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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북한의 선의 기대 말고, 지켜야 할 선 알려줘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북한에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구조 못하고 정보자산만 노출돼 아쉬움
서해평화수역보다 우리 군의 전쟁 억제력 확보와 북핵 폐기 우선돼야

이기식 전 해군 작전사령관(중장)은 9월 22일 발생한 해수부 공무원 북한 피살 사건을 “우리 정부가 최악의 상황은 막을 기회가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이기식 전 해군 작전사령관(중장)은 9월 22일 발생한 해수부 공무원 북한 피살 사건을 “우리 정부가 최악의 상황은 막을 기회가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2020년 한 해 남북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019년 북·미정상회담으로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는가 싶더니 올해 들어 북한의 태도가 돌변했다. 남측에 대한 비난 수위를 점점 높이다가 급기야 지난 6월, 개성에 우리 돈으로 건립한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9월 22일에는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을 북한군이 총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의 연이은 돌발행동은 앞으로도 순탄치 않을 남북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더욱이 미국 대선이 민주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미국과 새로운 관계 설정을 모색해야 하는 북한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슈 인터뷰] 이기식 전 해군 작전사령관

이기식 전 해군 작전사령관을 만나 긴장감 높아지는 한반도 정세에 관한 전망을 물었다. 이 전 사령관은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부장, 제2함대 사령관, 합참 작전2처장 등 야전과 정보작전 실무를 두루 경험했다. 천안함 사건 때는 합참정보작전처장으로 대변인 역할도 했다. 북한의 도발 전술을 꿰뚫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2016년에 중장으로 예편한 뒤 지금은 한국해양대 초빙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11월 13일 서울시 중구 서소문의 월간중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방지책, 북·미 관계 전망 등에 관해 냉철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을 먼저 언급했다.

북한군이 우리 민간인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데 온 국민이 경악했다.

“국제법상 난민은 보호하게 돼 있다. 우선 받아주고 인도적 차원에서 조처해야 한다. 비무장한 민간인을 총 쏘고 불태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유엔도 이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문제 삼는 거다.”

세간의 관심은 피살된 공무원 이씨가 스스로 월북했느냐에 쏠려 있다. 실은 궁금하기도 하다.

“그가 월북했는지를 판단하긴 어렵다. 실종 시간이나 복장, 지참 물품에 따라 분석이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해류와 조류 흐름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월북 여부로 논쟁을 몰아가는 건 정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게 한다. 중요한 건 우리 국민이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거다.”

정부 발표로는 피살되기 전까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정부 대응은 적절했다고 보나?

“아쉽다. 당국은 통신망이 단절됐다고 하지만, 우리 의사를 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선박끼리 사용하는 공통 주파수로 연락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쪽에서 대답을 안 할 뿐이지 다 듣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걸 북한에 전달했다면, 저들이 함부로 죽이진 못했을 거다.”

우리 군이 확보한 특수정보(SI)가 노출될 수 있다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결국 군 당국이 SI로 수집한 상황을 발표했잖나. 이왕 발표할 거면 좀 더 빨리 북한에 시그널만 줬어도 저들이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았을까. 경각에 달린 국민의 목숨을 구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아야 했다.”

“월북보다 중요한 건 우리 국민이 죽은 것”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근무자들이 바다에 꽃을 던지며 9월 22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동료를 추모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근무자들이 바다에 꽃을 던지며 9월 22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동료를 추모하고 있다.

정부는 심야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긴급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지만,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해야 할 사안은 아니었던 건가?

“지금의 청와대 매뉴얼이 어떤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우리 국민이 북한에 표류했을 때 즉각 보고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청해부대가 있는 아덴만에서 우리 국민이 해적들에게 나포됐다면, 즉시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다. 하물며 국민이 북한에서 사살당하고 소각까지 했다는데 대통령에게 보고도 안 하고 아무런 실질적인 대응조차 안 했다는 건 납득하기가 어렵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은 못 구하고, SI만 노출됐다.

“군의 정보자산이 여과 없이 공개되는 건 문제 있다. 너무 많이 공개된다.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알리지 않아야 득이 되는 것도 있다. SI에는 미군 자산도 있다. 이건 끝까지 지켜줬어야 한다. 안보 문제를 자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니 문제가 생긴다.”

