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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조부가 아낀 고모의 숨은 음반…내 음악의 DNA 있어”

중앙일보

입력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사람’으로 데뷔해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40여 년간 사랑 받아온 가수 심수봉씨.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가 발굴되면서 다시 주목받는 1920년대 명창 심매향의 오빠인 심재덕의 딸이다. 주요 포털에 1955년생이라 돼 있지만 “실제로는 1951년생”이라고 본지에 직접 밝혔다. [사진 심수봉 측 제공]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사람’으로 데뷔해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40여 년간 사랑 받아온 가수 심수봉씨.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가 발굴되면서 다시 주목받는 1920년대 명창 심매향의 오빠인 심재덕의 딸이다. 주요 포털에 1955년생이라 돼 있지만 “실제로는 1951년생”이라고 본지에 직접 밝혔다. [사진 심수봉 측 제공]

“제 집안이 말하자면 ‘중고제’(서편제·동편제 같은 판소리의 일종)로 유명하고 대를 이어 음악을 전수해온 가문이에요. 심매향 고모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심정순 명창)가 칭찬하고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재능이 탁월했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저한테도 그런 음악 DNA가 전해졌겠죠.”

심매향의 1920년대 가요 '붉은 장미화' #"소름 끼칠 정도…현대 음악처럼 불러" #할아버지 심정순부터 3대째 음반 낸 명가 #"음악 DNA 대물림, 필 받으면 곡 바로 써"

국악계 전설적 명창 심매향(1907~1927)이 1920년대 녹음한 유일한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가 발굴된 것과 관련해 대중가수 심수봉씨가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심씨는 심매향의 오빠인 국악이론가 심재덕의 딸로 주요 포털에 1955년생이라 돼 있지만 “실제로는 1951년생”이라고 직접 밝혔다.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사람’으로 데뷔해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등 숱한 히트곡으로 40여 년간 사랑 받아온 심씨는 본지 소개로 12일 심매향의 가요를 처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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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장미화’를 들어보니 어떠한가.
“소름 끼칠 정도로 오래된 음반이더라. 가사는 잘 안 들리는데 그 당시에 벌써 현대음악처럼 불렀더라. 국악이냐 아니냐 구분 없이 당대 우리나라 사람이 하던 음악이 그랬구나 싶다. 사실 서양음악 음계와 우리 전통음악은 전혀 달랐을 텐데, 신식음악에 ‘필(feel)’을 담아 부른 게 느껴진다.”
 명창 심매향이 남긴 유일한 가요 음반이다.
“그런 음반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 분의 국악 음반도 (워낙 희귀해서) 거의 듣지 못 했다. 심정순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한 가계에서 이렇게 많은 음반을 낸 것도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할아버지가 슬하에 2남2녀를 뒀는데 아버지(심재덕)도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막내 심화영(1913~2009) 고모로부터 심매향 고모 얘길 전해들었다.”
심수봉 가계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심수봉 가계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음반을 발굴한 노재명(51) 국악음반박물관장에 따르면 심매향을 배출한 충남 서산의 청송 심씨는 우리나라에서 판소리로 유명했던 세습 예인 네 가문 중 하나다. 근대 5명창으로 불린 송만갑(宋萬甲, 1865-1939)과 김창룡(金昌龍, 1872-1943) 집안, 또다른 명창 방만춘(方萬春, 생몰연대 미상)이 속한 서산 해미의 방씨 집안 등과 함께다. 심매향의 아버지 심정순은 피리와 퉁소의 명인이었던 아버지 심팔록의 대를 이어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고 1911년 일본 레코드회사가 국내 진출했을 때 가장 먼저 계약해 여러 장의 음반을 남겼다. 노 관장은 “심정순 명창부터 그 손녀인 심수봉씨까지 3대가 100년 이상 우리 민중 성악을 주름 잡은 집안”이라고 요약했다.

