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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배 큰 황소개구리도 한방에 끝장…최강포식자 '물장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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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군이 황소개구리를 사냥하는 모습. 몸집이 훨씬 큰 황소개구리를 앞다리로 단단히 붙잡고 소화액을 주입하고 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유튜브 채널 'HIP' 제공

물장군이 황소개구리를 사냥하는 모습. 몸집이 훨씬 큰 황소개구리를 앞다리로 단단히 붙잡고 소화액을 주입하고 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유튜브 채널 'HIP' 제공

"한번 걸리면 아무것도 살아남는 게 없어요. 물속에서는 최강자죠"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물속에도 '장군'이 살고 있다. 몸집이 몇배나 큰 황소개구리도 거뜬히 잡아먹는 식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물속의 포식자, 물장군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2급 생물이다. 물장군은 왜 사라질 위기에 빠진걸까.

[애니띵]물속의 포식자 물장군는 왜 멸종위기 처했나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식비만 3000만 원"…물장군 기르는 연구소

물 속의 포식자 물장군. 긴 앞다리로 사냥감을 붙잡은 뒤 촉수를 꽂아 소화액을 집어 넣는다. 소화액이 주입되면 사냥감은 즙처럼 녹아내려 물장군의 먹이가 된다. 왕준열 기자

물 속의 포식자 물장군. 긴 앞다리로 사냥감을 붙잡은 뒤 촉수를 꽂아 소화액을 집어 넣는다. 소화액이 주입되면 사냥감은 즙처럼 녹아내려 물장군의 먹이가 된다. 왕준열 기자

지난 10월 29일 강원 횡성군에 있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 연구소는 23년 전 이강운 소장(안동대 겸임교수)이 사비를 들여 세운 생태연구 기관이다.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외보전기관(멸종위기종을 보전·증식하는 곳)으로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5종, 60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2만5000여평(약 8만3000㎡) 넓이의 연구소에는 약 300여 마리의 물장군이 살고 있다. 거대한 비닐하우스 모양의 건물에 들어가자 줄지어 늘어선 수조가 눈에 들어왔다. 수조 속 물장군들은 모래에 몸을 파묻고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장군의 입 부분에 긴 촉수가 돋아있다. 물장군은 이 촉수로 사냥감에게 소화액을 주입한 뒤 다시 흡입한다. 왕준열 기자

물장군의 입 부분에 긴 촉수가 돋아있다. 물장군은 이 촉수로 사냥감에게 소화액을 주입한 뒤 다시 흡입한다. 왕준열 기자

연구소는 자연에서 포획한 물장군을 증식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이날 연구소에는 물장군이 약 300마리 있었지만, 많을 때는 3000마리를 키웠다. 이 소장은 "많은 때는 한 해에 물장군 먹이값만 3000만원을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물장군은 대부분 자연으로 돌려 보냈다. 전라북도 고창군 등 물장군이 적응할 수 있는 서식지를 찾아 풀어주고 있다. 여러 서식지외보전기관이 보전·방사 활동을 벌이면서 최근에는 경기 성남시 탄천, 제주도 뿐 아니라 서울의 늪지에서도 물장군이 발견됐다.

황소개구리도 잡는 최강 포식자…"물장군으로 유해종 퇴치"

손가락을 앞다리로 붙잡고 있는 물장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지만 쉽게 떼어놓기 어려울 만큼 힘이 세다. 왕준열 기자

손가락을 앞다리로 붙잡고 있는 물장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지만 쉽게 떼어놓기 어려울 만큼 힘이 세다. 왕준열 기자

물장군을 조심스럽게 수조에서 꺼냈다. 물장군이 기다란 앞다리를 휘둘렀다. 손에 올려놓은 물장군은 떼어 놓기 어려울 만큼 힘이 셌다.

손에 올려놓고 물장군을 보던 차에 따끔한 통증이 몰려왔다. 물장군의 비장의 무기, 촉수에 쏘인 것이다.

물장군은 독특한 방법으로 사냥한다. 수초 등에 숨어있다가 물고기나 개구리를 날카로운 갈퀴가 돋아 있는 다리로 붙잡는다.

단단히 잡은 후, 입에 나 있는 촉수를 꽂아서 소화액을 주입한다. 소화액이 들어가면 사냥감의 몸 속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물장군은 촉수로 즙이 된 먹이를 며칠 동안 빨아 먹는다.

겨울잠을 잘 곳을 찾는 물장군. 10월 말에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 물장군은 6개월 정도 지나 봄이 되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왕준열 기자

겨울잠을 잘 곳을 찾는 물장군. 10월 말에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 물장군은 6개월 정도 지나 봄이 되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왕준열 기자

손바닥보다 작은 8~10㎝ 크기의 물장군은 몸집이 수십 배 큰 황소개구리도 잡아먹는다. 이 소장은 "황소개구리뿐 아니라 포식자인 물뱀도 잡아먹을 수 있다"면서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장군'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토종 생물인 물장군으로 유해 외래종인 황소개구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소장은 "10여년 전부터 물장군을 활용해서 외래종을 퇴치하는 방법을 연구했다"면서 "멸종위기종인 물장군을 살리면서 생태계 다양성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강 포식자'도 인간 앞에선…농약·가로등에 멸종 위기

이강운(62)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1997년 사비로 연구소를 세운 뒤 멸종위기종 보호와 각종 동물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6000여마리의 멸종위기종, 1200종의 곤충을 키우고 있다. 왕준열 기자

이강운(62)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1997년 사비로 연구소를 세운 뒤 멸종위기종 보호와 각종 동물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6000여마리의 멸종위기종, 1200종의 곤충을 키우고 있다. 왕준열 기자

물속에서는 적수가 없는 물장군이지만, 인간의 환경 파괴는 피해갈 수 없었다. 물장군이 주로 사는 논이 각종 농약으로 오염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또 다른 서식지인 농촌의 웅덩이도 콘크리트로 덮이기 시작하면서 살 곳이 더 좁아졌다.

어두운 길을 밝히는 불빛도 물장군에겐 나쁜 영향을 줬다. 불빛에 끌리는 성질이 있는 물장군이 도로로 나오면서 차에 밟히거나,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깜깜한 시골길을 밝힌 가로등이 물장군에게는 재앙이 된 셈이다.

이 소장은 "인간이 농약을 뿌리고,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마구 시설을 만들면 포식자인 물장군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면서 "어떻게 하면 다양한 생물을 보전하고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 즈음 이 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언급했다.

"코로나19도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고, 낯선 생물과 접촉이 잦아지면서 생긴 일이죠. 생태계를 파괴하고 생물을 멸종시키면, 결국 인간에게도 재난이 돌아온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영상=왕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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