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정식의 이코노믹스

기업투자 활성화해야 포퓰리즘 끊고 불평등도 줄인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1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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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치에 갇힌 한국경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최근 들어 한국경제의 여건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기침체는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저금리로 통화량이 늘어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경제정책 수립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가 정책 좌우하는 구조되면서
선거에서 이기려 선심성 정책 남발
부동산 급등으로 부의 불평등 심화
일자리 더 만들어야 포퓰리즘 차단

실제로 최근 추가경정예산이나 긴급재난지원금, 주식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 강화 등에서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정책당국보다 정당이나 국회에서 행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조세 및 재정정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정책과 제도가 국회에서 결정되므로 경제가 정치에 의해 어느 정도 영향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적 여파가 과도하면 그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런 불안 요인이 경제위기의 위험을 높인다는 점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경제는 왜 과거와 달리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지게 되었을까. 경제정책에 있어 정치적 요인이 중요해진 배경은 국민의 포퓰리즘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득표에 의해 집권하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 없이는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을 공급하기는 어렵다. 국민의 포퓰리즘 수요가 늘어나는 원인은 먼저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실업이 늘어나는 데 있다. 한국경제는 그동안 성장률이 높아 실업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자리는 크게 줄어들고, 청년실업뿐만 아니라 조기퇴직으로 중년실업까지 늘어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늘어날 경우 복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민은 강한 정부 개입과 선심성 확대 재정정책을 선호하게 된다.

고령화와 연금 부족도 포퓰리즘 자극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고령화 추세와 더불어 연금체제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성장기에 연금과 복지체제를 구축해 놓아 비록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어도 노후소득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연금체제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성장·고령화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노후소득이 부족해져 복지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치인들의 선심성 재정정책, 즉 포퓰리즘 공급이 구조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도 요인이다. 한국경제는 1949년 이승만 정부가 농지개혁을 하기 전까지는 부(富)의 불평등이 문제였다. 그러나 농지 소유를 3정보(약 3만㎡)로 제한하는 농지개혁으로 부의 불평등은 크게 완화되었고, 그동안은 소득 불평등이 주된 이슈였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까지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는 정책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다시 부의 불평등이 급격히 확대된 것이다. 필수재인 주택가격 상승은 앞으로 임금과 생활물가를 인상시키고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등 한국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처럼 평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국가에서 불평등의 확대는 그 악영향이 더욱 크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중국의 추격과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정책 수립에 있어 정치적 영향력까지 높아질 경우 저성장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포퓰리즘으로 경제적 불평등도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포퓰리즘에 의한 선심성 재정 및 통화정책은 통화량을 늘어나게 하고 인플레이션은 부동산 가격 등 실물가격을 높여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러한 불평등 심화는 다시 포퓰리즘과 정부개입을 불러오는 악순환 속으로 경제를 들어가게 만든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양극화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낮추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정책이 결정되기보다는 경제논리에 의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포퓰리즘 수요를 줄이는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기업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고 올바른 주택정책으로 주택가격을 안정시켜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돼야 한다. 그래야 포퓰리즘 수요를 줄여 저성장·양극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 줄여야 포퓰리즘 억제

한국경제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낮출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국민의 포퓰리즘에 대한 수요를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투자를 활성화시켜 실업을 줄여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이미 많은 재정이 투입돼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가 늘어나면서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정정책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통화정책 역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추가적인 금리 인하나 확대 통화정책 사용이 어려워지고 있다.

사용할 정책수단이 제약된 상황에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해법은 기업 투자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 투자가 늘어나야 경기가 부양돼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노동자의 권익 보호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정부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불평등 또한 완화해야 한다.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불평등은 근로의욕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 되지만 지나치게 큰 격차는 근로의욕을 저하해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또한 포퓰리즘 수요를 늘려 정부 개입과 사회주의 경향을 높인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미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국가들은 예외 없이 포퓰리즘과 사회주의 경향을 경험하면서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기업과 학계 모두 불평등 완화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업인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완화가 중요한 과제임을 확인했다. 미국의 재계 역시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자 미국 경제의 사회주의 경향을 우려해 환경과 기업의 사회공헌을 강조하고 있다.

수요 억제책으로는 부동산 해결 못 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켜 부의 불평등도 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수요억제책보다 교통인프라를 갖춘 주택의 공급 확대책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상호 대체관계에 있어 서울 주택 가격 상승은 다른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정부는 서울 주택 가격 상승의 원인이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에 있다고 봐서 대출 규제와 양도소득세 및 보유세 중과세 등의 수요억제책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도심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높아지는 원인은 교통이 편리하고 교육·유통 등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공간을 가지고 있는 서울 도심지역의 공급 확대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 서민들이 사는 변두리와 신도시 지역에 교통·교육 등 생활 인프라를 확충해 서울 주택 수요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다시 애덤 스미스 시대로 돌아가 경제학이 정치 문제 다뤄야
한국경제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학도 바뀌어야 한다. 경제 현상과 정책 분석에서 정치적 요인을 중시해야 한다. 원래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을 만들었을 때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었다. 경제 현상은 정치·사회·심리·제도·역사 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런 요인들을 고려해 현실 경제문제를 분석했다.

그러나 알프레드 마샬이 등장하면서 경제학은 지금의 경제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경제 현상 분석에 수학과 물리학의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수학과 통계로 표현하기 힘든 정치·사회·제도 요인은 분석에서 제외시켰다. 경제현상을 오로지 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만 분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요인이 중요해진 지금은 기존의 방법론으로는 현실 경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은 이러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관료나 정치인의 행동을 경제분석에 포함시키는 정치경제학적 방법론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또한 MIT대의 대런 에쓰모글루 교수는 신흥시장국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이익집단의 반발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정치적 영향력의 부작용을 분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경제는 물론 정치·제도적 요인까지 고려해 한국경제를 분석해야 하며 사회과학 내의 학제 간 연구와 융합연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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