 이런 집안 내력이 음악하는 데 배경이 됐나.
“물론이다. 너댓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나중에 어머니 말씀이 ‘네 친가가 음악으로 유명해서 뭐라도 안 시키면 큰일 날 것 같았다’고 했다. 제가 아직 강보에 싸여있을 때 노랫소리가 들리면 발가락으로 박자를 맞췄다고도 하셨다(웃음). 저는 사실 1951년생으로 어머니가 1·4 후퇴 때 내려온 피란민인데, 아버지와 나이 차가 많이 났다. 아버지 쪽으로 배다른 언니 셋이 있는데 언니들에게서 아버지 집안 얘길 들었다. 97세까지 장수한 심화영 고모는 판소리·가야금에 두루 능했는데 어쩌다보니 충남도 무형문화재(27호) 지정은 승무로 받았다.”
국악 명인 심재향(1907~1927)은 대대로 판소리 중고제 명창을 배출한 가문인 청송 심씨 출신이다. 그의 부친 심정순(1873~1937)의 1933년 회갑 잔치에 모인 가족 사진. 가운데 갓 쓴 이가 심정순으로 2남2녀를 뒀는데 차례로 심재덕(판소리, 가야금 명인), 심재민(농사), 심매향, 심화영(전통춤 명인)이다. 맨 오른쪽이 심화영, 그 옆이 심재덕(대중가수 심수봉씨 부친), 맨 왼쪽이 심재민이다. 1927년 요절한 심매향은 사진에 없다.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국악 명인 심재향(1907~1927)은 대대로 판소리 중고제 명창을 배출한 가문인 청송 심씨 출신이다. 그의 부친 심정순(1873~1937)의 1933년 회갑 잔치에 모인 가족 사진. 가운데 갓 쓴 이가 심정순으로 2남2녀를 뒀는데 차례로 심재덕(판소리, 가야금 명인), 심재민(농사), 심매향, 심화영(전통춤 명인)이다. 맨 오른쪽이 심화영, 그 옆이 심재덕(대중가수 심수봉씨 부친), 맨 왼쪽이 심재민이다. 1927년 요절한 심매향은 사진에 없다.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왼쪽부터 두번째가 심매향의 18살 때 모습(1925년)이다. 1927년 요절해 전해지는 사진이 거의 없다. 왼쪽부터 국악인 이초선·심매향·김해선·한성준·최섬홍·박화선.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왼쪽부터 두번째가 심매향의 18살 때 모습(1925년)이다. 1927년 요절해 전해지는 사진이 거의 없다. 왼쪽부터 국악인 이초선·심매향·김해선·한성준·최섬홍·박화선.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심씨는 이러한 집안 내력이 “내 음악의 DNA로 대물림된 것 같다”고 했다. 특히 곡을 쓸 때 “3분짜리 곡은 3분 만에 쓴다. 고민해서 만들어본 적이 없다. 한번 ‘필’을 받으면 그대로 끝내는 스타일”이라며 “가사는 고심해서 쓰지만 음악은 하늘이 주시는 선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나이도 있는지라 이젠 세상을 향해 잘 보이고 싶은 그런 건 다 내려놓고 남은 소명을 다하려고 해요. 우리 음악의 한과 흥 가운데 좀 더 흥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음악은 트롯이니 뭐니 하는 장르를 떠나서 하늘을 향해서 올려드리는 아름다움이고 그게 우리를 위로하는 위대함 아닐까요.”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10일 성동구 용답동 국악음반박물관에서 이번에 발굴한 심매향의 유일한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를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10일 성동구 용답동 국악음반박물관에서 이번에 발굴한 심매향의 유일한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를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붉은 장미화’ 음반 공개를 두고 한국 가요학계 평가는 엇갈린다. 대중가요사를 연구해온 이준희 음악학자(성공회대 외래교수)는 “국악인이라 가창이 오락가락 하지만 초창기 대중가요 주요 특징이 드러난다. 다만 창작자가 명기돼 있지 않으니 번안가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1920년대 일본 창가 악보집과 대조해 본 민경찬 한국예술종합원 교수(음악원)는 “현재로선 번안가요로 확인되진 않는다. 만약 창작가요라면 당시 서양음악 작곡가가 굉장히 드물었는데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건 미스터리”라고 했다. “작곡가의 요절·월북 등이 이유일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다.

노 관장의 ‘창작가요 1호’ 주장에 대해선 더욱 신중한 반응이다. 이영미 대중가요연구가는 “창작가요의 기준, 조선인의 역할에 대해서 연구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특히 창작자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1호 주장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윤심덕이 ‘사의 찬미’ 외에 불렀던 다른 곡들 중에서 창작가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추억’ ‘김치깍두기’(이상 1926) 등에 대한 연구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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