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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나이 들면 나만 옳다는 생각 버리라고? 천만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70)

오늘은 멀리서 오는 친구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미리 와 있던 지인과 함께 성에가 하얗게 낀 차를 덥혀 겨울 아침 길을 나선다. 대문을 열면 보이는 정류장에는 벌써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기다리는 어른이 보인다. 차창을 내려 인사만 하고 무심히 창을 올리는 나를 보며 너무 냉정하고 정이 없다며 동행한 지인이 나무란다.

“시장가는 길 같구먼, 동병상련으로 같이 늙어 가는데 좀 모셔다드리지.”

내가 사는 이곳은 시내에서 가깝지만, 버스는 하루 네다섯 번 정도 다닌다. 시골길을 달릴 때면 빨리 달리지도 않고 어르신이 타면 다 앉는 걸 확인하고 출발하는 시골버스를 나도 많이 애용한다. 요즘은 집집이 거의 차가 있지만, 정책에 부응해 우리 동네 나이 드신 어르신도 면허증을 많이 반납했다. 그래서 버스가 꼭 다녀야 한다. 가끔 이웃이 나가는 길에 차를 이용하려는 어른도 있다. 당연히 같은 코스 같은 목적으로 나갈 땐 함께 가면 좋다. 그러나 봉사하는 마음이라면 냉정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집집마다 거의 차가 있지만 정책에 부응하여 우리 동네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면허증을 많이 반납하셨다. 그래서 버스가 꼭 다녀야 한다. [사진 pixabay]

요즘은 집집마다 거의 차가 있지만 정책에 부응하여 우리 동네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면허증을 많이 반납하셨다. 그래서 버스가 꼭 다녀야 한다. [사진 pixabay]

시골에 처음 이사 갔을 땐 산길을 걸어 내려가시는 어른이나, 연로한 분이 버스정류장에 계시면 볼 일도 없이 차를 몰고 나와 선행을 베푼답시고 줄줄이 태워 시내로 모셔다드렸다. 그런데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걸 뒤따라오며 나를 목격한 버스 기사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시골버스는 어르신을 위한 버스인데 사용자가 없으면 버스노선은 점점 줄어들고 마지막엔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모진 가난을 겪으며 살아오신 알뜰한 어른은 1200원을 아낄 수 있으니 당연히 당신에게 기댈 것이고 안 태워 드리면 원망으로 돌아옵니다. 만약에 사고라도 나면 당신이 전적 책임이니 앞으로는 어르신을 위해서도 그러지 마세요. 그분에겐 그것이 운동이 될 수도 있답니다.”

정말로 얼마 후 동네 분을 태우고 시장을 가던 이웃이 언덕길에서 미끄러져 뒤에 타고 있던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고 그 이웃과  또 한 분은 크게 다쳤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같이 버스로 동행하긴 하지만 차를 태워 드리지는 않는다.

점심을 먹고 근방에 새로 개업한 산뜻한 분위기의 찻집에 가기로 했다. 가려고 한 찻집은 식당에서 직선으로 몇 km 안 되는 길이지만 큰 도로 길과 농로로 가면 더 가까운 두 갈래 길이 있다. 새로 개업한 곳이라 그런가? 내비게이션에 상가 이름을 입력하니 길 찾기가 안 나온다. 지인은 지리를 잘 아는 우리가 앞장서고 뒤차를 따라서 오라 한다.

나는 다시 손짓으로 위치를 알려주며 요리조리 한참을 설명하고 알아서 찾아오라고 했다. 비로소 운전대에 앉으니 지인이 나에게 융통성까지 없고 갑갑한 성격이라며 또 핀잔을 준다. 아침부터 바가지를 긁어대는 지인을 보며 ‘흐흐’ 웃음으로 웃어넘긴다.

나는 눈길 생각은 전혀 없이 앞차의 꽁무니가 보이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빨리 달렸다. 순간 핸들이 제 맘 데로 돌아가더니 벼랑 끝 바위에 쿵 부딪쳤다. [사진 pixnio]

나는 눈길 생각은 전혀 없이 앞차의 꽁무니가 보이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빨리 달렸다. 순간 핸들이 제 맘 데로 돌아가더니 벼랑 끝 바위에 쿵 부딪쳤다. [사진 pixnio]

이전에는 가끔 모르는 길을 찾아갈 때 지리에 해박한 차를 앞세우고 따라가던 때도 있었다. 길에 서툴고 내비게이션이 비싸 장착할 엄두를 못 낸 시절이라 그랬다. 남편의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시골이라 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을 하던 초보 시절, 그날도 트럭에 바싹 마른 개똥쑥 다발을 가득 싣고 약초 상에 갖다 주니 7만원이나 준다. 겨울철 용돈 벌이가 초보운전에 용기를 주었지만 돌아갈 길이 구만리 같았다. 마침 볼일 보러 나온 이웃 한 분이 혼자 차를 몰고 첫 장에 온 나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제차만 보고 따라서 오세요.”

그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하필이면 어스름한 오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트럭 꽁무니를 졸졸 따라서 가는 길, 마지막 고개에서 길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훗날 그것이 블랙 아이스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령과 경력이 있는 앞차는 잘 넘어갔다. 나는 눈길 생각은 전혀 없이 앞차의 꽁무니가 보이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빨리 달렸다. 순간 핸들이 제 맘대로 돌아가더니 벼랑 끝 바위에 쿵 부딪혔다. 다시 뒤로 미끄러지면서 한 바퀴 휙 돌아 가드레일에 철컥 걸리며 섰다.

휴대폰은 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도 않고 산골길이라 지나가는 차도 없어 잠시 방치되었는데,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던 앞선 차가 한참을 가도 뒤따라오지 않자 혹시나 하고 돌아서 왔다. 정비소에서 견인차가 오고 그날 나는 병원으로 후송되어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7만원을 벌어 의기양양하게 귀가하던 트럭은 두 동강이 나 그날 폐차되었다. 그때 걱정하던 남편보다 더 미안했고, 미안해하던 분이 친절을 베풀며 앞서가던 차주였다. 그 이후로 아무리 가까운 동네 길이라도 앞차를 동행하며 따라가는 일은 없었다.

나이 들면 내 생각이 바르고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어느 책에서 말했다. 그러나 거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면 문제없다. ‘내 방식대로 살되 남의 생각도 경청해 주는 것’. 누가 뭐라든 내 삶은 온갖 경험으로 만든 내 방식대로 살면 된다. 창밖엔 첫눈이 내리고 카톡이 울린다. ‘I did it my way’ 음악이다. 멋진 배경 음악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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