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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4기 진단도 유튜브 올렸다…'투병 고백'하는 2030 환자들

중앙일보

입력 2020.12.13 10:00

업데이트 2020.12.1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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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33)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항암 치료 후 머리가 빠진 사진. 블로그 '흉선암 투병일기'

이정은(33)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항암 치료 후 머리가 빠진 사진. 블로그 '흉선암 투병일기'

"암이 꽤 많이 퍼져있는 상황이야. 수술로 큰 혹은 다 뗐는데 자잘한 암세포 씨 같은 것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기수로 따지면 4기야."

마주 앉은 환자에게 조직검사 결과를 전하는 의사. 느린 피아노 선율이 배경음악으로 깔립니다. 음악이 멈추고 젊은 남성이 묻습니다.

[밀실]<제58화>
젊은 암환자들의 '조금 다른' 투병기

"4기도 완치 사례가 있는 거잖아요?" (환자)

"있지.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의사)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암 환자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 같다고요?

아닙니다.

28살 임현준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암 진단할 때 의사는 뭐라고 이야기할까?'라는 제목의 동영상 중 일부입니다. 임씨가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 주치의와 실제로 나눈 이야기죠.

암 투병기를 다룬 웹툰 '아만자' 중 한 장면. 레진코믹스 웹툰 '아만자' 캡처

암 투병기를 다룬 웹툰 '아만자' 중 한 장면. 레진코믹스 웹툰 '아만자' 캡처

임씨처럼 암 투병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고백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위암 4기 진단을 받은 26살 청년이 나오는 웹툰 '아만자'도 그중 하나인데요. 2014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고, 올 9월 드라마로 재탄생했을 만큼 인기입니다. 작가 '김보통'은 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된 작품이라고 밝혔죠.

숨기고 싶을 수 있는 암 투병기를 모두에게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밀실팀이 동영상·웹툰·에세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암세포와의 싸움을 고백한 20·30대 환자들을 만나 봤습니다.

#'조금 다른' 2030 암 환자들의 이야기,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SNS서 인기 끄는 '암 환자 일상'

임현준(28)씨가 집에서 항암 치료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유튜브 '만자일기' 캡처

임현준(28)씨가 집에서 항암 치료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유튜브 '만자일기' 캡처

"어제 6시간 동안 항암제를 맞고 (몸이) 녹아서 집에 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항암제가) 집까지 따라왔습니다. 방향제처럼 생긴 이게 항암제입니다." - 유튜브 '만자일기' 중

오른쪽 쇄골 밑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항암제를 주입하는 임현준씨. 집에서 항암 치료하는 모습이 담긴 그의 동영상은 유튜브에서만 48만 회 넘게 재생됐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의 작은 칵테일 바를 운영하던 임씨는 지난 5월 병원을 찾았습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복통과 몸살 때문이었죠. 별생각 없이 갔지만, 조직검사 결과는 대장암 4기로 나왔습니다. 임씨는 그렇게 20대 후반에 암 환자가 됐습니다.

'곧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우울감에 빠진 것도 잠시, 대학에서 영상 디자인을 전공한 임씨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암 환자의 유튜브 채널이라고 해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상만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반려견과 떠난 여행, 동물원 나들이 등 또래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대부분이죠.

임씨는 "일찍이 자신의 투병기를 웹툰이나 동영상으로 표현한 환자들을 보며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내 영상이 암 환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청원(19)씨가 그린 웹툰 중 한 장면. 인스타그램 '푸른동그라미' 캡처

김청원(19)씨가 그린 웹툰 중 한 장면. 인스타그램 '푸른동그라미' 캡처

그림 실력을 살려 암 투병기 만화를 그리는 환자도 있습니다. 김청원(19)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소아암 병동에서의 일상을 담은 웹툰을 올리고 있죠. 중학생 때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던 김씨는 "항암하면서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감정을 기록하고자 만화를 그리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젊은 암 환자' 꼬리표, 투병 고백 어렵게 해"

