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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전설의 명창 심매향이 부른 유일한 가요, 94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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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10일 성동구 용답동 국악음반박물관에서 심매향 음반을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10일 성동구 용답동 국악음반박물관에서 심매향 음반을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악계 전설적 명창 심매향(1907~1927)이 1920년대 녹음한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가 90여년 만에 실물과 음원으로 공개됐다. ‘신유행가’라는 분류를 달고 선보인 이 음반은 1926년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듬해인 27년 발매됐다. 학자에 따라 창작가요 1호로 꼽는 ‘낙화유수’(일명 ‘강남달’)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음반이다. 대중가수 심수봉씨의 고모이기도 한 심매향은 스무살에 요절하기에 앞서 일본인이 경영한 ‘일축조선소리판’을 통해 20장 남짓한 음반을 남겼다. 현재 전해지는 건 모두 국악이고 가요는 ‘붉은 장미화’가 유일하다.

요절한 국악 명창이 남긴 유일 가요 음반 #1926년 '사의 찬미'와 비슷한 시기 녹음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 입수해 공개 #"창작가요 1호 가능성" 후속 연구 따라야

음반을 공개한 이는 35년째 국악·고음반 연구에 매달려온 노재명(51) 국악음반박물관장. 2016년 처음 음반을 입수한 이래 분석·연구를 해온 그는 “그간 문헌자료로만 전해질 뿐 사실상 사라졌던 초기 대중가요를 되살려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악인이 가요 음반을 남긴 것 자체가 이례적일 뿐더러 녹음 시기 상 한국 창작 대중가요의 흐름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1926년 녹음된 걸로 추정되고 이듬해인 1927년 발매됐던 국악 명창 심매향의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26년 녹음된 걸로 추정되고 이듬해인 1927년 발매됐던 국악 명창 심매향의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20년대 국악 명인 심재향(1907~1927)이 무반주 녹음 음반으로 남긴 가요 '붉은 장미화'를 채록한 악보. 가사 채록은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과 가수 송영구(심매향 조카)씨가, 악보 채보는 송영구씨가 했다.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1920년대 국악 명인 심재향(1907~1927)이 무반주 녹음 음반으로 남긴 가요 '붉은 장미화'를 채록한 악보. 가사 채록은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과 가수 송영구(심매향 조카)씨가, 악보 채보는 송영구씨가 했다.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음반은 어떻게 구했나.
“2대째 거래해온 서울 청계천 골동품상이 2016년 연락해 왔다. 첫 눈에 희귀하기 그지없는 ‘일축조선소리판’인데다 심매향 녹음이라서 달라는 대가를 다 드렸다. 웬만한 중고차 한 대 값이다. 문헌으로만 전해져 온 ‘붉은 장미화’를 실물로 확인하니 가슴이 덜덜 떨렸다. 음반 구입 사실을 알리긴 했지만 실물과 음원을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음반의 역사적 가치를 꼼꼼히 따졌다.”

-국악인 심매향이 어떻게 가요 녹음을 했을까.
“당시엔 판소리가 대중음악이었고 심매향은 당대 최고 인기 가수였다. 신식 음악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우리나라 민중 성악의 명가라 할 가문이 넷이 있는데 심매향은 그 중 청송 심씨 가문이다. 부친 심정순(1873~1937) 명창은 당대 판소리 1인자로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해조 산정(刪正·정리)본이 그분 창본이다. 1911년 일본 레코드회사가 국내 진출했을 때 가장 먼저 계약한 인물이기도 했다. 심매향의 오빠 심재덕의 딸이 심수봉씨다. 말하자면 심정순 명창을 기준으로 한국 대중음악사 100년 이상을 주름잡은 집안이다.”

왼쪽부터 두번째가 심매향의 18살 때 모습(1925년)이다. 1927년 요절해 전해지는 사진이 거의 없다. 왼쪽부터 국악인 이초선·심매향·김해선·한성준·최섬홍·박화선.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왼쪽부터 두번째가 심매향의 18살 때 모습(1925년)이다. 1927년 요절해 전해지는 사진이 거의 없다. 왼쪽부터 국악인 이초선·심매향·김해선·한성준·최섬홍·박화선.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1927년 5월 일축조선소리반의 신보 신문광고에 심매향의 '붉은 장미화'와 '아아 작별'이 실린 음반이 소개돼 있다(붉은 동그라미 표시).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1927년 5월 일축조선소리반의 신보 신문광고에 심매향의 '붉은 장미화'와 '아아 작별'이 실린 음반이 소개돼 있다(붉은 동그라미 표시).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노 관장은 지난 3일 한국문화재재단 주최의 무관중 공연을 통해 ‘붉은 장미화’ 음원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심매향의 또다른 조카 송영구(68)씨가 통기타 반주로 복원 공연도 했다. 그는 심매향 여동생이자 판소리·전통춤 명인 심화영(1913~2009)의 아들이다. 이 영상은 11일 한국문화재재단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음반에서 청아하면서도 우렁찬 목소리의 심매향은 “장미화에 고은 빛 나무가 보던 길/ 둘레 밖에 어여쁜 몸 흠모 하리다~”로 이어지는 ‘붉은 장미화’를 무반주로 불렀다. 유성기음반(SP음반)의 B면에 담긴 1분30초 길이 곡이다. 같은 면엔 심매향이 부른 또 다른 가요 ‘아아, 작별’도 있다. A면엔 다른 가수(이정숙)의 동요가 수록돼 있다. 노 관장은 “너무 귀한 음반이라 이번에 디지털 음원을 뜨기 위한 용도로 딱 한 번 재생해봤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 관장은 “창작자가 명시돼 있진 않아도 ‘붉은 장미화’가 한국 창작가요 1호 음반으로 보인다”는 논쟁적인 주장도 했다.

