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의 세계
![지난 4월 헝가리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이동금지령을 내린 가운데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을 도는 모습. [신화=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2/15/28c421fe-19f1-4560-88ed-70af412750d5.jpg)
지난 4월 헝가리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이동금지령을 내린 가운데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을 도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2020년은 결국 코로나의 해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100년 만의 팬데믹으로 온 인류가 고통받으면서, 우리 삶은 거의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많은 자영업자들은 이미 기절 직전이다. 여행업, 항공사 종사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도 1년 가까이 무급 휴직 중이다. 가까스로 일자리를 지켜냈다 하더라도, 온종일 좁은 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이들의 디지털 전환 스트레스 역시 폭발 일보 전이다. 게다가 연령이 높거나 기저질환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그저 살얼음판이다.
코로나 위기에 국가 역할은 커지고 #감시 권위주의 강화하는 국가 늘어 #볼셰비즘·파시즘 물리친 민주주의 #또 한번 혁신 위한 기로에 서 있어
정치학자의 관점에서 2020년 AC(after corona)시대의 가장 주요한 특징적 현상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국가의 귀환. 코로나의 혼란과 위기 속에서 국가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둘째는 커지는 국가의 역할 속에서, 슬그머니 감시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립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해지는 중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당선에 따른 미국 민주주의의 귀환은 하나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먼저 국가의 귀환부터 살펴보자. 코로나 시대의 경제 위기, 실직, 스트레스, 질병의 공포 앞에서 결국 우리는 국가를 바라보게 된다. 이건 필자의 얘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귀족 출신이지만, 새로이 떨쳐 일어나던 신대륙 민주주의를 관찰하러 갔던 토크빌의 통찰이다. 미국 혁명 이후 개인들이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던 새로운 민주주의를 직접 보러 갔던 1830년대의 토크빌은 자유를 획득한 개인들은 여전히 연약한 존재라고 보았다. 전능한 신(神)으로부터의 해방, 구체제와 귀족들의 억압에서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자유로운 개인이 깊은 곤경에 빠지면 결국 의지할 곳은 국가라는 통찰. 100년 만에 찾아온 팬데믹은 토크빌의 예리한 관찰이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국가는 보통사람들의 마지막 구명보트이다. 사람 몸속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추적하고, 환자를 치료하고, 백신을 보급하는 코로나 전쟁의 총사령관은 결국 국가 권력이다. 방역의 단계를 결정하고 긴급 지원금을 푸는 곳도 국가이다.
문제는 국가는 무채색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지난 1년 가장 성공적으로 코로나 전쟁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대만의 T방역 사령관인 오드리 탕은 “코로나바이러스는 하나의 (정치적) 증폭기이다. 민주적인 국가는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이러스와 싸우고, 권위적인 국가는 더 권위적 방식으로 바이러스와 싸운다”고 말한다.
![헝가리 오르반 총리. [AP=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2/15/f1922cb9-6934-4b3d-8924-45e1842382de.jpg)
헝가리 오르반 총리. [AP=연합뉴스]
코로나 증폭기는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 한편에는 대만, 뉴질랜드, 독일처럼 민주적 삶을 지키면서 코로나 전쟁을 이끄는 국가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 정책의 기민함과 투명성, 시민의 참여와 협력, 정부의 데이터 역량이 선순환으로 어우러지면서 이들 국가들은 방역과 민주주의라는 두 목표의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해가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에도 포퓰리즘 리더로 인하여 코로나 대혼란을 겪다가 뒤늦게서야 서서히 수습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미국, 영국의 사례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가 권위주의 국가의 증폭기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국가의 권한을 비정상적으로 확대하면서 시민의 내밀한 사적 영역을 일일이 간섭, 통제하려는 신종 권위주의 국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유라시아 대륙의 몸통에서 주로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의 헝가리 오르반 정부는 이러한 코로나 권위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지난 4월 초 헝가리 의회는 오르반 총리에게 비상권한을 부여하고, 이러한 권한에 따라서 총리는 기존의 여하한 법률도 무기한 정지시킬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쥐게 되었다. 비슷한 일은 중유럽,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스라엘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코로나 증폭기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충돌을 빚었던 1930년대의 위기로 세상을 다시금 몰아넣고 있다. 1930년대는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결정적으로 흔들리던 시기였고 그러한 경제 위기는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일, 일본의 파시즘과 러시아 볼셰비즘의 확장을 가져왔었다.
마찬가지로 2020년대는 지난 20~30년간 축적된 경제 양극화와 디지털 문명으로의 급속한 전환 속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뿌리 뽑히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경제 위기와 코로나가 겹쳐지면서 코로나 권위주의, 즉 감시권위주의 국가가 바이러스만큼이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 지구촌의 현실이다. 이러한 감시권위주의를 포함한 “권위주의 체제에 있어서 정치의 궁극적 목적과 총체는 권력과 헤게모니이다.” (토마스 만, 『다가올 민주주의의 승리』, 1938) 따라서 감시권위주의는 그들 국경 내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나약하고 낡은 존재로 내려다본다.
필자가 지난달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의 당선을 눈여겨보는 까닭은 바로 심화되어 가고 있는 민주주의와 감시권위주의의 대립에서 미국의 역할이 여전히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독일 파시즘이 파죽의 지세로 유럽을 석권하던 무렵, 그에 외롭게 맞서던 영국의 처칠이 기댄 것은 결국 압도적인 국력을 가진 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처칠은 심지어 대서양을 건너와 아예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백악관에 몇 주간이나 머물며 미국의 참전과 지원에 매달렸었다.
처칠의 시대에 견주어보면, 미국의 역량이 그 당시만큼 압도적이지는 않다. 중국이 조만간 미국의 경제 규모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 4년간 트럼프 시기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 규범과 양식이 큰 상처를 입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은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궁극적인 생명력과 쇄신력에 있다. 역사상 최다수의 미국 유권자들이 2020년 선거에서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 집안 출신의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였다. 바이든 내각은 트럼프 시대의 세대 갈등, 인종 갈등을 넘어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인물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20세기의 볼셰비즘, 파시즘을 물리치고 살아남았던 민주주의는 이제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바이든 당선인의 공약에서 쇄신의 실마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중산층과 일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살려내는 것. 이들의 삶을 위해 의료보험을 개혁하고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감면하는 것. 인프라 투자와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2021년 새해에 추진하게 될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of Democracies)는 이러한 글로벌 민주주의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혁신으로 가는 길에 숱한 장애물이 놓여 있겠지만,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위엄과 존엄성, 자신의 운명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가 곧 민주주의라면, 민주주의는 다시 승리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한 ‘동아시아 민주주의 포럼’
한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민주주의 확산과 증진을 도모하는 목적의 ‘동아시아 민주주의 포럼’을 창시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김 대통령은 1998년 11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의 안정과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위해 한·미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포럼 창설에 합의하였다. 이 포럼은 한국과 미국이 주도하지만, 실제로는 아시아 전역의 민주주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1999년 7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1회 동아시아 민주주의 포럼에는 한국, 미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싱가포르, 호주, 몽골,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대표 등이 두루 참여하였다. 당시의 포럼 주제는 “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21세기의 도전”이었다. 김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면, 그는 내년 워싱턴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주제로 “민주주의의 혁신과 승리”를 추천하지 않았을까?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