이정은(33)씨가 지난해 3월 흉선종 제거 수술을 한 뒤 찍은 사진. 블로그 '흉선암 투병일기'

이정은(33)씨가 지난해 3월 흉선종 제거 수술을 한 뒤 찍은 사진. 블로그 '흉선암 투병일기'

불쌍해하거나 꺼리거나…. 젊은 암 환자를 향한 불편한 시선에 당사자들은 '돌직구'를 날리기도 합니다. '흉선암 투병일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정은(33)씨도 그 중 한명입니다. 지난 4월 항암 치료 후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을 때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한 단상을 올렸죠.

"항암 중, 항암 후에 여자 화장실을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부터 '여기 여자 화장실이에요'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누군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건 정말 무례한 행동이다." - 블로그 '흉선암 투병일기' 중

처음엔 흉선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쓴 글이 자연스레 '암 투병 에세이'가 됐죠. 이씨는 "항암하다 보면 '굳이 살 이유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나중에 세상을 떠나든 살아남든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편견은 아픈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는 "항암주사를 맞으러 간 병원에서 대기하던 중 '쟤는 뭘 잘못했기에 저 나이에 암에 걸렸대' 같은 수군거림을 들은 적도 있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암 환자를 대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지난 7일 밀실팀과 인터뷰하는 혈액암 생존자 정승훈(30)씨. 백경민

지난 7일 밀실팀과 인터뷰하는 혈액암 생존자 정승훈(30)씨. 백경민

암 환자에 대한 편견은 완치 후 사회 복귀에도 걸림돌이 됩니다. 8년 전 혈액암 진단을 받고 6번 항암 치료 끝에 완치된 정승훈(30)씨는 이렇게 말했죠.

"암이 나은 뒤에도 '넌 환자니까 힘든 일은 하면 안 돼'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렇게 암 환자에게 꼬리표를 달고 동정하는 시선이 암 투병 사실을 밝히는 걸 꺼려지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설까요.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정씨는 4월 다른 암 경험자들과 함께 투병생활을 다룬 책 '암밍아웃'을 출간했습니다. 지금은 암 환자를 돕기 위한 사회적 기업 '윤슬케어'를 창업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죠.

급증하는 20대 암 환자…"사회복귀 도와야"

지난해 공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5대 암 진료 환자 연평균 증감률. 이시은 인턴

지난해 공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5대 암 진료 환자 연평균 증감률. 이시은 인턴

투병기를 공개하는 2030이 늘어나는 건 젊은 암 환자 증가율이 높은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공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간 5대 암 진료 환자 현황'에 따르면 5대 암으로 치료받은 20대 환자는 3621명(2014년)에서 2만1741명(2018년)으로 연평균 44.5% 증가했습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증가율이었죠.

다만 암 환자의 생존율도 같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 분석 결과를 보면 암 진단 후 5년 넘게 생존한 국내 환자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죠. 암 환자가 5년 이상 사는 상대 생존율도 70.4%를 기록했습니다. 10년 전(42.9%)보다 약 1.6배 증가한 겁니다.

죽음보다 극복에 더 가까워진 암. 전문가들이 젊은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장은 "20·30대 암 환자들은 치료 후에도 60년 넘게 암 생존자로 살아가야 한다. 사회복귀를 도울 수 있는 정확한 정보와 장기적인 재활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유튜브 '만자일기' 캡처

유튜브 '만자일기' 캡처

그래도 여전히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기고픈 청년들이 많습니다. 용기 내서 자신의 병을 고백한 '선배'들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을까요. 암세포와의 싸움을 이겨낸 정승훈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전했습니다.

"암에 걸렸다고 말했을 때 나한테 찍힐 낙인이 두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본인이 잘못해서 암에 걸린 게 아니잖아요.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편하게 이야기를 꺼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암 환자라고 해서 나를 욕할 사람은 없다는 걸 잊지 마시고요."

박건·윤상언·최연수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이시은·이진영 인턴, 백경민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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