-그 같은 주장의 근거는.
“1921년 취입한 박채선·이류색의 ‘희망가’(23년 발매)나 1926년 취입·발매된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일본 노래의 번안 가요다. 조선인 창작자(김서정)가 명기된 ‘낙화유수’는 1927년 영화 주제곡 형태로 발표돼 음반은 1929년 나왔다. ‘붉은 장미화’는 음반사 일련번호상 1926년 녹음됐을 거고 27년 5월에 신보 광고가 신문에 실렸다. 신식 음악임을 강조하려고 ‘신유행가’라는 타이틀까지 달았다. 초기 가요 음반엔 작사·작곡자가 안 쓰인 경우가 많았다. ‘붉은 장미화’는 기존 민요나 창가와 전혀 다른, 당시 서구 음악을 받아들여 작곡하던 안기영·홍난파 스타일이다. 특히 안기영(1900∼1980) 작곡가의 경우 심매향의 동생 심화영이 다닌 이화학당 교수로 재직했기에 연결고리가 있다.”

한국 근대음악사를 연구한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원)는 본지 소개로 ‘붉은 장미화’를 청음한 뒤 “1920년대 일본 창가 악보집 등을 뒤져봤는데 같은 제목·음률이 없어 조선인의 창작가요일 수 있다”면서 “다만 창작자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1호 여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고 후속 연구가 따라야 한다”고 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국악인이 초창기 대중가요를 녹음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가요사 태동기를 새롭게 쓸 수 있는 발굴”이라고 평했다.

국악 명인 심재향(1907~1927)은 대대로 중고제 명창을 배출한 가문인 청송 심씨 출신이다. 그의 부친 심정순(1873~1937)의 1933년 회갑 잔치에 모인 가족 사진. 가운데 갓 쓴 이가 심정순으로 2남2녀를 뒀는데 차례로 심재덕(판소리, 가야금 명인) 심재민(농사) 심매향, 심화영(전통춤 명인)이다. 맨 오른쪽이 심화영, 그 옆이 심재덕(대중가수 심수봉씨 부친), 맨 왼쪽이 심재민이다. 1927년 요절한 심매향은 사진에 없다.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국악 명인 심재향(1907~1927)은 대대로 중고제 명창을 배출한 가문인 청송 심씨 출신이다. 그의 부친 심정순(1873~1937)의 1933년 회갑 잔치에 모인 가족 사진. 가운데 갓 쓴 이가 심정순으로 2남2녀를 뒀는데 차례로 심재덕(판소리, 가야금 명인) 심재민(농사) 심매향, 심화영(전통춤 명인)이다. 맨 오른쪽이 심화영, 그 옆이 심재덕(대중가수 심수봉씨 부친), 맨 왼쪽이 심재민이다. 1927년 요절한 심매향은 사진에 없다.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심정순 명창의 막내딸이자 요절한 심매향의 동생 심화영 명인(가야금, 판소리, 전통춤)의 젊은 시절(위)과 1995년 모습.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심정순 명창의 막내딸이자 요절한 심매향의 동생 심화영 명인(가야금, 판소리, 전통춤)의 젊은 시절(위)과 1995년 모습.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심매향의 조카인 심수봉씨는 본지와 통화에서 “일찍 돌아가신 고모에게 그런 음반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듣고서 소름 끼치도록 놀랐다. 우리 음악 초창기가 이랬구나 굉장히 새삼스럽다”고 했다. 심씨는 작은 고모인 심화영 명인으로부터 재능이 탁월했던 언니 심매향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한다.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10일 성동구 용답동 국악음반박물관에서 희귀 음반을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10일 성동구 용답동 국악음반박물관에서 희귀 음반을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즐겨들었던 노 관장은 고2 때 처음 국악 음반을 접하고 생소한 매력에 빠져 ‘국악 덕후’로 살아왔다. 1990년대 국악계 인간문화재들이 줄줄이 별세하자 “살아 계실 때 이들을 만나야 한다”라는 신념에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명인들의 회고담과 노래가락을 채집했다. 이렇게 인터뷰한 국악인이 800여명, 수집한 국악 및 고음악 관련 자료가 6만3000여점에 이른다. 특히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그간 사설 완본이 전해져오지 않은 ‘무숙이타령’의 완전 필사본을 2016년 경매로 획득하고 최근 이를 영인 해제 출간하기도 했다( 『잊혀진 판소리 무숙이타령을 찾아서』).

그는 “이번 음반을 포함해 심 명창의 다른 음반들까지 복각 CD로 낼 예정”이라며 “우리 국악과 가요사 연구에 뜻 깊은 발굴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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