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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소라 먹으며 눈물 흘리며…2080 해녀와 딸들이 만든 제주도의 특별한 부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녀의 부엌' 공연에서 김하원 대표가 강인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관객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 공연에서 김하원 대표가 강인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관객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해녀의 부엌]

"엄마가 너 물질 나갈 때 늘 했던 말 기억하느냐"
"물 속에 드러가믈 숨 이실 때 나오랜 한 말을 기억허우다." (물 속에 들어가면 숨 있을 때 나와야 한다고 한 말을 기억해요.)
"아직까지 물질 하느냐"
"바당가고푸난감수께." (바다가 가고 싶어서 가고 있어요.)

제주 극장식 레스토랑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

어머니의 물음에 무대 앞으로 나온 해녀 권영희씨가 제주 사투리로 답한다. 20대에 남편을 잃고 5남매를 키워야 했던 해녀와 그 어머니를 따라 10살 때부터 해녀의 삶을 이어간 권씨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이다. 권씨는 89세, 제주 종달리에서 최고령 해녀다. 무대 위 어머니는 20대, 답하는 딸은 80대지만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권씨가 마치 실제 어머니를 만난 듯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일부 관객들은 눈시울을 닦기 시작했다. "요즘 어린 해녀들은 너무 편해. 고무로 된 해녀복도 입고, 남편이 차로 데려다주고…"라는 대목에선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11일 제주 구좌읍 종달리 '해녀의 부엌' 공연 중 일부다.

'해녀의 부엌'은  2019년 1월부터 운영되는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총 진행시간은 2시간 30분. 해녀의 삶을 다룬 30분가량의 단막극이 끝나면 현지에서 잡아올린 뿔소라, 군소, 전복, 우뭇가사리 등에 대한 해산물 이야기에 이어 이를 요리한 식사가 제공된다. 식사 후엔 관객과 해녀들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극장 겸 공연장인 건물은 종달리 어촌계가 사용하던 창고를 활용했다.
이 공연을 제작한 건 김하원(29) '해녀의 부엌' 대표다.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 출신인 김씨는 이곳 종달리에서 나고 자랐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마음을 바꿔 이곳에 눌러앉아 공연사업을 펼치게 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해녀의 부엌'의 김하원 대표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의 김하원 대표 [사진 해녀의 부엌]

-공연을 시작한 이유는?
=방학 때 잠깐 고향에 왔다가 해산물 가격이 급락해 해녀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뿔소라가 1kg에 2700원 정도에 팔린다는 것이다. 이건 20년 전과 가격 차이가 없다. 할버니, 고모, 큰어머니 등이 해녀인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너무나 속상했다. 어떻게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착안하게 됐다.

-공연·식사·관객과의 인터뷰라는 구성이 독특하다.
=처음에는 한예종 친구들과 축제나 영상전을 계획해봤는데, 현실을 바꾸려면 1회성으로 끝내선 안될 것 같았다. 해산물을 국내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지속적인 모델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해녀들의 수입에서 60%가량을 차지하는 뿔소라 시장을 창출하고, 판매로 연결하고 싶었다. 뿔소라는 1년에 2000t 가량이 생산되는데 80% 가까이 일본에 팔린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놓은 것이 지금의 공연이다.

'해녀의 부엌' 극장 외관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 극장 외관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 극장 내부. 코로나19 로 칸막이를 만들기 전이다.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 극장 내부. 코로나19 로 칸막이를 만들기 전이다. [사진 해녀의 부엌]

-함께 공연을 만드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해녀 7명과 9명의 스태프다. 권영희 할머니 외 해녀들은 70대다. 해녀들의 실제 삶을 이야기로 만든 네 편의 공연이 출연하는 해녀 스케줄에 따라서 돌아간다. 스태프는 한예종 친구도 있고, 공연을 진행하면서 모집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이런 공연을 연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가족들도 만류했다. 100마디 말보다 한 번 공연을 보여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만 공간을 빌려달라고 사정해 마을 분들을 모셔와 보여드렸다. 이전에 해녀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하며 만난 분에게 '이모, 우리 공연 한 번 만들어보자' 설득해 무대에 올렸다. 그게 2018년 5월이다.

-반응이 어땠나
=해녀들은 대부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자신의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움츠러든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이를 치유하고 '영웅'으로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너무 좋아하셨다. 어떤 분들은 '내 인생이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 내가 잘살아온 거네'라면서 오열하기도 했다. 이제는 무대에 서고 관객 만나는 걸 좋아하신다.

 해녀의 부엌에서 제공되는 음식 중 일부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에서 제공되는 음식 중 일부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에서 제공되는 음식 중 일부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에서 제공되는 음식 중 일부 [사진 해녀의 부엌]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도시의 청년을 시골로 데려와야 하는 것.(웃음) '해녀의 부엌'은 처음엔 나와 친구, 학교 선배, 이렇게 셋이 만들었다. 초기엔 한예종 친구들이 방학 때 놀러 오면 '한 달만 하고 가라'하는 식으로 해결했다. 그러다가 공연이 자리잡으면서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차량이나 집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간 제주도에 살아야 하니까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다.

-해녀들 수익엔 도움이 됐나
=공연이 알려지면서 제주도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뿔소라 kg당 5000원의 최저가보장제도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것보다 30% 더 얹어주고 공연 재료를 구매한다. 또 지난해엔 공연하고 음식을 만드는 해녀분들에게 인건비로 약 1억원이 지급됐다.100%는 해결은 아니지만 개선하는 데 도움은 됐다고 자부한다.

'해녀의 부엌' 중 권영희 할머니가 과거에 사용한 해녀복을 소개하는 장면. 유성운 기자

'해녀의 부엌' 중 권영희 할머니가 과거에 사용한 해녀복을 소개하는 장면. 유성운 기자

 해녀의 부엌의 식사시간 중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김하원 대표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의 식사시간 중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김하원 대표 [사진 해녀의 부엌]

-코로나 19로 타격은 없었나
=지난해 공연을 올리고 흐름이 좋았는데 코로나 19로 힘들어진 건 맞다. 올해 5개월 정도 운영을 중단했고, 쉬는 동안 공연을 재정비했다. 식탁엔 칸막이를 치고 뷔페식으로 제공되던 식사도 우리가 직접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공연당 42명까지 받던 정원은 30명으로 줄여야 했다. 공연은 매주 금·토·일오후 12시, 5시 30분에 열리는데, 다행히 거의 만석이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제주공항 근처에 2호점을 준비 중이다. 지금 공연보다는 조금 간소화 된 콘텐트를 만들고 싶다. 해녀가 등장해야 한다면 원거리 공연이 어렵기 때문에 이런 점도 고민하고 있다.

제주=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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