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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정치’의 정체성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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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상렬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재까지’ 여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다. 지지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 여권에서 그만한 안정감, 그만한 경력을 갖춘 인물은 드물다.

최근 이 대표 지지율 하락세 #대중 영합보다 국익 추구하고 #‘문빠’보다 국민 보라는 신호

지지율은 언제든 오를 수 있다. 문제는 그가 대한민국을 발전과 통합으로 이끌 인물이냐는 것이다.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몇 가지 대목이 있다.

첫째, 이낙연은 포퓰리스트인가, 아닌가. 포퓰리스트의 관심은 대중과 권력이다. 미래는 안중에 없다. 나라살림을 거덜 내고, 다수와 소수의 편을 갈라 사회를 분열시킨다. 지난 3월 말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1차 재난지원금 지급 규모와 대상을 놓고 당과 정부가 격하게 대립했다. 취약계층 위주로 차등 지급하자는 기획재정부와, 지급대상을 넓혀 보편 지급하자는 민주당이 맞섰다. 그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한 기재부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4·15총선을 앞두고 지급확대를 주장한 민주당 입장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의 결과는 민주당 승리였다. 정말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 위주로 지급해 실효성을 높이고 재정을 아끼려는 기재부 계획은 좌절됐다.

그는 ‘통신비 포퓰리즘’ 지적을 받은 지난 9월의 2차 긴급재난지원금 논의 때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자”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2만원 통신비 전 국민 일괄 지급’을 건의했다. 소요되는 예산은 9000억원이 넘었고, 재원은 국채였다. 나랏빚 동원에 용감한 그는 대중 영합적인가, 아닌가.

서소문 포럼 12/15

서소문 포럼 12/15

둘째, 이낙연은 정치꾼(Politician)인가, 정치인(Statesman)인가. 가덕도신공항이 하나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그는 김해신공항과 가덕도신공항 문제를 꿰뚫고 있는 인사 중 하나다. 4년 전의 결론을 뒤집은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1년 전 이낙연 국무총리 시절 구성됐다. 안전, 소음, 환경, 시설·운영·수요 등 4개 분야 14개 쟁점이 검증 대상이었다. 신공항 결정의 주요 요소인 경제성은 검증 대상이 아니었다. 4년 전 정부 평가에서 김해신공항은 1위, 가덕도신공항은 최하위였다. 검증위의 “근본 검토 필요”결론이 김해신공항 백지화나 가덕도신공항 건설로 이어질 논리가 되지는 못한다.

그도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덕도신공항 지지 의사를 밝히고, 그가 이끄는 민주당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해 내년 2월 통과시킬 태세다. 총리실 산하 검증위의 검증은 가덕도신공항을 관철시키는데 필요한 정치적 장치였던 것인가. 4년 전 국토부 보고서에 따르면 김해공항 확장엔 4조7320억원, 가덕도신공항 건설(활주로 1개)엔 8조5850억원이 든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가덕도신공항 찬성론의 배후가 선거용 선심이라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보다 나라를 생각해야 ‘존경받는 정치인’이다.

셋째, 이낙연은 의회주의자인가, 아닌가. 최근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의회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독주하는 여당의 사령관이다. 공수처법과 기업 규제 3 법 등 100여 건의 법안이 군사작전처럼 일사불란하게 표결처리됐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크고 많은 개혁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야당을 배제한 법안 강행처리가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야당을 존중하지 않는 리더십으로 국론 통합은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넷째, 이낙연이 바라보는 것은 국민인가, ‘문빠’ 세력인가.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대체로 입장을 명쾌하게 밝히지 않는다. 애매모호한 말로 모두의 인심을 얻으려 한다. 그런 그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정치적 중립 시비 등을 불식시킬 생각이 없다면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11월 17일 관훈토론회). 여기서 ‘선택’이란 ‘사퇴’를 의미한다. 윤 총장에게 “공직자로서 합당한 처신”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미애 법무장관에 대해선 “스타일 쪽에서 아쉽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유체이탈 화법이다.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집행정지에 대해선 전국 평검사 1789명 전원이 “위법·부당하다”는 성명을 냈다. 윤석열에게 합당한 처신을 주문한 이치대로라면 평검사 전원으로부터 위법성을 지적받은 법무장관 추미애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하지 않는가. 시시비비를 가르는 그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아직 대선 레이스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지지율 하락은 어쩌면 이낙연에게 약이 될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포퓰리스트나 정략적 정치꾼을 다음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읽어낼 수만 있다면.

이상렬 중앙SUNDAY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