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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전기작가의 길을 연 이충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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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 이충렬 전기작가

권혁재의 사람사진 / 이충렬 전기작가

올해 ‘혜곡최순우상’ 수상자는 이충렬 전기작가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켰던 혜곡 선생 뜻을 계승하였다 하여 수상한 게다.
이는 전기작가가 문화계에서 받은 최초의 상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이 작가 전엔 전기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전형필, 최순우, 김환기, 김수환, 백충현,
권정생, 김홍도의 전기를 냈다.
이래서 그를 한국 전기문학 개척자, 1세대 작가라 일컫기도 한다.
전기문학 개척자로 인정을 받지만, 그의 삶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가족이 단돈 3000달러를 들고 이민을 떠난 게 1976년이다.
아버지 사업 실패 탓에 그가 대학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LA에서 봉제·상점·부동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다시 망해 1993년 5000달러를 들고 애리조나주로 갔다.
멕시코 국경 작은 도시 노갈레스에서 잡화 가게를 냈다.
밤과 낮으로 바쁘게 일하며 살아내야만 하는 생활, 자괴감이 컸다.
현지 문인들과 만나며 잊었던 문학 DNA를 발견했다.
시시때때로 수필·소설을 쓰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급기야 1994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때부터 한국 내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짬 나는 대로 책만 읽었다. 읽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책을 읽은 지 10년, 머릿속에서 한 인물의 스토리텔링이 그려졌다.
바로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삶이었다. 비로소 ‘사람 이야기의 길’을 만난 게다.
2018년, 그를 만나 사진 찍으며 쓴 모자를 들어보라고 했다.
먼저 원형탈모가 눈에 띄었다. 여태 본 중 가장 심하디심한 원형탈모였다.
그가 원형탈모 된 머리 여기저기를 외려 보여 주며 당당하게 말했다.
“한 권 한 권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그간 심장마비가 세 번 왔고 스텐트 6개를 끼고 삽니다.
남은 삶은 덤이니 10권까지 쓰는 게 소망입니다.”
그 소망처럼 그는 오늘 현재 이태석 신부의 삶을 갈무리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