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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장애아들 손팻말에, 6개월 만에 알려진 노모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김모(60·여)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숨진 지 반년 이상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발달 장애를 앓는 아들 최모(36)씨는 어머니 김씨의 사망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방배동 모자 사건’을 두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마 5월 3일 숨져” 문구 들고 구걸 #방배동 모자의 비극, 복지 구멍 #“찾아가는 복지, 인력 확충해야”

방배경찰서는 14일 “지난 3일 방배동의 한 주택에서 사망한 지 6개월 이상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가 지병으로 숨을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수사과학연구원 부검 결과 ‘지병으로 인한 변사’라는 소견을 전달받았다”며 “정확한 사망 시점은 알 수 없지만 타살 혐의점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계기는 한 민간 사회복지사의 신고 덕분이다. 아들 최씨는 발달 장애 환자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집에 음식이 떨어지고 전기가 끊기자, 인근 이수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노숙 기간은 명확하지 않다. 최씨는 “우리 엄마는 5월 3일에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문구를 앞세워 구걸도 했다. 길을 지나던 사회복지사 A씨가 이를 보고 즉각 경찰에 신고했다. 최씨의 집을 찾아간 경찰이 이불에 덮인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들은 경찰 조사에서 “내가 이불을 덮어줬다”고 말했다. 시신 옆에는 “우리 엄마는 몸 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공책이 있었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최씨 가정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월 28만원의 주거급여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최씨에 대한 장애인 등록은 되지 않았다. 장애인 급여 등을 받지 못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당사자 혹은 법적 보호자가 직접 지자체에 장애인 등록을 해야만 장애인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구청 관계자는 “지난 8일 아들 최씨를 생계비지원 대상자·통합사례관리대상자로 등록했다. 앞으로 진단서 등을 바탕으로 의료비수급 신청도 하는 등 최대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적극 찾아내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시에선 단수가 오래된 가정을 직접 찾아가는 등 취약계층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 인력으로는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로부터 소외된 취약계층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기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확충하고, 지원 기준도 낮춰야 한다”며 “복지혜택을 줄 때의 행정 절차도 간편하게 해 복지의 사각지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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