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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중앙노동위도 "카카오, 대리기사와 교섭해야"…'긱 워커 노조' 확산되나

중앙일보

입력

다양한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긱 워커(Gig-Worker)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플랫폼을 상대로 파업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플랫폼 종사자인 대리기사의 경우 '노조 활동이 가능하다'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카카오모빌리티를 비롯해 타다·우버·SK텔레콤 등 격전 중인 모빌리티 플랫폼 사이에서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무슨 일이야?

대리운전노조, 카카오모빌리티 즉각 단체교섭 촉구. 연합뉴스

대리운전노조, 카카오모빌리티 즉각 단체교섭 촉구. 연합뉴스

전국대리운전노조(대리노조)는 카카오T대리 운영사 카카오모빌리티(카모)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 중이다. 카모는 “우리가 ‘사용자’인지 행정·사법당국 판단이 필요하다”며 거부했지만 행정당국은 잇달아 “카모는 사용자가 맞다”고 봤다.

· 고용노동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지난 10월 대리노조가 “카모는 교섭요구에 응하라”며 낸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에 대해 인정 결정했다. 카모는 2심격인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 중노위는 최근 이 사건에 대해 ‘초심유지’로 판정했다. 결정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절차에 참여한 한 노조 관계자는 “지노위나 중노위 모두 일관되게 대리기사도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게 노동3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게 왜 중요해

‘대리운전’ 중개는 국내 모빌리티 플랫폼의 대표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카모는 택시로 돈을 벌기 전 대리로 2017년과 2018년 각각 167억원, 53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카모의 성공을 지켜본 후발 플랫폼 업체들은 앞다퉈 대리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즉 카모 대리기사의 법률적 지위에 대한 판단이 향후 모빌리티 업계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

· VCNC는 지난 10월 ‘타다 대리’를 시작. 1000명에서 시작한 대리기사는 한달 반만에 수만 명 수준으로 늘었다. 호출 수행 건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중.
· SK텔레콤에서 분사해 오는 29일 출범하는 티맵모빌리티도 ‘1호 사업’으로 대리를 구상 중이다. SK텔레콤 내 사업부일 때와는 달리, 실적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대리만한 사업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대리운전산업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 대리운전산업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카모가 교섭을 거부하는 이유

핵심쟁점은 대리기사가 노동조합법(노조법)상 근로자인지와 카모가 이들의 사용자인지다. 노조법상 근로자는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받는다. 카모는 대리기사들이 여러 중개 플랫폼을 이용하므로 카모에 대한 전속성이 떨어져 근로자로 볼 수 없다 주장했다.

· 지난달 공개된 지노위 결정서에 따르면 올해 5월 31일 기준 카카오T대리 활성 기사(언제든지 앱을 켜면 대리운전 의뢰를 받을 수 있는 사람)는 15만3407명. 하지만 이들 중 5월에 한 건 이상 대리운전을 한 사람은 5만866명이다. 카모는 “대다수 대리기사는 앱에 가입만 했을 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카모는 또 실제 대리운전하는 기사 대부분이 여러 앱에서 일감을 받고 있어 전속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노조가 제시한 자료가 그 근거다. 대리기사 노조에 따르면, 전업 대리기사가 월 25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약 175만~180만원의 보수를 받는다. 카모는 카카오T대리에서 월 18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린 기사는 활성기사 중 3%1527명이라고 설명한다. 즉 다른 앱을 통해 소득을 얻는 기사가 많다는 얘기. 카모에 대한 소득의존도가 낮다는 주장이다. 카모는 “조합원 중 일부는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 해도, 상당수는 전속성·소득의존성을 통해 볼 때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교섭해야 한다고 본 이유

카카오모빌리티의 대리기사 중개 플랫폼 카카오T대리 소개 화면. [사진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모빌리티의 대리기사 중개 플랫폼 카카오T대리 소개 화면. [사진 카카오모빌리티]

지노위 결정서의 핵심 논리는 ‘노동3권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대리기사는 노동조건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한 기업이 아닌 산업·직종·지역별 노조,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 노동에 대해선 기업 중심의 기존 노조와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 대리기사가 다른 앱을 함께 쓴다는 주장에 대해, 지노위는 대리기사의 특수한 근로 형태를 언급했다. 결정서는 “다양한 근로시간 및 고용형태가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여러 개 파트타임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특정 사업주와의 관계만으로 한정해 전속성을 해석하면 불합리한 결과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 앱 등록만 했을 뿐 잘 사용하지 않는 대리기사에 대해서도, 지노위는 “언제든지 앱을 쓸 수 있는 일시적 실업상태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 법조계에선 이번 지노위·중노위 결정이 노조법상 근로자의 범위를 상당히 유연하게 봤다고 평가한다. 국내 대형로펌 노동전문 변호사는 “대리기사는 학습지 교사 등 다른 특수고용직과 비교해도 플랫폼에 대한 전속성, 소득의존도가 낮다”며 “그런 대리기사도 노동3권을 인정해 보호해야한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 노동3권을 보장해 종사자를 보호하려는 경향은 다른 플랫폼으로도 확산 중이다. 지난 10월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안 포럼’이 우아한형제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등과 체결한 협약에도 배달기사의 노동3권을 보장한 내용이 담겼다. 14일 고용노동부 역시 ‘산재보험 적용시 전속성 기준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앞으로는?

당장 카카오 모빌리티와 대리기사노조 간 교섭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 카모는 중노위 결정서를 검토한 뒤 행정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카모 관계자는 “구체적 이유가 기재된 결정서 정본을 받은 후 내용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노동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 노동이 활성화되면서 이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집단적 저항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노동위원회, 하급심 법원 중심으로 형성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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