이 전 사령관은 2011년부터 2년간 서해를 관할하는 해군 2함대 사령관을 지냈다. 서해의 남북 대치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연평도에서 해수부 공무원이 피살된 북한 등산곶까지는 직선거리로 30㎞가 넘는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해수부 공무원 이씨의 실종지점인 소연평도 인근 해상과의 거리는 40㎞였다. 정부는 이씨가 스스로 월북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의 월북 발표를 얼마나 신뢰하나?

“바다에서 표류하면 해류와 조류, 바람의 영향이 가장 크다. 헤엄쳐 넘어갔다고 보긴 물리적으로 어렵다. 무언가에 타고 있었다면 헤엄치긴 더 어렵다. 그래서 ‘월북’이란 단어 대신 ‘표류’란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정부도 ‘북쪽으로 흘러갔다’고 하는 게 가장 적절한 답변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번 사건을 의도가 있는 도발이라고 보나?

“그렇지 않다. 피살자가 넘어가게 된 것도 우발적이고, 사살한 것도 사전에 계획된 건 아니다. 과거의 도발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전 사령관은 북한이 치밀하게 계획한 도발의 예로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들었다. “시나리오에 의해서 김여정이 주도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며 우리 정부를 압박한 것”이라고 이 전 사령관은 분석했다. 그는 “대선을 끝낸 미국에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뭔가?

“바이든 당선인은 북한의 비핵화를 줄곧 주장해왔다. 트럼프처럼 즉흥적으로 정상끼리 만나는 일은 없을 거다. 트럼프는 톱다운(하향식), 바이든은 바텀업(상향식)이라고 하지 않나.”

예상할 수 있는 도발의 종류는 뭐가 있을까.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 열병식에 새 ICBM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신형 무기가 여럿 나왔다. 새로 개발했으니 시험사격을 해봐야 하지 않나. 시험을 겸해 미사일로 무력시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도발한다면 그 시기는?

“첫 시기는 트럼프가 선거에 불복해 미국이 혼란스러운 지금이다. 둘째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1월)과 한·미연합훈련(3월)이 있는 내년 초쯤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낸 이후가 될지도 모른다. 언제라고 콕 짚어 말하긴 어렵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한·미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바이든은 동맹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우리 정부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우린 동맹을 복원할 테니 너희(한국)도 우리 대외 정책에 협조해라’는 식이 될 텐데, 결국 한·중 문제로 귀결된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이렇게 줄타기해온 게 어려워진 거다.”

전쟁 억제 위해 경항모·핵잠수함 도입 필요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6. / 사진:평양 노동신문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6. / 사진:평양 노동신문

바이든 당선인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선 한국을 ‘린치핀’이라고도 했다.

“린치핀이라는 건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이라는 거다.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어떡하나?

“우리가 미국의 전략에 핵심축으로 참여하면 중국도 힘들어진다. 한국과 중국은 이명박 정부 때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중국과 가까워지면 북한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데 잘못됐다. 한·중 관계와 ‘조·중 관계’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중국과 북한이 맺은 조·중우호조약은 북한이 전쟁하게 되면, 중국이 자동 개입하게 돼 있다. 우리가 미국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이 정도는 아니다. 한·미방위조약은 유사시 각자의 헌법 절차에 따르게 돼 있다. 즉 의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중국은 무조건 개입이다. 게다가 조·중우호조약은 영구적이다. 중국이 우리 편을 들어주는 건, 조·중우호조약 개정이나 폐기를 선행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최대 교역국인 중국 눈치를 안 볼 수도 없잖나?

“경제도 중요하지만, 안보가 튼튼히 갖춰진 상태에서 경제가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생존권 측면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과의 동맹도 중요하지만, 안보의 핵심은 우리 스스로 전쟁을 억제할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특히 서해는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는 한반도의 화약고다. 최근 들어 해군 전력 증강을 위한 이지스 전투체계와 소형 항공모함(경항모), 핵잠수함 개발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우리나라 해역에 경항모가 필요한가?

“해군 무기체계는 몇 년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한이란 현존 위협이 있지만, 예상되는 잠재 위협까지 고려하면 경항모는 필요한 자산이다. 지금부터 해도 2030년은 돼야 띄울 수 있을 거다.”

1차 위협인 북한을 상대할 때 경항모가 어떤 역할을 하나?

