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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에어백으로 아우디·벤츠 마크 찍힌 옷 만들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들의 독특한 스타일이 너무 좋다."
지난해 5월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의 창립자 벤 고햄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로 '강혁(KANGHYUK)'을 꼽으면서 한 말이다. 실제로 그는 짧은 방한 일정을 쪼개 강혁의 듀오 디자이너를 만나고 갔다. 바로 이 강혁이 올해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의 우승자로 선정됐다. 지난 8일 강혁의 옷과 설치물 전시가 열리고 있는 편집숍 '비이커' 청담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두 명의 디자이너 최강혁·손상락을 만났다.

패션 브랜드 '강혁'의 최강혁(왼쪽), 손상락 디자이너. 지난 8일 두 사람은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올해의 우승자로 선정됐다. 김경록 기자

패션 브랜드 '강혁'의 최강혁(왼쪽), 손상락 디자이너. 지난 8일 두 사람은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올해의 우승자로 선정됐다. 김경록 기자

매장 오픈 전인 오전 10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 옷을 입은 두 명의 디자이너와 마주했다. 최 디자이너는 기계 주름이 쭈글쭈글하게 잡힌 강혁의 나일론 점퍼를, 손 디자이너는 친구인 '빅뱅'의 멤버 탑이 선물한 검정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다. 방역을 위해 낀 흰 마스크도 이들 패션의 일부인 양 잘 어울렸다. 인터뷰에서 다른 브랜드의 옷을 입은 이유를 묻자 손 디자이너는 "우리 옷만 입는 게 너무 설정 같아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옷을 선택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2021 수상자 #브랜드 '강혁'의 듀오 디자이너 최강혁·손상락

두 사람은 영국 런던 영국왕립예술학교(RCA) 동기다. 최 디자이너가 2016년 졸업작품전 직후 브랜드 강혁을 론칭했고, 다음해 초 서울로 돌아와 손 디자이너와 함께 의기투합해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에어백을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 이를 풀어내는 방식, 이들만의 개성 강한 스타일에 해외 패션업계가 먼저 반응했다. 창의적인 패션 제품을 판매하기로 유명한 '도버 스트리트 마켓' 런던·뉴욕·LA·긴자점을 포함해 'H.로렌조(미국)' '레클레어(프랑스)' '잉크(홍콩)' 등 현재 13개국 20여 개 유명 편집숍에 강혁 제품이 입점해 있다. 지난해엔 루이비통모엣헤네시 그룹이 전개하는 디자이너 후원 프로그램 'LVMH 프라이즈'의 준결선에 이름을 올렸다. 스포츠 브랜드 리복은 2018년 이들을 협업 파트너로 선정해 지금까지 ‘프리미어 모던’ 등 총 3개의 운동화를 출시했다.

2017년 브랜드 론칭 후 처음으로 선보인 '강혁'의 의상. 사진 강혁

2017년 브랜드 론칭 후 처음으로 선보인 '강혁'의 의상. 사진 강혁

리복과 협업해 만든 운동화들. 사진 강혁

리복과 협업해 만든 운동화들. 사진 강혁

이들의 옷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자동차 에어백'이다. 자동차 회사 로고와 바코드, 봉제실까지 에어백의 모든 요소를 옷에 고스란히 담는다. 처음엔 영국의 켄트·버밍엄 등에 있는 폐차장에서 에어백을 공수해 썼다. 직접 에어백 탱크를 잘라 원단을 꺼내고 이를 세탁·분해한 뒤 디자인에 맞춰 옷을 제작했다. 작업 물량이 많아지고 또 국내에선 폐에어백을 구할 방법이 없어 지금은 폐에어백 원단 사용을 조금 줄이고, 전문업체에서 에어백을 만들기 바로 전 단계의 원단을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 건 동일하다. 에어백 본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폐에어백처럼 가공해 작업하기 때문이다.
"저희 작업 자체가 손이 많이 가요. 일반적인 옷을 만들 때의 2배 이상이죠. 브랜드 핵심 컨셉트인 '인공·소재·균형'에 맞게 재료 자체의 느낌을 최대한 잘살리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죠."(손상락. 이하 손)

