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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공포영화’ 장면 같았다···울산 뒤덮은 10만 떼까마귀

중앙일보

입력

울산 태화강변 삼호대숲에 찾아든 떼까마귀.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찾아온 철새다.

울산 태화강변 삼호대숲에 찾아든 떼까마귀.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찾아온 철새다.

해가 내려앉고 땅거미가 젖어 드는 시간. 울산 태화강은 ‘까~까~’ 울어대는 소리로 천지가 요동쳤다. 지난 2일 태화강변 대나무 숲에서 대규모 까마귀 떼를 만났다. 오후 5시 무렵 수백 마리가 날아들기 시작해, 해 질 녘 아예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다. 처음 본 이에겐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 ‘새(1963)’에서 마을을 습격하는 까마귀 떼보다 규모가 커 보였다.

이 까마귀 떼의 정체는 ‘떼까마귀’다. 허보경 울산 문화관광해설사가 알려 줬다. 허 해설사는 “잠자리를 찾아 매일 해 질 무렵 태화강변을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떼까마귀는 겨울 철새다. 주로 시베리아와 몽골 초원에 서식하는데, 2000년 무렵부터 울산에서 월동하고 있단다. 그 규모가 대략 10만 마리에 이른다.

떼까마귀는 몸집이 작다. 깃을 빼면 어른 손바닥 크기에 불과하다. 얼핏 질서없이 하늘을 배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름처럼 수백 마리씩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유가 있다. 수리부엉이‧새매‧황조롱이 따위의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해가 있는 동안은 울산 울주군 일대 농경지에서 떨어진 낱알을 먹으며 활동하다가, 일몰 즈음 태화강 삼호대숲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숲에 들 때도 바로 내려앉는 법이 없다. 수백 마리씩 무리 지어 비행하며 때를 보다가, 해가 완전히 내려가면 포식자를 피해 숲으로 파고든다. 울산 철새홍보관 김성수 관장은 “떼까마귀가 매년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울산의 생태환경이 건강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떼까마귀는 해가 어둑히 내려앉는 시간이 되면 하늘을 뒤덮을 만큼 그 수가 많아진다.

떼까마귀는 해가 어둑히 내려앉는 시간이 되면 하늘을 뒤덮을 만큼 그 수가 많아진다.

떼까마귀는 울산 말고도 전북 김제, 경기도 수원 등지에서 관찰할 수 있다. 떼까마귀의 배설물과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일부 지역과 달리 울산은 피해 민원이 적은 편이다. 떼까마귀가 인적이 드문 강변과 대나무 숲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불쾌하다거나 더럽다는 편견도 있지만, 아직 조류독감 발생 사례는 없다”며 “되레 까마귀 떼 군무를 보기 울산을 찾는 관광객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떼까마귀의 군무는 겨우내 펼쳐진다. 이맘때는 오후 5시 무렵 출몰해 30~40분가량 군무를 벌인다. 울산 태화강 둔치공원과 철새광장, 태화십리대밭 먹거리 단지 인근 산책로, 철새홍보관 옥외 전망대 등이 떼까마귀를 관찰하기에 좋은 장소다. 자칫 새똥을 맞을 수도 있으니 모자를 챙기길 권한다. 4월이 되면 하나둘 시베리아나 몽골로 돌아간다.

울산=글‧사진‧영상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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