는 ‘국뽕’ 블록버스터로만 볼 수도 없다. 농사짓다 갑자기 군인이 된 젊은이들이 일본군 포로를 사살하며 괴로워하고 강 남쪽 휘황찬란한 ‘천국’을 보며 탈영 욕망을 느끼는 장면 등은 전쟁의 비인간성과 아이러니를 담아낸다. 서방 언론에 중계된 이 전투가 수뇌부의 국제여론 호소용 전략이었고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 애국심 호소였다는 결말에 이르면 ‘시진핑 시대의 중국 영화 맞아?’ 싶을 정도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영화는 지난해 상하이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가 상영 전날 “기술적 문제로” 취소됐다. 그러다 중국이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자화자찬할 시기에 극장에 걸려 대박을 터뜨렸다.

김원동 한중콘텐츠연구소 대표는 “‘800’은 체제 선전용인 주선율(主旋律)로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개봉 시기 그런 역할을 한 영화”라고 짚었다. 주선율 영화란 중국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고취시키고 정부 정책과 체제 옹호를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 지난달 국내 개봉된 코로나19 방역 영화 ‘최미역행’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전쟁영화는 보통 애국주의를 깔고 가는데, ‘800’은 미·중 무역전쟁이 악화하고 코로나19 등으로 국민의 애국 단결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관객의 영화 갈증과 맞물려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800’의 관후 감독은 10월 말엔 항미원조전쟁을 소재로 한 ‘금강천’으로 11월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항미원조전쟁이란 6·25전쟁을 중국이 부르는 이름이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교수(글로벌문화콘텐츠학)는 “시진핑 집권 이후 미디어·영화를 이데올로기 수단으로 ‘대국굴기’를 꾀하는 중국의 정책은 강화됐다”면서 “할리우드 및 한국과의 합작으로 제작·기술력을 따라잡은 중국이 계속 공격적인 영화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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