에어백을 분해해 옷으로 만들기 전의 상태. 두 사람은 이 과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사진 강혁

에어백을 분해해 옷으로 만들기 전의 상태. 두 사람은 이 과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사진 강혁

위의 재료들로 만든 옷. 윤경희 기자

위의 재료들로 만든 옷. 윤경희 기자

이들의 작업방식은 세계 패션업계의 화두인 지속가능성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에어백 원단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한다.
"폐에어백은 옷을 만들었을 때 정말 예뻐요. 워싱을 해도 남아있는 더티 마크, 에어백에 찍힌 여러 자동차 회사의 마크 등을 옷의 다양한 요소로 활용할 수 있거든요. 아우디·벤츠 마크가 찍힌 옷을 재밌어 하는 사람들을 보고 '한국 자동차 회사의 에어백으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상황이 쉽지가 않네요. 향후라도 한국 회사와 협업하면 좋겠어요."(최강혁. 이하 최)
"디자인 자체는 절제된 느낌을 좋아하지만 너무 진지한 옷은 또 싫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봤을 때 예뻐야죠. 작업이 끝나고 가장 먼저 나누는 이야기도 '예뻐?' '사서 입을 수 있겠어?'에요. 이 질문에 서로 OK 사인이 났을 때만 상품화합니다."(손)

'강혁'이 선보인 인스톨레이션들. 사진 강혁

'강혁'이 선보인 인스톨레이션들. 사진 강혁

브랜드를 알리는 방식도 독특하다. 패션쇼 대신 강혁 옷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설치물 전시를 한다. 에어백 원단과 경첩을 이용해 거대한 기린 인형이나 새 등을 만드는데 수작업이어서 준비 기간만 한 달 이상 걸린다. 이번 SFDF 수상을 기념해 비이커 청담에서 이달 21일까지 '정육점' 컨셉트의 전시를 연다. 고기를 정련하고 분해해서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잘라 파는 방식이 강혁의 옷 컨셉트와 닮았다는 생각에서다.
"패션쇼를 안 하는 대신 '강혁'이란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옷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죠. 우리 작업 방식을 패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요."(최)

비이커 청담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한 '정육점' 컨셉트의 설치물. 김경록 기자

비이커 청담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한 '정육점' 컨셉트의 설치물. 김경록 기자

'강혁'의 2021년 봄여름 컬렉션. 사진 강혁

'강혁'의 2021년 봄여름 컬렉션. 사진 강혁

강혁의 옷은 많은 국내외 스타들의 선택을 받았다. 2018년 1월 옷 잘 입기로 정평이 난 래퍼 에이셉 라키가 ‘토니 톤(Tony Tone)’ 뮤직비디오에서 이들의 옷을 입고 등장한 게 시작이다. 이외에도 래퍼 트래비 스캇,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모습이 파파라치 사진을 통해 포착됐다. 글로벌 패션 매체 하입비스트는 이에 대해 "한국 디자이너 옷이 힙합·스트리트 컬처 아이콘을 통해 이렇게 전격 소개된 전례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국내 스타 중에는 탑·크러시·식케이·밀릭을 비롯해 올해 초 방탄소년단 슈가가 '섀도' 뮤직비디오에서 강혁의 옷을 입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올겨울엔 어떻게 옷을 입어야 돋보일지 물었다. 최 디자이너는 "울 코트나 재킷 안에 얇은 나일론 점퍼를 입으면 좋을 것 같다"고 권했다. 손 디자이너는 "옷만으로 패셔너블해지려고 하면 그 사람이 잘 안 보인다"며 "무심한 듯 멋을 내는 스타일로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에 검정 패딩 점퍼면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이때 검정 패딩은 엉덩이를 살짝 덮는 길이가 따뜻하고 또 스타일도 살아요. 사이즈도 중요한데 몸에 꼭 맞거나 한 사이즈 큰 것을 입는 게 좋고, 패턴 커팅 등 독특한 디자인 요소가 들어간 것을 선택해보세요. 말하고 보니 딱 강혁 패딩이네요. 하하."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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