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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폭주하는 정치와 하명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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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용감하다. 앞뒤 가리지 않는 무모함은 덤이다. 말 그대로 폭주한다. 한때 다른 무리(黨)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말도 들었다. 웬걸, 반대의견은 고사하고 전문가의 말조차 아예 안 듣는다. 자기 사람만 챙기는 패거리 문화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대놓고 챙긴다. 잘못이 드러나기라도 하면 졸지에 사실이 소설이 된다. 진실을 밝히려 들면 숙청의 칼날을 들이민다. 내 돈이 아니라며 나랏돈을 펑펑 쓴다. 떠나는 민심을 붙잡으려 민초의 호주머니를 터는 격이다.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훼손 비판 #견제 안 통하는 권력 향한 한탄 #상식 역행 않는 이성을 되찾아야

호용불호학 기폐야란(好勇不好學 其蔽也亂). 용감하기를 좋아하면서 배우려 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해지는 것이다. 호신불호학 기폐야적(好信不好學 其蔽也賊). 신의를 좋아한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도적과 같은 신념이 된다.(논어) 누군가, 어느 무리엔가 딱 들어맞는 듯하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성현의 가르침에 숙연하게 곱씹기보다 헛웃음이 먼저 난다.

2020년 12월은 역으로 민주주의를 새삼 배운 달이다.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믿고 민주주의를 기대하면 낭패를 본다는 사실 말이다. 민주주의에선 제도와 절차가 생명이다. 그걸 통해 권좌를 통제·견제하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말이나 권력을 쥔 파벌의 욕심이 법칙인 양 둔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제도와 절차가 일방의 힘에 의해 깡그리 바뀌었다.

공수처법, 경제3법, 노조3법, 국가정보원법, 대북전단법 등 청와대 하명과 더불어민주당의 독주 속에 탄생하거나 개정된 이 법들치고 어느 것 하나 논란이 안 되는 게 없다. 국가 경제를 위협하고, 틀어쥔 권세를 지킬 사수를 키우고, 인권의 보호막을 걷어낸다는 비판이 거세다. 오죽하면 선진국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난까지 나오는 판이다. 민주화 운동을 발판으로 집권한 세력이 버틴 대한민국에 대해서 말이다.

서소문 포럼 12/16

서소문 포럼 12/16

이만큼 공격받으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그래서일까. 슬금슬금 폭주의 논리를 대기 시작했다. 한데 뜯어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다.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질끈 눈 감고 싶은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저 검찰 개혁, 공정 등 자기 필요에 따라 적용 논리가 수없이 달라졌던 몽환적, 확증편향형 용어만 난무해서다. 똑 부러지게 고개를 끄덕일만한 논거나 반성은 찾기 힘들다.

노조 관련 법만 해도 그렇다. 고용노동부의 자평은 이랬다. “노사 양측의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했다.” 기업에서 “어디를 봐서”라는 분노 섞인 항변이 쏟아졌다. 화낼 만한 이유가 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정부는 당초 국회에 개정안을 낼 때 비종사 조합원(해고자나 실직자)의 사업장 출입 절차와 방법을 담았다. 법 운용의 투명성과 명확성을 위해서였다. 어찌 된 일인지 국회 처리 과정에서 고용부가 자진 삭제했다. 비판이 일자 고용부가 내놓은 해명은 가관이다. “비종사 조합원이 노조활동을 할 때는 사용자의 효율적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원칙을 명시했다”는 거다. 효율적 사업운영의 판단 기준이 뭔가. 각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갈등은 효율적 사업운영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고용부가 과연 답할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원칙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방법과 절차가 필요한 거다. 이게 없으면 혼란이 인다. 통상임금이나 전교조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과 혼선도 법에 절차나 방법이 명시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법 대신 시행령으로 행정 집행을 하다 문제가 됐다. 얼마 되지도 않은 일이다. 고용부가 “원칙을 명시했다”고 강변하는 건 어쩌면 이걸 벌써 잊었다는 얘기로 들려서 개운치 않다. 정부 부처의 존재가치를 의심케 하는 해명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판례로 (절차 등을) 형성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노사관계에선 자율과 조정이 우선이다. 고용부의 역할은 여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판례를 들먹이는 건 법적 다툼을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얘기이자 부처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듯한 태도다.

어디 고용부만 이렇겠는가. 다른 부처도 매한가지다. 공직자 상당수는 전문가 못잖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왜 정책은 하명에 길든 것만 나오는 걸까. 그 폐해가 국가 경제를 헤집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날씨가 더워야 야자수가 자란다. 추운데 야자수를 심자고 덤비면 클 수 있겠는가. 정부와 정치권이 이 상식에 부합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특히 정부 부처의 이성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