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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사과에 "여권 독주와 대비" vs "맞고선 배알도 없이…"

중앙일보

입력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법처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보수 정당 대표급 인사가 두 전직 대통령 문제로 공식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1164자(A4지 4장 분량) 사과문은 ‘사죄·사과·반성·용서’라는 단어가 10차례 등장하는 반성문 성격이었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당사자가 아닌데 왜 사과하나"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한 절충안으로 해석됐다.

이날 오전 11시 당 비대위원장실(국회 228호) 연단에 선 김 위원장은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구속 상태에 있게 된 것과 관련해 국민에게 간절한 사죄의 말씀을 드리려고 이 자리에 섰다”고 입을 뗐다. 이어 떨리는 목소리로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라며 “당시 집권 여당으로서 국가를 잘 이끌어가라는 책무를 다하지 못했으며, 통치 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리에 연연하며 야합했고, 역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지혜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위기 앞에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했다”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4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당의 모습에 대해서도 “국민을 하늘처럼 두려워하며 공구수성(恐懼修省·몹시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함)의 자세로 자숙해야 마땅했으나, 반성과 성찰의 마음가짐 또한 부족했다”며 “그런 구태의연함에 국민 여러분께서 느끼셨을 커다란 실망감에 대해서도 고개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탄핵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더욱 성숙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는데, 민주와 법치가 오히려 퇴행한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낀다”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김 위원장은 “헌정사의 모든 대통령이 불행한 일을 겪었다”며 “외국으로 쫓겨나거나(이승만), 측근의 총탄에 맞거나(박정희),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서거나(전두환·노태우), 일가친척이 줄줄이 감옥에 가거나(김영삼·김대중), 극단적인 선택(노무현)을 하는 등 어떤 대통령도 온전히 끝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두 전직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돼 있다. 국가적으로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오종택 기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오종택 기자

이어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며 “과거의 잘못과 허물에 통렬히 반성하며,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 쇄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몇 번의 선거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저희 당에 준엄한 심판의 회초리를 들어주셨다”며 “이 작은 사죄의 말씀이 국민 여러분의 가슴에 맺힌 오랜 응어리를 온전히 풀어드릴 수는 없겠지만,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고개 숙인다”고 했다. 그는 “저희가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 용서를 구한다”고 끝맺은 뒤 별도 질의·응답 없이 자리를 떴다.

사과 직후 당내 평가는 엇갈렸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김 위원장의 긴급 기자회견에 동행해 공감을 표했고, 당 최대선(5선)인 정진석 의원은 “진솔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 앞에 다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원희룡), “작지만 의미 있는 걸음”(김기현) 등 평가가 나왔다. 당 핵심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와 호남 서진(西進) 정책에 이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거사 청산까지, 김 위원장이 중도층을 겨냥한 일관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오늘 대국민 사과는 입법 독주 중인 민주당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고 말했다.

홍준표(왼쪽) 무소속 의원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뉴스1

홍준표(왼쪽) 무소속 의원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뉴스1

반발도 컸다. “자성이라기보다는 자학에 가까웠다”는 격한 반응도 나왔다. 서병수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 등을 언급하며 “가혹한 수사 활극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발뺌하거나 순교자 반열에 올려놓는 게 좌파의 작태인데 우리는 권력을 농단했느니 재단해 버리면 어쩌느냐”고 지적했다. 이재오 상임고문도 페이스북에 “없는 죄를 이 전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웠다”고 했고, 김영우 전 의원도 “(김종인) 본인의 과거 과오도 솔직하게 사죄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홍준표(무소속)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실컷 두들겨 맞고, 맞은 놈이 팬 놈에게 사과한다. 이런 배알도 없는 야당은 처음 본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현일훈·김기정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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