“우선 상륙작전 능력이 훨씬 강해진다. 상륙하려면 공군기가 지원해줘야 하는데 급유 문제나 재무장 문제가 제약 요소다. 경항모가 상륙지점과 근접한 해상에 있다면 공중지원 능력이 향상된다. 평시에는 해외에서 비전투적인 대민작전이나 세계 평화 유지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경항모 도입이 북한을 비롯해 한반도 주변국들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우리가 군비 경쟁을 촉발하는 게 아니라 주변국이 우리로 하여금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거다. 중국은 이미 항공모함이 여러 척 있고, 일본도 항모급 크기의 이즈모함을 5년 전 취역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은 거다.”

핵잠수함은 왜 필요한가?

“잠수함의 생명력은 은밀성이다. 디젤 추진 잠수함은 주기적으로 수면에 올라와 스노클링(축전지 충전을 위해 외부 공기를 흡입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이때가 가장 취약하다. 핵추진 잠수함은 이론적으로 무한 잠항이 가능하다.”

남북한의 잠수함 전력 차가 있나?

“우리 해군 성능이 북한보다 훨씬 낫다. 다만 SLBM이 위협적이긴 한데, 아직 시험 단계일 뿐 전력화는 안 됐다. 만약 우리 군이 이지스 체계와 핵잠을 확보하면 북한의 SLBM 위협을 크게 억제할 수 있게 된다.”

좋은 무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북 간 무력충돌을 최대한 예방하는 장치를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맞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한 승리다.”

북핵 포기하기 전에는 평화체제 구축 요원

해군 전력 증강을 위한 경항공모함 도입 여론이 높아지면서 해군이 제작한 3만t급 경항모 모형. / 사진:해군

해군 전력 증강을 위한 경항공모함 도입 여론이 높아지면서 해군이 제작한 3만t급 경항모 모형. / 사진:해군

그런 점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수역 설정과 같은 충돌 방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건 아쉽다.

“평화수역 만들자고 합의는 했지만, 어떻게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도 안 열리고 있다. 게다가 평화수역은 우리한테 굉장히 불리한 방식이다.”

왜 우리가 불리한가?

“NLL을 기준으로 남북의 항해밀도 차이가 크다. 우린 그쪽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데 북한은 해주, 장산곶 등을 오가는 뱃길이 NLL과 밀접하게 붙어 있다. [NLL은 황해도 옹진반도 연안을 둘러싼 형태로 설정돼 있다.] 만약 공동어로구역을 지금까지 나온 주장대로 설정하면 연평도 쪽으로 우리가 상당부분 양보하게 된다. 더 나아가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 군사분계선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마저 있다.”

이 전 사령관은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또 다른 문제도 있다”고 했다.

“서해 연안의 북한 어선은 대부분 군에서 운영한다. 북한군은 현지에서 조달하는 자급자족 방식이다. 북한 군인들이 탄 어선이 공동어로구역에서 활동하면 어떻게 할 건가. 이런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이걸 일일이 협상을 통해 조정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거다.”

말 잔치로 끝날 수 있다고 보나?

“정부 의지대로 가긴 어려울 거다. 제일 안타까운 건 우리가 북한에 끌려다니는 듯한 이미지가 자꾸 연출되는 점이다. 대통령을 모욕하는 상스러운 말을 듣고,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아무 소리도 못했다. 대화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한 조처는 단호해야 한다. 남북 간에 체결한 여러 합의를 우린 다 지켰는데, 북한은 뭘 지켰나.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다. 북한은 우리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의 희망을 놓지 않는 분위기다.

“한반도 정전협정 당사자는 유엔군사령관, 북한, 중국 이 셋이다. 한국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다. 종전선언 이전에 남북협력관계가 확실히 구축돼야 협정 당사자들도 종전협정을 고려하지 않겠나. 지금처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상황이라면 종전선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에는 또 다른 위험도 있다.”

다른 위험은 뭔가?

“북한의 전술에 휘말릴 가능성이다. 종전협정이 체결되면 유엔군사령부가 필요 없어진다. 유엔군사령부가 나가고 나면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이어질 거다. 북한의 적화 전략이 되돌릴 수 없게 폐기되지 않는 이상 안보 리스크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남북관계에 희망은 없는 건가?

“지금 상황은 희망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답보상태를 타개할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나는 북한의 비핵화라고 본다. 그래야 한반도 평화 실현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 다만 김정은 입장에서 핵 포기를 결단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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