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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욕심과 아집이 시대정신 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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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가난한 아희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김종삼의 ‘북 치는 소년’)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자원봉사 #참척에도 이웃 도운 구상 시인 #남을 위할 때 인간은 강해진다

눈은 내려 금방 녹고 코로나19의 하루 확진자는 천명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환난 속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평소 생활에 바빴던 사람들도 모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는 소중한 계절입니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얼어붙은 올해 사랑의 온도탑도 사상 최저를 기록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연탄 지원, 의료 봉사 활동이 자취를 감추고 무료급식소도 상당수가 중단됐습니다. 그동안 자원봉사에 공이 크던 시민단체와 기업들도 움츠러들었습니다. 세상이 어려우면 더 어려워지는 게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이 추위와 배고픔입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늘어갑니다.

고등학교 동기들의 단톡방에 긴급을 알리는 문자가 떴습니다. 성남 ‘안나의 집’에 자원봉사하는 친구가 올린 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의 식수 인원이 지난해 450명이었는데 지금은 85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키 작은 이탈리아 신부님이 이 비용을 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알림이었습니다. 일선에서 떠난 우리들 사정도 예년보다 좋을 리는 없겠지만 가능한 동기들은 쌀 한 포대 정도의 기부금을 보내달라는 얘기였습니다.

이 글이 뜨자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5만 원, 10만 원씩 보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며칠 사이에 서른 명이 넘어섰습니다. 자원봉사 동기는 ‘안나의 집’ 쌀값 한 달 치 정도를 품에 안고 내일 방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대학생 봉사단은 방역 현장에 있는 의료진과 경찰, 소방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을 위로하며 응원하고 있습니다.(중앙SUNDAY 12월 12일자 15면) 여러 가지 간식과 손편지로 응원 키트를 만들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인도·일본·말레이시아 등에도 보내는 글로벌한 마음 잇기가 되었습니다.

구상 시인은 여든 살이 넘고 교통사고로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자 3년여에 걸쳐 장애인문인협회에 2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마지막 기부금을 받으며 방귀희 회장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 선행은 시인의 사후 방 회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녀는 이 돈으로 문학상을 제정해 해마다 장애인 문인들에게 시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각별해서 휠체어 장애인 돕기 운동을 하는 ‘한벗장애인이동봉사대’에 2000만 원이 든 통장을 보내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의 사후, 그 돈을 마중물로 이 단체는 ‘한벗재단’으로 발전했습니다.

북한에서 순교한 형 구대준 신부의 서품 40주년인 1980년, 구 시인은 소장하고 있던 친구 이중섭의 그림을 호암미술관에 넘기고 사례로 받은 1억 원짜리 수표를 가족에게 보이며 큰돈이니 한번 만져보라고 하곤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보냅니다. 베네딕도 회는 형이 원산에서 사목했던 곳인데 전쟁 이후 남으로 옮겼습니다.

그가 존경했던 인물은 무소유를 실천한 공초 오상순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28주기가 되던 1991년 시서화 애장품전을 열어 마련한 1억여 원을 서울신문사에 기탁합니다. 그 돈으로 제정된 공초문학상은 28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문인들은 그를 ‘성(聖) 구상’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낸 참척(慘慽)에서도 끊이지 않았던 선행 때문입니다. 저는 미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이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었다는 두 컷짜리 만화를 생각합니다. “Why me?(왜 하필 저입니까?) Why not?(왜 너는 안 되는데?)”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그러나 자신보다도 남을 위할 때 인간은 강해집니다, 사람들의 그런 선의가 세상이라는 배를 침몰하지 않게 버텨주는 힘입니다. 이 시대의 주인은 마스크를 쓰고서도 죽으라고 싸우고 있는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욕심과 아집, 위선이 이 시대의 정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의무와 선행을 실천하고 있는 민초들이 나라를 지킵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 (구상의 ‘꽃자리’)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