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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패럴림픽 4강으로 10년 프로젝트 마침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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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휠체어 농구 간판 이윤주가 그물을 자르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휠체어 농구 간판 이윤주가 그물을 자르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감독님이 하늘에서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서울시청 휠체어 농구팀 포워드 이윤주(36)는 고 한사현 감독을 떠올렸다. 시즌 도중인 9월 세상을 떠난 은사에 대한 고마움이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 이윤주 #서울시청의 리그 2연패 이끌어 #한사현 감독 영전에 우승 선물 #생전 꿈인 패럴림픽 선전 다짐

서울시청은 13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2020 휠체어 농구리그 챔피언 결정 3차전에서 제주도를 70-60으로 꺾었다. 시리즈 전적 2승 1패의 서울시청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정규시즌은 제주도에 밀려 2위에 그쳤지만, 기어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윤주는 3차전 승부처인 4쿼터에만 10점을 몰아쳤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운동량이 적었다. 3라운드는 아예 취소되기도 했다. 제주도가 워낙 전력이 좋아 우리끼리는 ‘마음 편하게 즐기자’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서울시청 선수단은 한마음으로 한사현 감독을 떠올렸다.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팀과 서울시청을 이끈 한 감독은 9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윤주는 “첫 우승인 지난해에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리그 시작과 동시에 병세가 악화해 감독님은 벤치를 지키지 못했다. 결국 1라운드가 끝난 뒤 돌아가셨다. 김영무 코치님과 선수들이 하나가 돼 감독님께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20 휠체어농구리그 제주도와 챔피언결정전에서 슛을 시도하는 서울시청 이윤주.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2020 휠체어농구리그 제주도와 챔피언결정전에서 슛을 시도하는 서울시청 이윤주.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한사현 감독은 한국 휠체어 농구의 역사 그 자체다.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1984년 운동을 시작한 한국 휠체어 농구 1세대다.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에도 출전했다. 선수 은퇴 후 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지난해에는 20년 만에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러나 코로나로 패럴림픽이 연기됐고, 병세 악화로 세상을 떠나면서 패럴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윤주에게 한 감독은 휠체어 농구를 소개해준 은인이다. 고교 시절 태권도 선수였던 이윤주는 군에서 차량 추락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었다. 전역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좌절하지 않고 장애를 극복했다. 2009년 국립재활원에서 휠체어 농구를 처음 접했다. 한 감독은 운동신경이 좋은 이윤주를 눈여겨봤고 선수의 길로 이끌었다.

이윤주는 “경기를 지켜보는데 가슴이 뛰었다. 다시는 그런 걸 못 느낄 거라 생각했는데. 선수까지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한 감독님이 계속 권유하셨다”고 전했다. 1년 만인 2010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금은 간판선수로 발돋움했다. 아들 도담(4)군이 가장 열렬한 팬이다. 이윤주는 “경기를 지면 ‘아빠, 왜 그렇게 못했어’라고 꾸짖고, 이기면 ‘잘했다’고 칭찬해준다”며 웃었다.

고 한사현 휠체어농구 감독.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고 한사현 휠체어농구 감독. [사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2010년 서울시청에서 뛰었던 이윤주는 고양 홀트로 팀을 옮겼다가, 2018년 서울시청으로 돌아왔다. 도쿄 패럴림픽에 집중하고 싶어서다. 고양에서는 바리스타로 일하며 농구를 병행했다. 수입은 줄어도 서울시청에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윤주는 “승부를 내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패럴림픽이 미뤄져 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패럴림픽을 향한 집념은 한사현 감독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윤주는 “국가대표가 처음 됐을 때 감독님이 ‘10년 프로젝트’를 얘기해줬다. 세계선수권(2014년 6위), 아시안게임(2014년 금, 2018년 동), 그리고 2020년 도쿄패럴림픽 4강까지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목표를 다 이뤘고, 패럴림픽 출전권까지 따냈다. 남은 건 4강이다. 대회가 열릴지, 안 열릴지 모르겠지만, 감독님이 지켜보실 테니 마침표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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